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卒記(졸기) 06.<金작(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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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10-10 06:50 조회1,7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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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조 판서(刑曹判書) 김작(金작)의 졸기(卒記)▣





--형조 판서(刑曹判書) 김작(金작)이 졸(卒)하니 철조(輟朝)하고 부의와 제사를 내리기를 예(例)와 같이 하였다.



--김작은 자(字)가 위경(위卿)이며, 안동인(安東人)으로, 정승(政丞) 김사형(金士衡)의 증손(曾孫)이다. 정통(正統) 정묘년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경태(景泰) 갑술년에 문음(門蔭)으로 선공 녹사(繕工錄事)에 제배(除拜)되었다가 전농 직장(典農直長)으로 옮겼다. 천순(天順) 무인년에 통례문 봉례랑(通禮門奉禮郞)에 승직(陞職)되고, 얼마 안되어 감찰(監察)에 옮겼다가 공조 정랑(工曹正郞)으로 전직(轉職)되었다. 임오년에는 종부 소윤(宗簿少尹)으로 승직(陞職)되었다가 사헌 장령(司憲掌令)으로 전직(轉職)되었다. 성화(成化) 을유년에는 대호군(大護軍)으로 옮겼다가 춘천 부사(春川府使)가 되어 나갔으며, 무자년에 군기감 정(軍器監正)에 제배(除拜)되었다. 정유년에 문과(文科)에 합격하여 통정 대부(通政大夫) 병조 참지(兵曹參知)에 승직되었다가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옮겼으며, 여러 번 옮겨 도승지(都承旨)에 이르렀다. 무술년에는 일로써 파직(罷職)되었다가, 경자년에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제수되었으며, 이조 참의(吏曹參議)·형조 참의(刑曹參議)를 역임(歷任)하다가, 임인년에 가선 대부(嘉善大夫) 예조 참판(禮曹參判)으로 승직되었다. 계묘년에는 경기 관찰사(京畿觀察使)가 되어 나갔다가, 갑진년에 가정 대부(嘉靖大夫)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승직되었는데, 얼마 안되어 수지중추부사(守知中樞府事)로 옮겼다. 정미년에 어미의 병으로 사직(辭職)하였는데, 특별히 자헌 대부(資憲大夫)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승직되었으며, 이때에 이르러 졸(卒)하니, 나이 62세이다.



--효소(孝昭)라고 시호(諡號)하니, 자혜(慈惠)로우며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을 효(孝)라 하고, 용의(容儀)가 공순(恭順)하고 아름다운 것을 소(昭)라 한다. 김작은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友愛)하여 어미가 있는 포천(抱川)의 쌍곡촌(雙谷村)은 경성(京城)과의 거리가 가히 70리(里)나 되는데도 공무(公務)의 여가에 문득 가서 정성(定省)하였다. 가신(佳辰)과 영절(令節)에는 매양 형제(兄弟)들과 더불어 술잔을 받들어 축수(祝壽)하였다.



≪성종실록 215권 성종19년 4월28일(신유)≫

▣ 김주회 -

▣ 김항용 - 감사합니다. 홈에 올리겠습니다.

▣ 솔내 -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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