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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68)고종-10-몽고의 1차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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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3-12-26 21:41 조회1,7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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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의 1차침입
23politics2_01_pic01.jpg13세기 초 몽고족의 흥기와 함께 동아시아의 정세는 파란이 일기 시작했다. 몽고족은 몽고평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유목민족으로 중원의 지배를 받아오다 테무진(징기스칸)이 부족을 통일하면서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테무진은 희종2년(1206) 황제에 올라 서하를 정복하고 송과 금을 위협하며 세력이 급팽창하였다.

고종18년(1231) 징기스칸이 죽고 그 뒤를 이은 태종은 금국을 정벌하고 살리타이에게 동정(東征)단행을 명하였다. 전운의 위기에 있는 고려내부사정은 최충헌의 후계자 최이가 집권하고 있었고, 의주에서 한순, 대장군 이극인 등의 반란이 일어났고, 변방에서 동하의 포선만노 부하들이 침입하는 등 혼란스러웠다. 몽고군의 침입을 감지한 고려는 3군을 출동시키고 대장군 채송년을 북계병마사로 임명하며, 전국에 군사를 징집하여 전시태세에 돌입하였다.
23politics2_01_pic02.gif그러나 몽고의 대군을 막아내지 못하였고, 개경은 포위되었다. 고려조정은 몽고에 화친을 청할 수 밖에 없었다. 고려의 화친을 받아들인 몽고는 서북면 40여성에 민정감찰단인 다루가치 72명을 파견하고 다음해 정월 요동으로 철수하였다.
고려로서는 어려운 고비를 일단 넘기기는 하였으나, 몽고의 내정간섭과 과중한 공물요구의 부담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나친 몽고의 고압적인 자세는 점점 고려의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하였고, 결국 1232년 몽고의 압력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태도를 바꾸고 강화로의 천도를 계획하게 되었다.

실권자 최이의 강력한 추진으로 강행된 강화천도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이행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몽고는 다시금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여 고려를 내침하였다. 수전에 약한 몽고군은 강화도로 침략해 들어가지 못하고 고려조정에 천도한 것을 비난하고 고려국왕의 출륙을 요구했다. 고려의 강화정부는 몽고의 요구를 과감히 묵살하였고, 강화도를 제외한 고려 전역은 몽고군에게 무방비상태에 노출되었다.
최이는 이러한 백성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울릉도가 안전하다는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이주시키려고 했으나, 풍랑으로 익사하는 사람이 속출하자 이를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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