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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의 계곡집 --- ?유공신의 처 (절도사 김오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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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1-03 17:56 조회1,6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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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집 Ⅱ (장유 著, 1995, 민족문화추진회)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장유(張維:1587∼1638)의 시문집.



●-----유공묘비명 (柳公墓碑銘)



선묘(宣廟) 기축, 경인 연간에 ★송강(松江, 鄭澈정철의 호) 정공(鄭公)이 상부(相府)에 몸담고 있을 때, ---

그리하여 신묘년 여름에 이르러 화기(禍機)가 졸지에 발동된 결과, 송강공(松江公)이 서쪽 변방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것을 필두로 하여, ---

이에 선군자(先君子)께서도 온성(穩城)에 유배당하고, ★유공 공신(柳公 拱辰) 역시 경원(慶源)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이곳은 모두가 북쪽 변방의 원악지(遠惡地)로서 왕경(王京)과 2천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데도 시의(時議)는 여전히 계속 날뛰면서 기필코 불측(不測)한 지역에 빠뜨리고야 말려도 대들었다.



그런데 마침 이듬해에 왜란(倭亂)이 일어나 상이 장차 서쪽 지방으로 떠나려 할 무렵에 이른바 당인(黨人)들을 모두 풀어 주면서 행재(行在)로 오게 하였으므로 유공도 서용(敍用)되어 예조정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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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자(字)는 백첨(伯瞻)이다. 유씨는 본래 문화(文化)에서 유래하는데, 고려의 공신 거달(車達)의 후예인 밀직사(密直司) 언침(彦沈)에 이르러 진주(晉州)로 이적(移籍)하면서 마침내 진주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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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절도사 ★오(金+吳)의 딸로서 부도(婦道)를 갖추고 있었는데, 공보다 5년 앞서서 죽었으며 현재 공과 부장되어 있다.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 위(偉)는 현감이고, 차남은 준(儁)이며, 장녀는 홍명남(洪命男)에게 출가하였고, 차녀는 심익세(沈翼世)에게 출가하였다. 내외손은 모두 기록하지 못한다.



사자(嗣子)인 위가 행장을 가지고 찾아와서 말하기를, "선인(先人)의 장례를 모신 지 지금 25년이 되는데 아직껏 묘도(墓道)에 새기는 일을 하지 못하였다. 이는 어쩌면 이때를 기다린 듯한 느낌도 드는데, 그래서 감히 명을 써 주기를 청하게 되었다." 하였다.

아, 내가 어떻게 감히 거부할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감히 사양을 하겠는가. 다음과 같이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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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항용 - 김오 선조님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선조때 절도사이며 따님을 유공에게 시집을 보내신 분이군요.

▣ 김주회 - 우리가문 최초의 족보 1580년 경진보 宇쪽에 兵使를 지내신 金,金+吳 라는 분이 계십니다. 전서공파로서 현감을 지내고 효자정려가 있는 金師秀의 아들이십니다. 선계를 보면 김휴-김익정-김경-김부녕-김귀년-김사수(현감)-김오(병사)-金九鼎 가계입니다. 충렬공 행장 중에 김덕룡(익)이 평양에서 인출 반포한 또 한책이 있다고 金九鼎이 근지한 것이 있는데 시기적으로 보아 김오의 아들 김구정일 것 같습니다.

▣ 김윤만 - 병자호란 때 명신 장유의 配位가 안동김씨시군요.

▣ 솔내영환 - 점점 깊은 곳을 향하여 발굴되는 우리가문의 역사. 우리 모두 감사드립니다.

▣ 김윤식 - 평양지 선생안에 기록돼 있는 분이 바로 휘 덕자룡자 할아버지셨군요. 혹시나 했는데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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