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애 행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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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식 작성일03-12-03 03:05 조회1,570회 댓글0건본문
낙애행적서(落厓行蹟序)
예전에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포위되었을 때, 많은 장수와 군사들이 왕실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쌍령(雙嶺)에서 힘을 다해 싸우다 죽었다. 그 가운데 절개가 우뚝하여 해나 달보다 빛나고 천지사방에 두루 통할 인물로는 충장공(忠壯公) 허완(許完)이 있다.
낙애공(洛厓公) 김몽린(金夢麟: 1584~1637) 형제분 또한 그런 분이었다. 그러나 충장공(忠壯公)은 그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조정에서 작위(爵位)를 추증(追贈)1)하고 벼슬을 높여 주었으며, 관리를 보내 제사를 내려 주었고, 즉각 봉상시(奉常侍: 조선조에 제사와 시호諡號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관청)의 논의을 거쳐 시호(諡號: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죽은 뒤에 나라에서 내려 주는 이름)를 하사하였으며, 철권단서(鐵券丹書: 공신을 봉할 때 주는 부신符信과 증표證表)를 내려 그 영예(榮譽)가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낙애공(落厓公)에 대한 기록은 민멸(泯滅: 사라짐)되어 전해지는 말이 없는 듯 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추증(追贈)의 전례(典禮)를 받으셨다. 이런 이유로 이은순(李殷淳)은 조정이나 재야(在野)의 역사서(歷史書)에서 낙애공(洛厓公)을 칭찬하고 추어올리는 일이 없었음을 탄식하였고, 유진익(柳進翼)은 병조(兵曹) 참의(參의議: 육조六曹에 소속된 정3품 당상관堂上官의 벼슬로 서열은 세 번째이며 정원은 1명임)로 추증한 것은 그 업적을 평가하기에 부족하다고 탄식하였다.
슬프고도 슬프구나! 어찌하여 지위가 높은 자는 세상에 드러나고 낮은 지위에 머문 자는 알려지지 않으며, 책임이 무거운 사람은 우선시하고 직분이 가벼운 사람은 뒤로 미루어지는가?
더군다나 충장공(忠壯公)에게 죽음을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낙애공(洛厓公)에게 죽음을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충장공(忠壯公)은 영남좌도(嶺南左道) 절도사(節度使)였다.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없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낙애공(洛厓公)은 진관(鎭管: 군진軍鎭의 관할管轄 구역을 말한다)의 전대교(前隊校: 선봉장先鋒將을 말함)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죽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내가 일찍이 허판서비 (許判書碑 : 충장공忠壯公 허완許完의 碑)를 읽어보니 그 내용이 이러하였다.
"죽음을 맹서하고 병사(兵士)들의 마음을 분발시키니 병사들이 모두 사력을 다하리라 다짐하였다. 공께서 적과 격투를 벌이는 중에 휘하의 장사(壯士)들이 모두 죽게 되었다. 공께서는 도적들이 승세를 타자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스슷로 목을 베어 죽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죽지 않을 숭 벗어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에 덧붙여 낙애공(洛厓公)의 가장(家狀: 집안 조상의 행적行蹟에 관한 기록이나 행장行狀을 말한다)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구정이 있었다.
"송두선(宋斗善) 등이 마침 도망가고 있다가 공(公)을 기다려 같이 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낙애공(洛厓公)께서는 정색을 하고 그들을 책망하였다. 그리고는 곧 주먹을 불끈 쥐고 죽움을 무릅쓰고 싸우다가 마침내 적에게 상해를 입었다."
그렇다면 혹 죽지 않아도 되는데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낙애공(洛厓公)은 충장공(忠壯公)의 휘하(麾下)에 있는 몸이었다. 충장공(忠壯公)이 죽음을 맹서했다면 낙애공(洛厓公)의 죽음은 실제로 충장공(忠壯公)이 초래한 것이다. 낙애공(洛厓公)이 목숨을 바쳤다면, 충장공(忠壯公)의 죽음 또한 낙애공(洛厓公)이 죽게 한 것이다. 자기 몸을 바쳐 나라를 위해 죽은일에, 어찌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가볍고 무거움을 구별하겠는가?
내가 낙애공(洛厓公)이 죽음에 임박하여 지은 시, "흰 태양[白日]머리 위에 떠 있고, 붉은 마음[丹心] 칼 밑을 쫓네"하는 구절을 보니, 이 시는 고이 팔 세 때 <채미가(採薇歌)>2)를 읽은 경험에 그 뿌리가 있는 듯하였다. 하늘이 부여한 기품(氣稟)으로 《춘추(春秋: 공자孔子가 지은 역사서)》의 의(義)를 바로잡으며, 평소에 익힌 바가 있는 분이 아니었다면, 어찌 어려움에 임하여 구차하지 않은 삶을 선택 할 수 있었겠는가?
