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의 주변인물(31) 윤해(尹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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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10-10 17:48 조회1,523회 댓글0건본문
윤해(尹諧)
1231(고종 18)∼1307(충렬왕 33). 고려의 문신. 본관은 무송(茂松). 자는 강재(康哉). 무송현(茂松縣)호장 양비(良庇)의 아들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상주사록(尙州司錄)이 되었으며, 뒤에 내시에 입적한 뒤 충렬왕을 시종하여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때 행리(行李)의 공용(供用)을 맡아 사리를 꾀하지 않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여 남은 비용을 국고로 돌렸다.
그뒤 통례문지후(通禮門祗候)가 되었다가, 곧 장흥부의 지사(知事)로 나가 일본 정벌을 위한 여몽연합군의 전함건조를 감독하였다. 이 일로 순찰사 홍자번(洪子藩)이 천거하여 흥위위장사(興威衛長史)가 되고, 전중시사(殿中侍史)를 거쳐 1286년(충렬왕 12) 동계(東界)의 초군사(招軍使)로 파견되었으나, 영월수령을 살해한 적괴(賊魁) 강윤명(康允明)을 잡지 못한 책임으로 파면되었다.
뒤에 다시 복직하여 판비서시사(判#비58書寺事)에 이르렀으나 사면(辭免)하고 고향에 돌아갔다가,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곧 전민변정도감사(田民辨正都監使)에 기용되었다. 얼마 뒤 충렬왕이 복위하자 정헌대부 국학대사성 문한사학(正獻大夫國學大司成文翰司學)으로 치사하였다.
청렴결백하여 전중시사로 있을 때는 죽도 먹지 못할 만큼 가난하여 콩으로 배를 채울 정도였으나 강직하여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일에 과단성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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