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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난설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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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헌 작성일03-09-09 20:26 조회1,4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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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여류시인 방에는 늘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아무것도 할수 없었기에 그녀는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죽음, 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흰눈속에핀 난초



스물일곱에 연꽃같이 붉은 생을마친 난설헌 허초희(1563-1589). 난설헌의 문재는 날아가는 새도 감탄 했을 정도로 뛰어났다. 여덟살 어린 나이에 한문학자들도 번역하기 힘들어하는 (광한전 백옥루 상낭문)을지어 여신동이라 칭송 받았고 자태또한 선녀에 비유될정도로 기품이 있었다.

나에게는 "세가지 한이있다. 첫째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조선땅에 태어난것이요. 셋째는 김 성립의 아내가 된것이다. 자신의 유언 처럼 조선땅에서 여자로 태어나난 것은 그녀의 생을 아까운 나이에 내던져야 했을 정도로 큰비극 이었다. 여자의 자아가 강한것은 그시대에 가장 금기시한 덕목 . 더구나 남자보다 능력이 뛰어난 것은 경거망동한짓(?) 이었고 도리를 모르는 일이었다. 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은 화담 서경덕의 제자였고 그녀에게는 허봉과 허균이라는 학문과 재능이 뛰어난 형제들이 있었다. 그녀는 김성립과 결혼으로 여자의 도리 즉, 자신을 죽이고 사는길을 강요당했으며 병으로 두아이를 잃는 슬픔까지 격는다. 나름의 노력에도 여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날수 없었고 조선의 모든여자들의 본보기가될 만한 부도덕한 여자의 종말을 맞는다. 결혼한 여자는 시와 문학에 열정을 쏟는 일마저도 도리가 아니던 시대, 외출은 커녕 붓을드는 일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끝내 그녀는 철웅성같은 집안의 삼종지도 와 칠거지악의 부당한 숨막힘을 견디지 못하고 "별당"이라는 금기의 담안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후세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빛난는 여인이라고 하는가하면, 표절이나 하는 흉내내기 시인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 대부분은 죽음과 함께 한줌의 재로변해 흔적조차 없다. 다만 동생 허균과 주고 받은 서간문을 역은 (허난설헌집)만이 현존하고 있을 뿐이므로 표절에 관한 의문은 풀리지않고 있다. 조선최고의 여류시인 이던 난설헌 허초희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나 한듯이 시한수만을 남기고 그렇게 홀연히 떠나갔다.



"연꽃스물일곱송이 떨어지니,

달빛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 지금 와서 난설헌을 여성단체에서 부각 시키는 것은 시대에도전하며 부권에도전하고 가문에 도전한 분이라서 그런것 아닐까요. 우리 가문으로서는 오점이면 오점이지 자랑은 못됨니다





월간 <풍경> 에서 옴김







▣ 김태서 - 반갑습니다. 여유롭고 넉넉한 한가위 맞으세요

▣ 김주회 -

▣ 김윤만 - 오점은 오점대로 자랑은 자랑대로 소중한 우리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 김명회 - 포커스를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분은 가문에서 존중받아야 할 분입니다.하시는 일마다 막힘이 많았기 때문에 좌절에서 또 좌절 한많은 세상을 살다 짤막하게 가셨습니다.난설헌 할머님 존경합니다

▣ 김명회 - 멘트를 할머님의 부각이 부권도전의 대표적인물로 보셨다는 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 김항용 - 어느 한 시대의 인물을 바로 평가하려면 당시대의 전형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기초 기준하여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16세기의 인물을 21세기의 가치 기준으로 단순 평가하려는 것은 많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그 시대 그 분의 예술과 업적 등이 당시대와 차세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얼마나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였는가 하는 점 등을 중심으로 살펴야 하리라 봅니다. 전 허난설헌의 삶과 예술을 남과 여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나누어 어느 한 쪽을 비판하려는 근거로 삼고자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그 어려운 시절에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과 철학과 감정을 아름다운 글로써 표현해 놓은 난설헌의 순수한 예술혼을 재조명해 보고 불모지였던 조선 여성의 문학적 위치를 재정립하는데 관심을 모아야 하리라 봅니다.

▣ 김윤식 - 태헌 아저씨 오랜만에 뵙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 김태완 - 허난설헌 할머니의 3가지한 매우 안탑갑습니다, 여자로 태여난것은 운명이며 조선땅에 태여난것도 운명이며 김성립에 시집오신것도 결국은 운명인것을 운명을 다스려 나가는 개척정신은 좌절로 살라지고 비관만 하셨군요 상놈의 가문에 태여나 기생으로 일생을 장수했다면 만족하십니까? 양반의 자녀로 태여나 양반 가문으로 시집와 굵고 짧막한 삶이 더 아름답기에 불모지였던 조선 500년사에 여성시인으로 큰 별이 되심이 아니신지요.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운명이옵나이다. 할머님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는데는 하늘이 낸 천재였으나 운명을 비켜가고 다스려서 개척하는 데는 바보였습니다. 원래 천재와 바보는 백지장 한장 차이일 뿐이죠 평범한 양반가에 며느리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김태완 - 양반가에 체통을 지키기위해 은장도로 가문을 지키려 했던 조선조 중기의 사회에서 김성립의 어머님도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 김태완 - 40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 여권 신장이라는 미명아래 우리 할머님을 독한 시어머니로 무대에 올리다니.... 작가와 연출진은 각성하시오 시어머니도 허난설헌 할머님도 우리 가문의 조상입니다. 연극속에 흥분을 극대화 하기 위하여 있지도 아닌 이야기를 각색하여 부분적으로 가문을 우롱하는 행위와 작태는 공개 사과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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