卒記(졸기) 11.<金永煦(깅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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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10-12 03:49 조회1,539회 댓글0건본문
▣ 상락후(上洛侯) 김영후(金永煦)의 졸기(卒記) ▣
--상락후(上洛侯) 김영후(金永煦)가 졸하였다.
--김영후 는 성품이 엄중(嚴重)하여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빈궁한 자가 있으면, 그 위급한 것을 구제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의 손자 사안 (士安)ㆍ사형(士衡)이 모두 20세가 넘으니, 어떤이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벼슬을 구하여 주지 않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자제(子弟)가 과연 현량하다면 국가에서 자연히 써 줄 것이요, 만일 현량하지 못하면 벼슬을 구하여 얻더라도 어떻게 보존하겠는가?” 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 이다
≪출전 : 동사강목 제14하 공민왕10년 5월(원 순제 지정 21, 1361)≫
☞ 고려왕조는 조선왕조실록같이 사관에 의해 직접 쓰여지고 평가되어진 역사서가 없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졸기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님들의 죽음 시점에 기록된 자료를 모아보는 차원에서 졸기라 이름하여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 솔내영환 -
▣ 김항용 -
▣ 김은회 -
▣ 김주회 -
--상락후(上洛侯) 김영후(金永煦)가 졸하였다.
--김영후 는 성품이 엄중(嚴重)하여 친척이나 친구 사이에 빈궁한 자가 있으면, 그 위급한 것을 구제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의 손자 사안 (士安)ㆍ사형(士衡)이 모두 20세가 넘으니, 어떤이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벼슬을 구하여 주지 않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자제(子弟)가 과연 현량하다면 국가에서 자연히 써 줄 것이요, 만일 현량하지 못하면 벼슬을 구하여 얻더라도 어떻게 보존하겠는가?” 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 이다
≪출전 : 동사강목 제14하 공민왕10년 5월(원 순제 지정 21, 1361)≫
☞ 고려왕조는 조선왕조실록같이 사관에 의해 직접 쓰여지고 평가되어진 역사서가 없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졸기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조님들의 죽음 시점에 기록된 자료를 모아보는 차원에서 졸기라 이름하여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 솔내영환 -
▣ 김항용 -
▣ 김은회 -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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