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렴사공파 (17) (세거지 : 천안 병천 도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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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11-06 03:56 조회2,337회 댓글0건본문
안렴사공파 (17) (세거지 : 천안 병천 도원리)
병천에서 북면 쪽으로 한 10리쯤 가면 노은정이 있는 도원리에 도착하게 됩니다.
조선숙종 때의 학자인 안렴사공 金士廉(김사렴)의 11대손 老隱 金相器 (노은 김상기) 선조께서 숙종15년(1689)에 이곳 경치좋은 광기천에 정자를 지은 후 자신의 호를 따라 노은정이라 하였다 합니다.
공의 높은 학문과 선비로서의 고결한 인품을 사모하여 정조때의 명문장가로 이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을 지낸 외현손 남공철(南公轍)은 노은정 현판에 공의 행적을 기린 글을 남기셨는데, 남공철은 안렴사공 김사렴 할아버지의 신도비문을 지으신 분입니다.
*김상기 → 여+남00(사위) → 남00(외손) → 남00(외증손) → 남공철(외현손)
노은정 및 도원리와 관련된 자료를 현지 비문, 대종회보, 문화재청 홈페이지, 천안시청 홈페이지 등에서 찾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 천안노은정 안내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5호
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이 건물은 조선숙종(1675-1720)때의 학자인 老隱 金相器가 숙종15년(1689)에 이곳 경치좋은 광기천에 정자를 지은후 자신의 호를 따라 노은정이라 하였다.
처음에는 동쪽 뒷산 동성산 정상에 정자를 지으려고 상량까지 하였는데 밤사이 재목들이 이곳으로 옮겨지기를 여러차례 거듭되어 지금의 위치에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정자는 정면2칸, 측면2칸이며 자연 암반 위에 원형기둥을 세워 지은 굴도리집이다. 추녀마루가 지붕중앙에 모인 사모지붕으로 올릴 때 지붕틀을 구성하는 독특한 건물구조 기법을 볼 수 있어 중요하다.
▣ 노은정 비
노은정은 1689년(숙종15년) 노은(老隱) 김상기(金相器)공이 지으신 도원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이다.
공의 자는 경보(00) 본관은 안동으로 1639년(0000)에 충북 청원에서 아버지 휘자0(00)와 어머니 행주기씨의 차남으로 출생하여 숙부이신 휘자0(00)에게 입양하셨다. 공의 집안은 대대로 명문거족으로 고려명장 시호 충렬공 휘方慶의 15대손이고 이태조가 조선을 세우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고려의 충절을 끝까지 지킨 안렴사 오은(梧隱) 휘士廉의 11대손이다.
공은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고 문장에 능하시어 신동이라 불렸고 숙종때는 대학자로 명성을 떨치시니 세상 사람들은 공을 시 장군이라 불렀다. 공의 이같은 학식과 인품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서 조정에서는 정오품의 통덕랑을 내렸으나 공은 이를 사양하고 오직 시 문학에만 전념하시니 선비들로부터 더욱 추앙을 받으셨다. 특히 영조대왕의 스승이신 곽시징 선생, 목천군수 김광수 선생과는 친교가 두터우셨다.
공은 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시며 후진양성에 힘을 아끼지 않으셨다. 50세 되던 해 정자를 짓고 현판과 바위 위에 노은정이란 이름을 친필로 쓰시고 스스로 노은거사라 하였다. 1708년(숙종34년) 9월 18일에 70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으며 배위는 공인 남양홍씨로 헌납 우민의 따님이며 슬하에 4남 5녀를 두셨다.
공의 높은 학문과 선비로서의 고결한 인품을 사모하여 정조때의 명문장가로 이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을 지낸 외현손 남공철(南公轍)은 노은정 현판에 공의 행적을 기린 글을 남기셨고 공의 손자 휘 석범(錫範)은 노은정기를 지으셨다.
노은정은 북쪽으로 우뚝 솟은 적성산의 푸른 정기와 동성산맥의 줄기찬 기상을 이어받고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광기천의 맑은 물이 어우러져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철마다 학생들의 자연학습 도장 되고 있다.
공과 노은정에 대한 이야기는 300년 전에 발행된 [대록지]와 근세에 발행한 [팔도유람기] [지명총람] [이것이 한국이다] [천원군지] 등에 소개되고 있다.
