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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사(金監司) 희수(希壽)에 대한 輓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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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3-10-25 16:32 조회1,7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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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감사(金監司) 희수(希壽)에 대한 輓詞<?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용재(容齋) 이행(李荇)



往歲城南別 / 지난해 성남에서 이별할 적에



臨分更一口 / 이별 앞서 다시 술한잔 마셨지



歸來未數月 / 돌아온지 몇 달이 채 못되어



奄忽見長辭 / 갑자기 세상 길을 떠나다니



故舊終誰在 / 친구래야 마침내 누가 있느뇨



生涯己可知 / 이내 생애 이미 알수 있겠군



西風吹瀣露 / 서풍이 이슬맺힌 염교에 부니



悽斷不成詞 / 너무도 비통하여 글이 안되누나



 



才名推早歲 / 재명은 어릴적부터 알려졌고



施用適當時 / 세상에 쓰임은 마침 당시였어라



際遇官方達 / 임금의 지우를 입어 관직이 높으니



驅馳病敢辭 / 병든 몸인들 외직을 감히 사양하랴



傳家一子足 / 가업을 전하는 덴 한 아들로 족하고



遺筆四方知 / 남긴 필적은 사방의 사람들 안다네



更爲斯文慟 / 다시금 사문을 위해 통곡 하노니



遊塵鎖墨池 / 먼지가 가득하여 묵지를 가렸어라 



 



묵지(墨池): 후한(後漢)의 장지(張芝)와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가 못(池)가에서 붓글씨 연습을 많이 하여 못(池) 물이 모두 먹빛이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김희수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집의 처량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출전: 容齋集>



이행 李荇 [1478~1534] 본관 덕수(德水). 자 택지(擇之). 호 용재(容齋) ·청학도인(靑鶴道人). 시호 문정(文定). 1495년(연산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리(校理)에 기용되고, 이듬해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14년 사성(司成)이 되어 지제교(知製敎)를 겸하고 이듬해 대사간과 1517년 대사헌이 되었으나 신진사류의 득세로 중추부첨지사로 좌천되자 사직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趙光祖) 일파가 거세되자 부제학이 되고, 이어 대제학· 공조참판 ·이조판서를 거쳐 1527년 우의정에 올라 대제학을 겸하였다. 1529년 《여지승람(輿地勝覽)》 수찬당상(修撰堂上)이 되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찬진(撰進)하였다. 이듬해 좌의정이 되어 김안로(金安老)를 논박하다가 중추부판사로 전직되고, 이어 함종(咸從)에 귀양가서 죽었다. 문장에 뛰어나고 글씨와 그림에도 능하였다. 후에 신원(伸寃)되고 중종 묘정(廟庭)에 배향, 문헌(文獻)으로 개시(改諡)되었다. 문집에 《용재집(容齋集)》이 있다.



 



 




▣ 김은회 - 잘 보았습니다.
▣ 김항용 - 홈에 올립니다.
▣ 김주회 - 용재 이행의 용재집에 김희수 공 만사!!! 기억하겠습니다.
▣ 김태서 -
▣ 김윤만 - 귀한 글 보았습니다.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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