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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66)고종-8-김지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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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12-04 19:13 조회1,7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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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ow3.gif 청렴한 관리 김지대에 관한 이야기
23myth_04_pic01.jpg고종4년(1217) 거란족이 압록강을 넘어 고려의 경내로 자주 침범하여 고려측에서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조총을 원수로 삼아 군대를 이끌게 하였다. 전쟁을 앞두고 원수 조총이 병사들의 훈련을 둘러보던 중 한 소년병과 그의 방패에 시선을 멈추었다. 용맹을 상징하고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당시 병사들은 방패에 무섭고 이상한 짐승의 형상을 그려 새기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 소년병의 방패에는 한시가 새겨져 있었다.

나라의 근심은 신하의 근심이오(國患臣之患)
어버이의 걱정은 자식의 걱정이니(親憂子所憂)
어버이를 대신하여 국은에 보답하면(代親以報國)
충성과 효도를 한 번에 닦는 것이리(忠孝可雙修)

그 소년병은 나이가 많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원한 것이었다. 조충은 그의 이름과 고향, 그리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온 연유를 묻자 그 소년병은 자신의 이름이 김지대이고 연세가 많은 아버지는 가정을 돌봐야하므로 대신 자신이 자원하였으며, 나라를 위하는 일에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늠름하고 나이에 맞지 않게 당당하고 조리있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소년병의 기상에 감탄한 조충은 자신 곁에 그 소년병을 두고 계속 지켜보면서 가히 보통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김지대는 결국 장성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관리의 길에 들어섰다.
지방 관리인 전주사록에 임명되어 그곳으로 내려갔는데, 그곳 지방세력들의 세도를 견제하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잘 알아 정사에 반영하여 백성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였다. 그런 그의 면모를 알 수 있는 한 일화가 있다.

최이라는 당대 최고 권력가에게 서자 만전(최항)이란 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일찍이 중이 되어 혜심의 문하에 들어갔지만 아버지의 권세를 믿고 온갖 횡포를 부렸다. 그 만전한테는 통지라는 한 하인이 있었는데, 그는 주인을 대신하여 부리는 행패가 또 그 도가 지나쳐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바로 그곳에 김지대가 파견되었다.
김지대는 권세를 믿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나라의 기강을 흐트리는 자들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략을 자서 이를 시정하고자 하였다. 김지대가 만전이 거처하는 절에 당도하였는데, 만전은 거만을 떨며 방에서 나오지 않고 맞이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김지대는 피리와 거문고를 연주하며 만전이 그 음악소리에 방에서 나오도록 하였다.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어색하게 나온 만전은 어설픈 핑계를 대며 안찰사인 김지대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김지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채 그와 담소를 나누었다. 만전은 대화를 나누는 중에 김지대에게 이것저것 무리한 청탁을 하였는데, 김지대는 잘 알겠다며 관가에 돌아가 천천히 처리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만전은 며칠 후 자신의 수족과 같은 종 통지를 김지대에게 보내었다.
통지는 거들먹거리며 관아에 와 김지대의 앞에 섰다. 내심 벼르고 있던 김지대가 갑자기 호통을 치며 “저놈을 당당 잡아 묶어라.”라고 하니, 통지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그를 강물속에 빠뜨려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뭇사람들은 후환이 두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만전일당은 김지대의 예상치 못한 기세에 일단 몸을 사렸다. 그래서 한 동안 이 마을에서는 만전일당의 행패를 볼수 없었다.

최씨정권이 고려를 통치하고 조정의 기강이 문란했던 시절, 김지대와 같은 청백리 관리라도 있어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어루만주었다. 그는 원종7년(1226) 생을 마감하니, 조정 대신들도 그의 덕을 기려 영헌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 김윤식 -
▣ 김태서 -
▣ 김계응 -
▣ 김항용 - 계응님은 혹시 제학공파 하담 김시양 선조님 후손이 아니신가요?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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