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종택 [도평의공고로}를 書하신 김사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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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1-11-17 23:52 조회2,011회 댓글0건본문
사촌종택 [도평의공고로}를 書하신 김사달 박사
[서봉 김사달박사 서화문집, 1985)에 보면
사촌리에 있는 ★東華亭(동화정), ★自餘堂(자여당), ★都評議公古盧(도평의공고로) 현판을 (안렴사공파) 김사달 박사께서 書하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본 홈페이지 [각파 문중회 소개] - [도평의공파(구정)] 란에 올리신 사진 중에 종택 현판인 [도평의공고로] 글씨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김사달 박사께서 書하신 우리 문중 관련 필적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西峰 金思達博士 書畵文集 (1985) 에 있는 필적>
★상락군 김충렬공 사적 <신도비> 안동소재
★충렬공詩 (貝+台 孫) 八曲 (草書)
★(익원)金泰東(김태동)장관 비문
★東華亭(동화정)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안동김씨문중
★自餘堂(자여당)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안동김씨문중
★都評議公古盧(도평의공고로) 金文秀씨댁
★念修齋(염수재) 경북 안동김씨 문중
<기타 자료에서 찾아낸 필적>
★충렬공 휘방경 신도비 경북 안동 녹전면 구송동 산117-2
★김시민 신도비 충북 괴산 능촌리 충민사 묘정
★金復元(1729-1808, 공예의 7세손) 신도비 오창 괴정 비아산 문공전문위원 의학박사 방손 사달
★一門四忠(일문사충) 충북 진천 사석 안동김씨문중
★靜慕齋(정모재) 충남 연기군 봉기리 김함(안렴사공파) 재실 현판
<충북테마기행1 충북의 문학과 예술 그 숨결을 찾아서 (충청북도, 충북학연구소, 1999. 12)>
▣ 김사달의 글씨
괴산에는 독학으로 당대에 이름을 날린 천재 의사가 있다. 그런데 그를 더욱 유명하게 하는 것을 글씨였다.
그가 괴산이 낳은 서예가인 김사달이다. 현재 "괴산군청" 이라는 현판 글씨도 그의 글씨이며, 지금은 없어져 군청에서 현판만 보관하고 있는 "읍취루( 翠樓)"라는 제호도 그의 글씨이다. "괴산군청"과 같은 한글에서는 쉽지 않지만 "읍취루"와 같은 해서(楷書)에서는 50여세(1968)의 그의 강인하고 성숙한 성격을 엿보게 한다.
청천면 사무소에서 화양동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왼쪽에 그의 유적비가 있다. 1984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비문은 한학자 이가원이 지었다.
김사달이 소중했던 것은 어떤 신식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문명을 독자적으로 흡수하여 이해했기 때문이다. 한학에만 통달해도 서양학이 쉽다는 이야기처럼, 그는 마지막 전통인이었으며 동시에 최초의 현대인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독학정신은 당시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림} 괴산군청 괴산군청 정문의 글씨는 김사달이 쓴 것이다. 그의 글씨는 청천에 많이 보관되어 있다.
{그림} 김사달의 묘
[서봉 김사달박사 서화문집, 1985)에 보면
사촌리에 있는 ★東華亭(동화정), ★自餘堂(자여당), ★都評議公古盧(도평의공고로) 현판을 (안렴사공파) 김사달 박사께서 書하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본 홈페이지 [각파 문중회 소개] - [도평의공파(구정)] 란에 올리신 사진 중에 종택 현판인 [도평의공고로] 글씨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김사달 박사께서 書하신 우리 문중 관련 필적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西峰 金思達博士 書畵文集 (1985) 에 있는 필적>
★상락군 김충렬공 사적 <신도비> 안동소재
★충렬공詩 (貝+台 孫) 八曲 (草書)
★(익원)金泰東(김태동)장관 비문
★東華亭(동화정)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안동김씨문중
★自餘堂(자여당)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안동김씨문중
★都評議公古盧(도평의공고로) 金文秀씨댁
★念修齋(염수재) 경북 안동김씨 문중
<기타 자료에서 찾아낸 필적>
★충렬공 휘방경 신도비 경북 안동 녹전면 구송동 산117-2
★김시민 신도비 충북 괴산 능촌리 충민사 묘정
★金復元(1729-1808, 공예의 7세손) 신도비 오창 괴정 비아산 문공전문위원 의학박사 방손 사달
★一門四忠(일문사충) 충북 진천 사석 안동김씨문중
★靜慕齋(정모재) 충남 연기군 봉기리 김함(안렴사공파) 재실 현판
<충북테마기행1 충북의 문학과 예술 그 숨결을 찾아서 (충청북도, 충북학연구소, 1999. 12)>
▣ 김사달의 글씨
괴산에는 독학으로 당대에 이름을 날린 천재 의사가 있다. 그런데 그를 더욱 유명하게 하는 것을 글씨였다.
그가 괴산이 낳은 서예가인 김사달이다. 현재 "괴산군청" 이라는 현판 글씨도 그의 글씨이며, 지금은 없어져 군청에서 현판만 보관하고 있는 "읍취루( 翠樓)"라는 제호도 그의 글씨이다. "괴산군청"과 같은 한글에서는 쉽지 않지만 "읍취루"와 같은 해서(楷書)에서는 50여세(1968)의 그의 강인하고 성숙한 성격을 엿보게 한다.
청천면 사무소에서 화양동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왼쪽에 그의 유적비가 있다. 1984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비문은 한학자 이가원이 지었다.
김사달이 소중했던 것은 어떤 신식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문명을 독자적으로 흡수하여 이해했기 때문이다. 한학에만 통달해도 서양학이 쉽다는 이야기처럼, 그는 마지막 전통인이었으며 동시에 최초의 현대인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독학정신은 당시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림} 괴산군청 괴산군청 정문의 글씨는 김사달이 쓴 것이다. 그의 글씨는 청천에 많이 보관되어 있다.
{그림} 김사달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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