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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水亭 (경기포천) ① (포천군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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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11-10 00:59 조회2,1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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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水亭 (경기포천) ① (포천군誌 기록)





경기도 포천군에서 발간한 {포천군지}에 금수정에 대한 기록이 있어 그대로 게재합니다. 금수정에 관련한 자료는 본 홈페이지 [각파 문중회 소개] - [문온공파 구용]에 보면 영환 종친께서 자세히 소개하여 주셨습니다.







<포천군지 p479∼ >



금수정(金水亭)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17호

-시대 : 조선중기

-소재지 : 창수면 오가리 임547

-규모 : 정면 4.72m, 측면 4.50m





포천군에는 예로부터 영평8경으로 불려지는 명소가 있다. 영평은 포천의 옛이름이다. 영평천 상류에서 하류에 펼쳐진 화적연(禾積淵), 금수정(金水亭), 창옥병(蒼玉屛), 와룡암(臥龍岩), 낙귀정지(樂歸亭址), 백로주(白鷺洲), 청학동(靑鶴洞), 선유담(仙遊潭)이 바로 그것이다.



영평의 문사들은 물론, 외지에서 이 곳을 방문한 많은 시인 문객들도 영평8경의 경치를 노래하였다. 특히 금수정은 양사언(楊士彦), 이덕형(李德馨), 박순(朴淳), 이의건(李義健), 김수항(金壽恒), 김창협(金昌協) 등 저명한 문사가 자주 찾아 발자취를 남긴 곳이다.











(1) 금수정의 건립 및 연혁



금수정은 창수면 추동리 547번지 (*창수면 오가리 임547의 오기) 에 소재한 정자이다. 영평천의 수면에서 약 8m정도 되는 절벽 위의 평평한 대지에 세워져 있다.







이 정자의 처음 명칭은 우두정(牛頭亭)이다. 정자가 위치한 곳의 형상의 소의 머리(牛頭)를 닮았기 때문에 이름붙인 것이다. 이 정자를 에워싸고 흐르는 물도 우두연(牛頭淵)이라 하였다.



우두정에 관하여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단지 여러 문인의 싯구에 그 명칭이 보일 뿐이다.







최근 금수정 주변에 세워진 {안동김씨세천비} 음기에 금수정에 관련한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약재(若齋, *척약재 若齋의 오기) 김구용(金九容)이 이곳을 소요하다가 문득 이곳을 소머리(牛頭)의 형상이라 하였고,



그의 둘째 아들인 명리(明理)가 탄곡(炭谷)에 은퇴해 있을 때 이곳에 들려 정자를 수축(竪築)하고 우두정(牛頭亭)이라 명명하였다.



그의 큰 아들 맹헌(孟獻)은 벼슬이 예문관 직제학에 이르렀는데, 창수(蒼水)에 은퇴하였다.



직제학공의 손자인 윤복(胤福)은 양사언(楊士彦)과 더불어 우두정에서 "오금(吾金)의 金자와 창수의 水자를 따서 金水亭이라 개칭 현판(懸板)하고 헌람(軒欖)에 오락풍월(娛樂風月)이라 현액하였다.







지금은 정자초벽애(亭子楚壁崖)의 金水亭 洞天石門의 해서와 천중암(天中岩)에 새겨진 초서 浮島만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광해조에 벼슬한 금사공 김확(金沙公 金 )이 귀향하여 소일할 때 금수정을 단청보수하고, 부대건축물을 개축하였다."







위의 비문에 의하면, 우두정을 세운 이는 김명리(金明理)이며, 연대는 조선 세종조이다. 양사언과 함께 금수정이라 개칭한 이는 김윤복이다. 그리고 훗날 김확이 개수하였다.



우두정 건립에 관한 사항은 다른 기록에서 고증할 바가 없어 위의 사실을 수긍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금수정의 경우는 의심되는 점이 많다. 다음 고문헌 자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① 금수정 :

在郡西七里 古府使金 卜築也 (영평군읍지 누정, 여지도서)

재군서칠리 고부사김확복축야



② 금수정 :

在縣西十五里 亭壓白雲溪石崖上 本朝楊士彦別築 士彦每月夜彈琴亭上作詩 刻崖石 (동국여지지 누정)

재현서십오리 정압백운계석애상 본조양사언별축 사언매월야탄금정상작시 각애석





{贈琴翁} - 琴翁 錦水亭主人也 刻此詩於尊巖 (증금옹, 봉래시집1 28p)

{졸금옹} - 금옹 금수정주인야 각차시어존암



앞의 글에서 분명하게 금수정은 김확이 복축(卜築)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뒤의 글에서 "本朝 楊士彦別築" 이라는 기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확(1572-1653)의 생몰년대를 보더라도 양사언이 건립한 사실이 앞선다.







