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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송시열 湖西士林과 우리가문 20 ---도원리의 송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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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3-12-15 20:05 조회1,7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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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주회 작성일 : 2002/11/07 12:26 (from:211.57.153.114) 조회 : 56

Re: 노은정과 광터골 (병천 도원리)



천안 병천 도원리는



---(안렴사공파) 노은(老隱) ★김상기(金相器)의 ♠노원정 뿐만 아니라.

---도원 ★김만중의 ♠도원정,

---우암 ★송시열의 ♠삭성대와 ♠도영암,

---신독재 ★김집의 ♠도원동리비, (김집은 김장생의 아들로 송시열의 스승이기도 함)

---한강 ★정구의 ♠강당터, : 한강집을 지은 정구 (문영공 김순의 사위 정책의 둘째아들 설곡 정포의 후손, 충렬공 김방경의 제문을 지어 한강집에 수록)

---(안렴사공파) ★김옥(金 )이 활을 쏘고 무술을 연마하던 ♠사정대 등 여러 유적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천안시청 홈페이지>



● 도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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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정(老隱亭) : 검계가에 있는 정자. 큰 바위에 아담한 정자가 놓여 있고 그 아래는 냇물이 깊이 패여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숙종 때 학자 ★김상기(金相器)가 벼슬을 하려고 스물네차례나 응시하였으나 모두 낙방이 되고 노년에 모든 세상일을 잊으려고 이 정자를 짓고 큰 바위에 노은정(老隱亭) 석자를 새겼다.



♠○광터골 : 광기(廣基).광기리, 도원골 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 구리성에 웅거할 때 이곳에 관을 두었으므로 관터 골이라하던 것이 변하여 광터골 또는 광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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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성대(削成臺) : 노은정 아래에 있는 바위를 깍아서 대를 만든 듯 한 바위가 냇가에 있는데 우암 ★송시열이 삭성대 석자를 새겼다. 지금은 땅속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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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동리비 : 도원골 입구에 있는 비. 작은 비에 도원동리 대명천하(挑源洞裡大明天下)라 새겼고 그 옆에 느티나무가 있으며 앞에 도원정이 있고 그 밑 냇가에 백석탄이라 새긴 흰돌이 있다. 이 도원동리 비는 신독재 ★김집(金集)의 글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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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암(倒影岩) : 삭성대 옆에 있는 바위. 바위가 비스듬이 서 있어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도영암 석자를 새겼다고 한다.



○강당터 : 번개울 뒤에 있는 강당 터.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처가인 한씨들의 인연으로 이곳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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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대 : 안동김씨 ★김옥(金 )이 활을 쏘고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 한다.









다음 내용과 같이 송시열이 안렴사공(김사렴)을 칭송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아마도 송시열이 병천 도원리에서 김상기 공을 비롯한 우리 가문과 교유할때의 일로 생각됩니다.



▣ 안렴사공 김사렴

후세인들이 공의 학덕과 충절을 추앙하고 흠모하였는데, 우암 ●송시열 선생은 공에 대해서

"충성이 밝기로는 일월과 같고, 절개가 굳굳하기로는 산악과 같다. (忠昞日月 節高山岳)" 고 칭송하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의 고충대절을 비유하여 말하기를

"공의 충절은 백이숙제를 뛰어넘고, 만고에 변치않을 강목과 상도를 더욱 굳건히 심어 놓았다. (其孤忠大節 不讓於夷齊 樹萬古之綱常) "고 늘 일컬어 오기도 하고

또한 "공의 절개와 충성은 일월과 같이 밝고, 도산 기슭에 어린 충절은 백이숙제와 같이 드높도다. (貞忠與日月幷明 陶山一丘與首陽齊高)" 고 하였다.















▣ 김발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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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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