낙애공(洛厓公)의 시대는 지금까지 수 백 년이 지났건만, 뜻있는 선비의 감개는 아직도 그치지 않는다. 묘당(廟堂)을 세워야 한다는 논의는 주희(朱熹: 1130~1200. 남송南宋의 대학자)가 담주(潭州)에서 올린 소장(訴狀)에 비유되고, 공(公)을 기리는 논의는 정동리(鄭東里)가 험천(險川)에서 올린 상소(上梳)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낙애공(洛厓公))의 몸은 비록 죽었지만 공(公)의 행적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공의 행적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기에, 자손들이 공의 사적(事蹟)을 수집하여 책 한 권을 폅집하고는 "《낙애행적도(洛厓行蹟圖 )》"라 이름하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한 마디 말을 부탁하였으니, 그 또한 자손의 현명함이라 하겠다. 이 때문에 序를 짓는다.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경연홍문관춘추관동지의금부사(經筵弘文館春秋館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이의익(李宜翼)삼가 적다.
▣ 김주회 - 그동안 몰랐던 낙애 김몽린 공께서 우리 가문의 인물로 뜨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영환 대부님께서 <낙애행적> 한권을 구입하기도 했고, 이제 서문이 소개되는 군요. 많은 내용이 소개되기를.....
▣ 김항용 - 강식 종친님 감사합니다. 안동의 성식 어르신의 전화를 받고 이어 강식님의 전화를 받아 참으로 기뻤습니다. 오는 12월 13일에 경매 구입한 낙애행적을 영환(문, 대종회 감사)대부님께서 갖고 나오기로 약속했습니다. 강식 종친님께서는 이 날 소장하고 계신 목판본 낙애행적, 필사본 낙애행적, 번역본 낙애행적을 갖고 나오시면 상호 비교도 되고, 모든 분들이 크게 기뻐하며 또한 귀한 자료도 감상하리라 봅니다. 이 서문 내용은 본 홈 <김몽린>선조님 란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만 -
▣ 김발용 - 낙애공 휘 몽린 선조님의 행적이 드디어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주 찾아 주시어 귀한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 솔내 - 번역문을 보니 더욱 낙애선조님에 대한 공적이 새롭습니다.
▣ 김윤식 - 반갑습니다. 낙애공 할아버지 행적 소개 감사합니다. 자주 뵈옵기 바랍니다.
예전에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포위되었을 때, 많은 장수와 군사들이 왕실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쌍령(雙嶺)에서 힘을 다해 싸우다 죽었다. 그 가운데 절개가 우뚝하여 해나 달보다 빛나고 천지사방에 두루 통할 인물로는 충장공(忠壯公) 허완(許完)이 있다.
낙애공(洛厓公) 김몽린(金夢麟: 1584~1637) 형제분 또한 그런 분이었다. 그러나 충장공(忠壯公)은 그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조정에서 작위(爵位)를 추증(追贈)1)하고 벼슬을 높여 주었으며, 관리를 보내 제사를 내려 주었고, 즉각 봉상시(奉常侍: 조선조에 제사와 시호諡號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관청)의 논의을 거쳐 시호(諡號: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죽은 뒤에 나라에서 내려 주는 이름)를 하사하였으며, 철권단서(鐵券丹書: 공신을 봉할 때 주는 부신符信과 증표證表)를 내려 그 영예(榮譽)가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낙애공(落厓公)에 대한 기록은 민멸(泯滅: 사라짐)되어 전해지는 말이 없는 듯 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추증(追贈)의 전례(典禮)를 받으셨다. 이런 이유로 이은순(李殷淳)은 조정이나 재야(在野)의 역사서(歷史書)에서 낙애공(洛厓公)을 칭찬하고 추어올리는 일이 없었음을 탄식하였고, 유진익(柳進翼)은 병조(兵曹) 참의(參의議: 육조六曹에 소속된 정3품 당상관堂上官의 벼슬로 서열은 세 번째이며 정원은 1명임)로 추증한 것은 그 업적을 평가하기에 부족하다고 탄식하였다.
슬프고도 슬프구나! 어찌하여 지위가 높은 자는 세상에 드러나고 낮은 지위에 머문 자는 알려지지 않으며, 책임이 무거운 사람은 우선시하고 직분이 가벼운 사람은 뒤로 미루어지는가?
더군다나 충장공(忠壯公)에게 죽음을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낙애공(洛厓公)에게 죽음을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충장공(忠壯公)은 영남좌도(嶺南左道) 절도사(節度使)였다. 때문에 죽지 않을 수 없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낙애공(洛厓公)은 진관(鎭管: 군진軍鎭의 관할管轄 구역을 말한다)의 전대교(前隊校: 선봉장先鋒將을 말함)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죽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내가 일찍이 허판서비 (許判書碑 : 충장공忠壯公 허완許完의 碑)를 읽어보니 그 내용이 이러하였다.
