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Re:반가워라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허난설헌 소개)

페이지 정보

김윤만 작성일03-09-17 07:35 조회1,773회 댓글0건

본문

▣ 반가워라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허난설헌 소개) ▣



[허난설헌에 대하여]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의 누나이다. 난설헌은 호이고 본명은 초희(楚姬), 그리고 자는 경번(景樊)이다.



--허씨 5문장(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이라 불릴 만큼 문장에 뛰어난 집안에서 태어난 난설헌은 글을 일찍 깨우쳐 8세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이라는 시를 써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 시는 신선세계에 있는 광한전에 백옥루를 새로 짓는다고 상상하고 그 건물의 상량문을 쓴 것이다. 어린아이의 시라고 믿겨지지 않는 상상력과 문장력은 손곡 이달을 만나 자유로운 서체와 개방적인 사고로 성장한다. 손곡은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자유분방한 당나라 시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다. 조선시대에 서얼로 태어나 재능이 있음에도 벼슬길에 나갈 수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한 손곡은, 틀에 박히지 않은 당나라 시풍의 글을 썼다. 그를 스승으로 했던 난설헌은 호방하면서도 직설적인 시를 썼고, <가난한 여인의 노래(貧女吟)>를 통해 당대 여성의 인권회복을 노래하는가 하면 <느낀대로(感愚)> 등의 시에서 세도가에 대한 비난을 했다.



--난설헌은 5대째 계속 문과에 급제한 문벌 안동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다. 남편 김성립(金誠立)은 나름대로 문장을 했지만 난설헌의 경지에는 비할 바가 못되었던 것 같다. 그 이유에서인지 부부간의 사이는 좋지 않았고, 고부간 갈등도 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난설헌이 18세 되던 해에 허엽이 병에 걸려 사망하고 강직한 성격의 허봉은 1583년(난설헌 21세)에 율곡 이이를 탄핵하다가 유배되고 금강산에서 객사를 한다. 그나마 의지를 했던 자식들을 차례로 잃은 난설헌은 슬픔, 갈등, 억압 등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녀는 항상 화관(花冠)을 쓰고 향안(香案 : 향로나 향합 따위를 올려놓는 상)과 마주 앉아 시사(詩詞)를 지었다고 한다. 자신의 세계에서 이미 신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난설헌이 지은 시와 문장이 집 한 간에 가득 찼다고 한다.



--난설헌은 23살 되던 해에 지었던 “몽유기(夢遊記)”에서처럼 27세에 아무런 병도 없이 유연히 눈을 감았고 난설헌의 작품들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불태워졌다. 이 해 11월 남동생 허균이 친정에 흩어져 있던 난설헌의 시를 모으고, 자신이 암기하고 있던 것을 모아서 『난설헌집』 초고를 만들고, 유성룡에게 서문을 받았다. 중국 사신 주지번, 양유년에 의해 『난설헌집』은 사후 18년 뒤에 중국에서 간행되었고 난설헌의 시풍을 따르는 중국의 여자 시인이 많았다고 한다. 100년 후 일본에서 분다이야 지로베이에 의하여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夢遊記(몽유기)--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朶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해라.(허경진 역)



▣ 솔내 -

▣ 김윤식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