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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金方慶(김방경)을 후원하는 李藏用(이장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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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3-10-18 18:14 조회1,4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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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方慶(김방경)의 후견인(?) 李藏用(이장용) ▣

--金方慶(김방경)이 고위 관직으로 진출하는데에는 뒷 날 三別抄亂(삼별초난)의 진압이라든가 日本征伐(일본정벌)에서 무공을 세운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고 首相(수상)의 지위에 오르는 것도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武功(무공)에 힘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주목하여야 할 것은 王室(왕실) 특히 忠烈王(충렬왕)과의 관계이다. 즉 忠烈王(충렬왕)이 세자시절, 金方慶(김방경)은 忠烈王(충렬왕)으로 부터 상당한 신임을 받은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金方慶(김방경)은 元宗廢位事件(원종폐위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연유를 물으러 왔던 元使(원사)와 함께 元(원)으로 가서 당시 세자인 忠烈王(충렬왕)을 만나고 있다. 당시 忠烈王(충렬왕)은 元宗(원종)의 復位(복위)를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고려사 김방경열전)에도 나타난 바와같이 병사를 이끌고 高麗(고려)로 들어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때 세자는 군사를 지휘할 인물을 찾고 있었는데 바로 金方慶(김방경)이 발탁되어 林衍討伐(임연토벌)의 책임을 그에게 맡기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것이 侍中(시중)인 李藏用(이장용)의 건의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세자 자신이 "甚合吾意(심합오의)"라고 한 것을 보면 세자는 金方慶(김방경)을 매우 신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세자는 金方慶(김방경)을 武班出身(무반출신)이면서도 反林衍的(반임연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다.

≪출전:고려 충렬왕대 정치세력의 동향/창원대학 논문집 제7권 제1호/김광철≫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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