"죽음을 맹서하고 병사(兵士)들의 마음을 분발시키니 병사들이 모두 사력을 다하리라 다짐하였다. 공께서 적과 격투를 벌이는 중에 휘하의 장사(壯士)들이 모두 죽게 되었다. 공께서는 도적들이 승세를 타자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스슷로 목을 베어 죽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죽지 않을 숭 벗어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이에 덧붙여 낙애공(洛厓公)의 가장(家狀: 집안 조상의 행적行蹟에 관한 기록이나 행장行狀을 말한다)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은 구정이 있었다.
"송두선(宋斗善) 등이 마침 도망가고 있다가 공(公)을 기다려 같이 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낙애공(洛厓公)께서는 정색을 하고 그들을 책망하였다. 그리고는 곧 주먹을 불끈 쥐고 죽움을 무릅쓰고 싸우다가 마침내 적에게 상해를 입었다."
그렇다면 혹 죽지 않아도 되는데 죽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낙애공(洛厓公)은 충장공(忠壯公)의 휘하(麾下)에 있는 몸이었다. 충장공(忠壯公)이 죽음을 맹서했다면 낙애공(洛厓公)의 죽음은 실제로 충장공(忠壯公)이 초래한 것이다. 낙애공(洛厓公)이 목숨을 바쳤다면, 충장공(忠壯公)의 죽음 또한 낙애공(洛厓公)이 죽게 한 것이다. 자기 몸을 바쳐 나라를 위해 죽은일에, 어찌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가볍고 무거움을 구별하겠는가?
내가 낙애공(洛厓公)이 죽음에 임박하여 지은 시, "흰 태양[白日]머리 위에 떠 있고, 붉은 마음[丹心] 칼 밑을 쫓네"하는 구절을 보니, 이 시는 고이 팔 세 때 <채미가(採薇歌)>2)를 읽은 경험에 그 뿌리가 있는 듯하였다. 하늘이 부여한 기품(氣稟)으로 《춘추(春秋: 공자孔子가 지은 역사서)》의 의(義)를 바로잡으며, 평소에 익힌 바가 있는 분이 아니었다면, 어찌 어려움에 임하여 구차하지 않은 삶을 선택 할 수 있었겠는가?
낙애공(洛厓公)의 시대는 지금까지 수 백 년이 지났건만, 뜻있는 선비의 감개는 아직도 그치지 않는다. 묘당(廟堂)을 세워야 한다는 논의는 주희(朱熹: 1130~1200. 남송南宋의 대학자)가 담주(潭州)에서 올린 소장(訴狀)에 비유되고, 공(公)을 기리는 논의는 정동리(鄭東里)가 험천(險川)에서 올린 상소(上梳)에 비견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낙애공(洛厓公))의 몸은 비록 죽었지만 공(公)의 행적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공의 행적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기에, 자손들이 공의 사적(事蹟)을 수집하여 책 한 권을 폅집하고는 "《낙애행적도(洛厓行蹟圖 )》"라 이름하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한 마디 말을 부탁하였으니, 그 또한 자손의 현명함이라 하겠다. 이 때문에 序를 짓는다.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경연홍문관춘추관동지의금부사(經筵弘文館春秋館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
이의익(李宜翼)삼가 적다.
▣ 김주회 - 그동안 몰랐던 낙애 김몽린 공께서 우리 가문의 인물로 뜨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영환 대부님께서 <낙애행적> 한권을 구입하기도 했고, 이제 서문이 소개되는 군요. 많은 내용이 소개되기를.....
▣ 김항용 - 강식 종친님 감사합니다. 안동의 성식 어르신의 전화를 받고 이어 강식님의 전화를 받아 참으로 기뻤습니다. 오는 12월 13일에 경매 구입한 낙애행적을 영환(문, 대종회 감사)대부님께서 갖고 나오기로 약속했습니다. 강식 종친님께서는 이 날 소장하고 계신 목판본 낙애행적, 필사본 낙애행적, 번역본 낙애행적을 갖고 나오시면 상호 비교도 되고, 모든 분들이 크게 기뻐하며 또한 귀한 자료도 감상하리라 봅니다. 이 서문 내용은 본 홈 <김몽린>선조님 란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윤만 -
▣ 김발용 - 낙애공 휘 몽린 선조님의 행적이 드디어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주 찾아 주시어 귀한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 김태서 -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 솔내 - 번역문을 보니 더욱 낙애선조님에 대한 공적이 새롭습니다.
▣ 김윤식 - 반갑습니다. 낙애공 할아버지 행적 소개 감사합니다. 자주 뵈옵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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