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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43)송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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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10-23 22:51 조회1,4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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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분(宋#분23)


?∼1318(충숙왕 5). 고려 충렬왕 때의 행신(倖臣). 중찬(中贊)으로 치사 (致仕)한 송례(松禮)의 아들이다.
1270년(원종 11) 송례가 임유무(林惟茂)를 제거할 때에 위사장(衛士長)으로 활약하였고, 같은해 세자 심(諶:충렬왕)이 원나라에 인질이 되어 들어갈 때 상서좌승(尙書左丞)으로 활약하였다.
1273년 1월에는 대장군이 되어 원나라의 마강(馬絳)과 함께 합포(合浦)로 진출한 삼별초군을 맞아 싸웠다. 같은해 3월에는 마강을 따라 원나라 황후의 청을 받아 낙산사(洛山寺)의 관음여의주(觀音如意珠)를 가지고 원나라로 갔다.
좌우서윤 (左右庶尹)을 거쳐 1279년(충렬왕 5)에 지신사(知申事)가 되었다. 당시의 고관과 전신들은 사패(賜牌)를 받아 기현(畿縣)의 토지를 점유하였는데 그도 역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1282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서 경상도에 내려가 전함을 수리하고, 1285년에는 동지밀직사사로서 경상도 조선도지휘사 (造船都指揮使)로서 공역(功役)을 크게 일으켜 민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극심하였다.
1290년 합단(哈丹)의 침입으로 왕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첨의찬성 (僉議贊成)으로서 개경유수에 임명되었으나 강화도로 도망쳤다.
이듬해 원나라의 선무장군 진변만호(宣武將軍鎭邊萬戶)가 되고 금패(金牌)를 받았다.
이때 여진과 쌀을 밀무역한 죄목으로 동계안집사(東界安集使)에 의하여 파면되었다.
1298년에 첨의시랑찬성사가 되고, 판감찰사사가 되었으며 하정사(賀正使)로 원나라에 갔다.
이듬해에는 안향(安珦)과 함께 감수국사가 되고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가 된 뒤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이듬해에 우중찬이 되고 공신에 봉해졌으며 궤장(#궤02杖)을 하사받았다.
1303년에는 첨의좌중찬이 되고 낙랑공(樂浪公)에 봉해졌다.
1318년 중찬으로 치사하였다. 재상의 신분으로 충선왕과 충숙왕의 부자관계를 이간시키고, 심지어 충선왕비를 서흥후 전 (瑞興侯琠)에게 개가시키려는 등 갖은 모략을 일삼았으나 충선왕의 지위가 원나라 왕실에서 확고해지자 유배되었다.
시호는 양의(良毅)이다.
 




▣ 김윤만 - 신료중에서 단번에 공작의 지위에 오르신 분은 처음 상락공(김방경) 다음 낙랑공(송분)이신데 낙랑공(송분)은 고려사 열전 간신전에 실려있으니 우리 충렬공 할아버지의 위대함은 이러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하겠습니다.
▣ 김주회 -
▣ 김태영 - 귀중한 자료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항용 -
▣ 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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