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열녀 홍의달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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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03-11-04 02:40 조회1,583회 댓글0건본문
포천군 내촌면 삼거리에서 내려 내촌면 면사무소 입간판을 지나 OB베어스 스키장(47번국도)쪽으로 200M정도가면 포천개발이라는 건물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내리4리 마을로 진입하는 조그만한 도로가 있다. 이길 따라 1Km정도에 가면 마을 끝자락에 안동김씨 열녀비가 있다. 애절한 사연을 산행의 이해를 돕기위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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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녀문은 본래 조선전기 세조때 목사 성균관사성등을 역임한 홍의달의 아내 안동김씨의 정절을 기리기위하여 성종7년(1476년)나라에서 명정한 것이다. 김씨부인은 세조때 좌의정을 역임하고 좌리공신으로 피봉된 김질의 바로 매씨가 되며, 홍씨 문중에 출가한 이후 현숙하고 헌신적인 부도로 가정을 이끌며, 특히 남편과의 금슬이 좋았다. 그런데 남편 홍의달이 자식도 끼침이 없이 일찍 돌아가자 크게 애통하며 내촌면 음현리에 장사 지냈다. 김씨 부인은 한 여종을 데리고 항상 남편의 묘를 돌보면서 신혼으로 곡을 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무릅를 꿇고 앉아 있었으므로 결국 땅에 닿는 부위가 썩고 말았다. 그런데 부인은 이에 개의치 않고 곡을 하던 어느 하루는 큰 호랑이가 나타났다. 여종은 두려운 빛으로 이 사실을 알렸으나, 김씨는<죽는 것이 소원인데, 이제 무엇이 두렵겠느냐>하고 오히려 태연하였다. 그후 호랑이는 매일 찾아와서 다음날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가곤 하였다. 묘곡 3년을 마치고 김씨부인이 집으로 돌아오던날 호랑이도 집 근처까지 따라왔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뒤에 나라에서 김씨부인의 절개와 행적을 기리기위해 열녀정문을 내렸으며, 성종7년(1476년)9월 교지를 받들어 절부비를 세웠다. 이 비는 조선초기의 양식인 투구형의 옥개를 갖추었으며, 화강암의 비신은 높이210Cm,폭70Cm,두께40Cm의 규모이다. 비의 앞면에는<성화십이년 구월십사일 봉교 고행성균관사성 홍의달처 절부 안동김씨정석>이라고 쓴 비문이 새겨져있다. <퍼옴>
▣ 솔내영환 -
▣ 김은회 -
▣ 김윤만 -
▣ 김영윤 - 잘 보았습니다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윤식 - 태영 아저씨, 감사합니다. 답사 기회가 오기를 고대합니다.
▣ 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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