이에 후손들은 공의 얼이 담긴 자랑스런 유산을 잊을 길이 없어 이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자손 만대에 전하여 가문의 영광과 긍지로 삼으려 한다.
1990년 3월
9대손 성회(聖會) 글을 짓고 씀
후손일동 세움
뜻을 모아 주신 분
홍식 완회 영식 용훈 수회 성회
원묵 인회 용갑 성묵 태용 재호
주회 종식 용선 정묵 명식 재홍
외 19명
▣ 안렴사공파 在京 참봉공손 화수회 정기총회
신임 회장에 泰俊 종친
<대종회보 제56호, 1997. 4>
지난 2월 27일 종로5가 대화회관에서 회원 30여명이 참석하여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는데 觀默 회장의 인사에 이어 96년도 회계 결산보고를 泰雲 총무가 한 뒤에 97년도 사업계획안으로 참봉공 6대손 휘相器 선조께서 건립하신 老隱亭을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을 의결하였다.
노은정은 현재 천안시 향토보존회의 심의를 거쳐 충청북도 문화공보실에 상신 중이다.
다음은 임원개선에 들어가 신임회장으로 泰俊 종친을 추천하여 회원 전원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총무에는 聖會 종친이 맡기로 했다.
이어 신임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전 회장 관묵 종친과 총무 태운 종친의 노고를 치하하고 이 두 종친께 감사패를 증정한 뒤 준비된 다과와 약주를 들며 덕담을 나누고 하오 9시 산회하였다.
▣ 老隱亭(노은정) 문화재 지정 경축식
<대종회보 제58호, 1997. 10>
지난 9월 28일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노은정 현지에서 안렴사공 11대손 휘相器 선조가 건립한 老隱亭이 1997년 8월 5일자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5호로 지정을 받아 천안시 병천지역 기관장과 안동김씨 종친회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날 경축식은 정자를 건립한 휘상기 할아버님의 9대손 聖會 (대종회 이사) 종친의 사회로 경과보고와 감사패 전달, 문화재 지정서 전달, 문화재관리인 위촉, 경축사, 내빈 축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경축사는 김상기 할아버님 11대손 김홍식, 내빈 축사는 대종회 상훈 회장을 대리하여 두회 부회장이 했으며, 감사패는 목천의 향토사학자 李元杓(이원표) 선생, 병천의 입향조 참봉공파의 군자감정공 종중 金永植 종손이, 노은정 문화재 지정에 지대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고, 문화재 지정서는 병천면 金天應 면장이 김홍식 종친에게, 문화재관리 책임자로 金容勳씨에게 각각 수여했다.
특히 이날 노은정 문화재 지정 경축식에는 천안시의원 황규민 의원, 한국고서협회 김재갑 회장, 성환동성중학교 金南應 교장, 천안시 향토사학자이며 성환동성중학교 교사인 황석유 선생, 군사공파 재석 회장, 안렴사공파 章會회장, 익원공파 영준 부회장 등 경향각지에서 불원천리하고 축하해 주셨다.
▣ 안렴사공파 廣基종중
<대종회보 제59호, 1998. 1>
충남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광기종중은 지난 11월 2일 (음 10월 3일) 이곳 입향조이신 참봉공 휘公彦의 아들 군자감정공 휘勳과 손자 첨정공 휘孝吉, 증손 도사공 휘沃, 5대손 휘錫과 외선조 선산류공 2위의 歲一 향사를 재실에서 엄숙히 봉행하였다.
이날 초헌은 종손 永植, 아헌은 權會, 종헌은 弘植 현종이 각각 헌작하고 대축은 聖會 현종이 하였다.
또한 이날 향사를 마친다음 노은정 문화재 지정에 큰 기여를 한 성회 홍식 두 현종에게 광기종중에서 공로패 수여가 있어 문중의 敦睦(돈목)을 과시하였다.
▣ 천안노은정 (天安老隱亭)
<문화재청 홈페이지(http://www.ocp.go.kr/)>
종 목 문화재자료 355호
명 칭 천안노은정 (天安老隱亭)
분 류 누(정).각
수 량 1동
지정일 1997.08.05
소재지 충남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산19
소유자 안동김씨종중
관리자 안동김씨종중
노은정은 노은 김상기가 학문 연마와 후배양성을 위해 숙종 15년(1689)에 지은 정자이다.
