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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湖西士林과 우리가문 17 ---송시열, 김성진 묘갈 撰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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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12-11 17:47 조회1,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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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시지

김성진(金聲振)

본관은 안동, 벼슬은 집의(執義)를 지냈는데 품성이 질실(質實)하여 허교(虛嬌)함이 없었다.

4세에 모친을 여의고 농사를 지어 정성껏 부친을 모시어 조금도 뜻을 거슬림이 없었다. 일찍 당한 모상(母喪)이 한이 되어 부상(父喪) 때에 병설(竝設)하여 삼년상을 복상(服喪)하였다.

★송시열이 글을 짓고 쓴 묘갈이 있다.







■ 연기지역의 충렬공 후예들 (1997.5, 안동김씨 연기군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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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열현감공의 장손인 ★濟는 사포서별제를 지냈고, 그의 증손인 ★聲振은 4세의 어린 나이에도 3년상을 지낸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사위는 우암 송시열의 형인 ★송시희(宋時熹)였다. 이런 인연으로 그의 묘갈을 ★송시열이 지었다. 이 가계에서 한말의 저명한 독립운동가 ★金在衡(1890-1966)이 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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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항용 -

▣ 김태영 -

▣ 김윤만 - 4세의 어린 나이에 3년상. 놀랍습니다.

▣ 김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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