그리고 성해응(1760-1839)이 {동국명산기}에서

"故蓬萊別業 歸于金氏 世傳之"

"고봉래별업 귀우김씨 세전지"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양사언이 세상을 마친후 안동김씨의 소유가 되어 전해져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박순의 {차기연사운(次寄然師韻)}이라는 시제아래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보면 금수정의 유래를 가늠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천연사(天然師)는 영평 보장산에 살았다. 내가 영평에 자리잡아 살려고 한다고 하니, 천연사가 일찍이 우두연의 좋은 경치를 말하면서 그 물가에 楊氏의 정자가 있으니 나에게 그것을 사라고 권했다. 천연사가 막 거처를 옮기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차기연사운} <思菴集>



박순이 영평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1586년(선조19) 8월의 일이다. 양사언이 세상을 마친 해는 1584년(선조17)이다. 바로 2년 뒤의 일이다. 이같은 사실에서 양사언 이후 금수정의 주인이 없이 방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안 천연사가 박순에게 그것을 사라고 권했던 것이다.







채제공(1720-1799)의 {금수정중수기}에는

"금수정이 김씨의 소유로 된 것이 여러 백년이 되었다. 김씨들은 여기에 묘를 쓰고, 여기를 전원으로 삼곤했다" 고 하였다.



이 기록을 보면 양사언의 소유였던 금수정이 김씨의 소유로 되었음이 분명해진다. 여하튼 금수정은 양사언의 사후부터는 안동김씨가 대대로 보존해 왔다.







금수정은 안동김씨 소유로 전해오면서 몇차례 중건 및 중수되었다. 채팽윤(1669-1731)의 {금수정중건상량문}이 있어 그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중건한 건물을 후손 김택인이 정조때 다시 중수하였다.



금수정은 6.25때 소실되어 장초석만 남았으나, 1989년 복원하였으며, 1990년에 난간 및 진입로 등을 정비하였다.



규모는 정면2칸, 측면2칸이며 면적은 17㎡이다. 처마 높이 4m, 최고 높이 7m로 기단은 화강암 외벌대식 초석으로 되어 있다. 목조 형태는 초익공 3량으로 덧서까래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이다.











(2) 금수정의 현액명(懸額名)에 대한 의문점



금수정은 고문헌에 錦水亭, 金水亭으로 기록되어 있어 혼란을 야기한다. 단순하게 이해될 문제도 아니다. 어쩌면 금수정의 유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자료일 수 있다.







이 정자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양사언의 문집 {봉래집}에는 錦水亭으로 표기되어 있다. 다음에서 보듯이 동주(東洲) 이민구(李敏求)의 {金水亭詩序}에서는 錦水亭이 아닌 金水亭으로 기술하고 있다.



白鷺洲在洞陰縣 南十里而遠 其水北流 抱縣治而下轉長林 一牛鳴地 ?西?水 益大 翠屛開張 爲浮雲壁---- 水?而爲潭 有亭翼然 其上爲金水亭

백로주재동음현 남십리이원 기수북류 포현치이하전장림 일우명지 ?서?수 익대 취병개장 위부운벽---- 수?이위담 유정익연 기상우이금수정



이민구(1589-1670)는 지봉 이수광의 아들이다. 그의 형인 이성구(李聖求)는 1616년(광해군8)에 영평판관에 부임하여 반월성을 개축하고 화산서원을 세우는 등 여러 공적을 남겼다.



錦水亭이 아닌 金水亭으로 개칭된 것은 이기간 동안이 아닌가 추정된다. 대략 박순이 영평에 거처를 옮긴 해인 1586년(선조19)에서 이민구가 세상을 마친 해인 1670년 사이에 개칭되었을 것이다.







최근 금수정 주변에 세워진 {안동김씨세천비} 음기에는 "吾金의 金자와 蒼水의 水자를 따서 金水라 개칭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김씨 문중에서 견강부회한 억측으로 보인다.







양사언의 기록에서 보이는 금수정과 관련을 갖고 본다면 오히려 이덕형의 다음 싯구에서 볼 수 있는 "金水銀沙(금수은사)"에서 "금빛 물결"이라는 뜻의 金水라는 명칭을 따왔을 것이다.



古相公이덕형詩曰 金水銀沙一樣平 峽雲江雨白鷗明 ?眞偶入桃源路 莫遣漁舟出洞行 (영평군읍지, 누정)

고상공이덕형시왈 금수은사일양평 협운강우백구명 ?진우인도원로 막관어주출동행



이는 "비단 물결"이라는 뜻의 명칭인 錦水와도 상통한다. 게다가 김씨 문중의 金자와도 重意的으로 쓰일 수 있어서 이렇게 개칭하였을 개연성이 짙다. <홍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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