건물 이름은 선생의 호에서 유래하였으며, 철종 4년(1853)에 처음 고친 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건물은 화강암 위에 앞면·옆면 2칸 규모로 세웠고 마루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정자의 각 기둥에는 수침을 막는 돌기 등을 사용해 안전을 도모했다.
노은정은 천안시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이며, 300년 전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로서 주위경관 또한 아름다워 ‘도원 8경’의 하나로 전하고 있다.
도원8경의 하나로 1799년에 편찬된 대록지에도 기록이 전한다. 조선 숙종때 학자인 노은 김상기(金相器)가 세상일을 잊으려 1689년경에 이곳에 정자를 짓고 호를 따서 노은정이라 하였다. 광기천변의 암반위에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세웠고 지붕은 몇번의 번와공사가 있었으나 기둥이나 가구재는 당초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특히 사모지붕을 올릴 때 지붕틀을 구성하는 기법을 볼 수 있다.
▣ 노은정
<천안시청 (http://city.chonan.chungnam.kr/)>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355호]
[소재지]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산19번지
[구 조] 목조기와
[규 모] 사각형(4mx4m)1동
[개 요] 노은정은 1689년 조선조 숙종때 학자 김상기(본관이 안동이며 자는 정보, 호는 노은)가 건립한 우리시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이다. 노은정은 주위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다움이 뛰어난 곳으로 정자를 건립한 김상기가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위해 힘쓰며 영조의 스승 경한재, 군수 김광수 함께 도학으로 벗을 하며 지내던 곳으로 1853년 중수이후 몇차례 중수하였다.
노은정은 300년전의 우리나라 전통의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물로써 기둥은 둥근형이며 재질은 괴목 혹은 싸리나무라고도 한다. 마루는 우물 마루를 깔았으며 정자의 각 기둥에는 수침을 막는 돌기 등을 사용해 안전을 도모했고, 정자 주변은 수령 300년의 고목 등이 정자를 에워싸고 있으며 정자의 아래는 화강암이 지반으로 받들고 있으며 그 아래에 있는 도영암삭성대에는 송우암선생의 친필이 각명되었다.
▣ 도원리
<천안시청 (http://city.chonan.chungnam.kr/)>
목천군 근동면 지역으로 처음에 도원(挑元)이라 하였는데 세마(洗馬) 김만중(金萬重)이 병자호란의 강화를 싫어하여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와서 살면서 진나라 사람들이 도원에 가서 피난한 뜻에 따라 호를 도원(挑元)이라 하고 동네이름도 호를 따라 도원(挑源)으로 바꾸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평기리,도원리, 광기리, 덕신리, 가정리, 반계리, 명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원리라 하고 갈전면에 편입되었다. 1942년 갈전면이 병천면으로 개칭되므로 병천면 도원리가 되었다.
노은정(老隱亭) : 검계가에 있는 정자. 큰 바위에 아담한 정자가 놓여 있고 그 아래는 냇물이 깊이 패여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숙종 때 학자 김상기(金相器)가 벼슬을 하려고 스물네차례나 응시하였으나 모두 낙방이 되고 노년에 모든 세상일을 잊으려고 이 정자를 짓고 큰 바위에 노은정(老隱亭) 석자를 새겼다.
광터골 : 광기(廣基).광기리, 도원골 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 구리성에 웅거 할때 이곳에 관을 두었으므로 관터 골이라하던 것이 변하여 광터 골 또는 광기가 되었다고 한다.
삭성대(削成臺) : 노은정 아래에 있는 바위를 깍아서 대를 만든 듯 한 바위가 냇가에 있는데 우암 송시열이 삭성대 석자를 새겼다. 지금은 땅속에 묻혀 있다.
노은정 : 가정이라고도 하며 노은정에 있는 마을.
도영암(倒影岩) : 삭성대 옆에 있는 바위. 바위가 비스듬이 서 있어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도영암 석자를 새겼다고 한다.
검계(儉溪) : 노은정 앞에 있는 내. 삭성대 도영암들이 있었다.
범박골 : 주물로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틀을 질흙으로 만들어 철일을 보조하던 곳. 사정대 안동김씨 김옥(金 )이 활을 쏘고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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