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사공 김적 의 실록상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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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식 작성일03-10-16 21:52 조회1,523회 댓글0건본문
통제사 공 김 적( 易 ) 에 관한 기록
인조27년 4월20일(무신)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김적이 사조하니, 상이 召見하였다.
효종4년 6월7일(신축)
윤이지를 형조판서로, 김남중 을 대사헌으로, 홍명하 를 동지춘추로, 김적 을 平安兵使로, 홍무적 을 우참찬 으로 삼았다.
효종6년9월25일(병오)
김적 을 북병사로 삼았다
효종6년11월17일(정유)
자전이 거처하는 수정당이 좁아 수리하는 일을 대신들과 의논하는 중 흠경각의 옛터에 자전이 거처할 전각을 짓는데 백성들에게 소문나지 않게 하려하니 김적 이 관서(關西)
에 있을 때에도 단속하고 연습하는 일을 잘 시행하지 못했다고 상이 언급함.
효종8년11월14일(임자)
김적 을 전남병사(全南兵使)로 삼았다.
효종10년3월26일(병술)
김적 을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로 삼았다.
현개 01년1월3일(기미)
행 대사헌 김남중 등이 김적을 파직할 것을 아뢰다.
아뢰기를 "통제사 김적 은 연로한 데다 풍증까지 있어서 근무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난이 많이 있으니, 파직하소서. 면년 전 면천군수 윤제가 죽어 상을 치를 때에 어떤 완악한 백성 하나가 옷을 벗은 채 알몸으로 일행을 매도하여 모욕을 가하였고, 또 지난해 군수 황덕유의 상 때에도 이변 변을 당하였는데 패거리들이 결탁하여 말썽을 피우면서 경계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난민들을 그냥놔두고 다스리지 않으면 앞으로의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니, 본도 감사로 하여금 엄중히 조사하여 계문하게 한 뒤 처치토록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현개 00/12/28(갑인)
상이 홍정당에 나아가 정태화. 정유성. 홍명하. 허적을 인견하다.
응형이 아뢰기를
"군정중에도 舟師가 더욱 긴요한데 통제사 김적은 연로하고 병이 많습니다. 이회가 청백하고 재지가 많으니 그를 장수로 차임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금년 봄에 어사를 파견하여 주사도 아울러 살피게 했는데 어사가 미리 앞질러 돌아왔으니, 다시 差遣해야 하겠습니다"
주:
통제사공은 충주일화 1편에서 언급되었던 분입니다. 즉 북병사공 김일의 형님이십니다. 족보상으로는 1594년 태어나신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만 돌아가신 것은 정확한 연대가 표기가 안되어 있습니다. 위 기록으로 견주어 보건데 1660년 무렵에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무관으로서 여러 벼슬을 하셨고 특히 북병사를 아우분과 번갈아 맡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족보상의 기록은 충주일화1에 참고사항으로 올려있습니다.
▣ 김주회 - 통제사공 김적 공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 솔내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드디어 조선왕조실록 상의 충주지역 자료가 나오는군요. 잘 읽고 있습니다.
▣ 김항용 - 예, 이젠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정중 -
인조27년 4월20일(무신)
경상좌병사(慶尙左兵使) 김적이 사조하니, 상이 召見하였다.
효종4년 6월7일(신축)
윤이지를 형조판서로, 김남중 을 대사헌으로, 홍명하 를 동지춘추로, 김적 을 平安兵使로, 홍무적 을 우참찬 으로 삼았다.
효종6년9월25일(병오)
김적 을 북병사로 삼았다
효종6년11월17일(정유)
자전이 거처하는 수정당이 좁아 수리하는 일을 대신들과 의논하는 중 흠경각의 옛터에 자전이 거처할 전각을 짓는데 백성들에게 소문나지 않게 하려하니 김적 이 관서(關西)
에 있을 때에도 단속하고 연습하는 일을 잘 시행하지 못했다고 상이 언급함.
효종8년11월14일(임자)
김적 을 전남병사(全南兵使)로 삼았다.
효종10년3월26일(병술)
김적 을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로 삼았다.
현개 01년1월3일(기미)
행 대사헌 김남중 등이 김적을 파직할 것을 아뢰다.
아뢰기를 "통제사 김적 은 연로한 데다 풍증까지 있어서 근무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난이 많이 있으니, 파직하소서. 면년 전 면천군수 윤제가 죽어 상을 치를 때에 어떤 완악한 백성 하나가 옷을 벗은 채 알몸으로 일행을 매도하여 모욕을 가하였고, 또 지난해 군수 황덕유의 상 때에도 이변 변을 당하였는데 패거리들이 결탁하여 말썽을 피우면서 경계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난민들을 그냥놔두고 다스리지 않으면 앞으로의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니, 본도 감사로 하여금 엄중히 조사하여 계문하게 한 뒤 처치토록 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현개 00/12/28(갑인)
상이 홍정당에 나아가 정태화. 정유성. 홍명하. 허적을 인견하다.
응형이 아뢰기를
"군정중에도 舟師가 더욱 긴요한데 통제사 김적은 연로하고 병이 많습니다. 이회가 청백하고 재지가 많으니 그를 장수로 차임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리고 금년 봄에 어사를 파견하여 주사도 아울러 살피게 했는데 어사가 미리 앞질러 돌아왔으니, 다시 差遣해야 하겠습니다"
주:
통제사공은 충주일화 1편에서 언급되었던 분입니다. 즉 북병사공 김일의 형님이십니다. 족보상으로는 1594년 태어나신 것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만 돌아가신 것은 정확한 연대가 표기가 안되어 있습니다. 위 기록으로 견주어 보건데 1660년 무렵에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무관으로서 여러 벼슬을 하셨고 특히 북병사를 아우분과 번갈아 맡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족보상의 기록은 충주일화1에 참고사항으로 올려있습니다.
▣ 김주회 - 통제사공 김적 공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 솔내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드디어 조선왕조실록 상의 충주지역 자료가 나오는군요. 잘 읽고 있습니다.
▣ 김항용 - 예, 이젠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 김정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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