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나유(羅裕)=금성나씨
페이지 정보
솔내영환 작성일03-09-15 19:10 조회1,760회 댓글0건본문
금성나씨(錦城羅氏)
시조는 고려초에 삼한벽상일등공신이었던 나총례이다.
[금성나씨대동보]에 의하면 그는 정종조에 공신의 호를 받고 삼중대광 보국숭록대부로 금성부원군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금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금성나씨대동보]의 기록에는 금성부원군 총례의 9세손 득화의 아들 윤이 슬하에 천부, 천서, 원서, 문서 등 4형제를 두었는데, 그중 둘째 천서는 안정나씨로. 막내 문서는 군위나씨로 분적되었다고 한다.
한편 고려 강종 때 문과에 급제한 효전이 총례의 8세손으로 뒤에 한림원 직학사를 역임하고 그의 아들 득황은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장흥부사를 거쳐 원종 때는 제주부사 겸 방호사를 지낸 후 금자광록대부, 사공상서, 좌복야, 판호부사로 치사하였다.
1271년(원종 12) 김방경을 따라 진도에서 삼별초를 토평하는 데 공을 세운 유는 득황의 아들로서 탐라 정벌 때는 선봉장으로 참전하여 대장군에 올랐다.
충렬왕 때는 합단의 동북 변경 침범을 여러번 격퇴하여 공을 세우고 정조사로 원나라에 가서 회원 대장군의 호를 받고 돌아왔다.
조선조에 와서는 중종과 명종대에 걸쳐 문명을 떨친 세찬이 이름났다.
그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빈의 아들로 중종 때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명종 때 대사헌, 전주부윤 등을 지내고 나주의 송재사에 제향되었다.
그외 광해군 때 기개높은 학자로서 명성을 떨친 무춘은 학정에 있을 때 폐모론이 일어나자 동강 엄성과 더불어 유생을 이끌고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 당했으며, 치용은 임진왜란 때 노량해전에서 대공을 세우고 이순신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여 평양성 방어에 훈공을 세운 승윤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한말에 와서는 인협, 용환, 석주, 월환 등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독립운동에 공헌하여 이름을 떨쳤다.
집성촌
황해도 금천군 동화면 매남리
전남 나주군 문평면 오룡리
황해도 금천군 동화면 매서리
황해도 옹진군 용천면 용천리
동학사
나계종 충남 공주군 계룡산 동학사
구산사
나무춘 전남 담양군 담양읍 남산리
송재사
나세찬 전남 나주군 문평면 동원리
송재사
나대용 전남 나주군 문평면 동원리
송재사
나덕원 전남 나주군 문평면 동원리
송재사
나무송ㅡ 전남 나주군 문평면 동원리
송재사
나무춘 전남 나주군 문평면 동원리
영모사
나순 전남 나주군 문평면
영모사
나중호 전남 나주군 문평면
영모사
나결 전남 나주군 문평면
사계서원
나이준 경북 영주시 창진동
영당
나익희 전남 나주군 문평면 신광리
영당
나문규 전남 나주군 문평면 오룡리
영당
나무송 전남 담양군 고서면 보촌리
부조묘
나치용 전남 나주군 문평면 신광리
정려
송씨 전남 담양군 금성면
정려
나동륜 충남 서천군 기산면 모동리
정려
나덕렬 황해도 황주군 청수면 인포리
정려
나덕윤
정려
최씨 전남 화순군 (나종상의 처)
삼강문
설씨 전남 화순군 (나덕전의 처)
삼강문
나봉서 전남 장성군 삼서면 우치리
삼강문
나통서
망사재
나문규 전남 나주군 문평면
▣ 김주회 -
▣ 김항용 -
▣ 김윤식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