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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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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1-05 20:46 조회1,3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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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01/02 16:25]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문체의 반란, 熱河日記



청(淸)의 수도 열하(熱河)로 향하는 길은 멀고 험했다. 마침 장마로 불어난 압록강의 물살은 사정없이 거세져서 밧줄로 단단히 묶은 말과 수레의 뒤꽁무니를 부여잡고 물살을 헤쳐 나갔다. 압록강을 건너니 요하(遼河)가 가로막는다. 요하를 건너면 요동(遼東)이다. 여로가 아무리 험해도 청 고종(高宗)의 생일 축하 차 파견된 연행사(燕行使) 일행을 따라나선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입소문과 책으로만 접해 온 대륙의 문물을 직접 확인하러 나선 길이 수천리면 어떠랴. 동역의 작은 왕조인 조선의 선비에게 대륙은 유일한 준거이자 세계의 전부였다. 세계가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확인하려는 ★연암의 욕망은 장맛비에 젖어도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럼에도 불혹의 나이를 넘긴 그의 감수성은 작은 마을에 피어오르는 새벽 시간의 그윽한 풍경을 지나치지 못했다. “아침에 들창을 여니 지루하던 비가 깨끗이 개고, 따스한 바람이 이따금 불어오더니 석류꽃이 땅에 가득 떨어져 붉은 진흙으로 변해버렸다. 수구화는 이슬에 함빡 젖고, 옥잠화는 눈보다 더 희게 머리를 쳐든다.”(이가원 역 ‘열하일기’)



서인의 고집스런 이론적 결벽증과 남인의 기개 없는 유연성을 결합하고자 절치부심했던 정조의 그늘 뒤에서 ★박지원은 남다른 고민을 키워갔다. 표백된 정신세계에 나라과 백성이 질식되기 전에 외부 세계와 소통할 환풍구를 뚫는 것, 논리투쟁에 목숨을 거는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뒤엎는 것, 그것은 인식혁명이었다. 규장각의 막후 실력자 ★연암은 모반을 구상했다. 그가 돌아와 인식혁명의 보따리를 풀어놓기를 기다리는 규장각의 젊은 학자들이 눈에 삼삼했다. 규장각 서실에서 정조를 보위하던 젊은 문인들은 요동과 산해관에서, 심양과 연경과 열하에서 직접 목격한 삶의 양식들에 대한 관찰기와 그것들을 담아내는 ★연암의 자유분방한 문체가 사대부의 이념적 울타리를 사정없이 무너뜨리기를 바랐다. ★연암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청의 대중교통 수단인 ‘태평차’를 보고 이렇게 일갈했다.



“사대부들은 평소에 글을 읽을 때, ‘주례’는 성인이 지으신 글이야, 하고 떠들어댔으나, 마침내 태평차 만드는 기술이 어떠하며 그 움직이는 방법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도무지 연구하지 않는다.” 그리곤 마치 기계공학도처럼 태평차의 도면을 정밀한 문장으로 그렸다. 주자학의 대부인 송시열이 태평차 바퀴에 깔리는 듯했다.



‘문체의 반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대부의 경전이었던 성리학적 문법을 자유로운 상상력과 사실주의적 관찰 그리고 불경스런 비유조차 거리낌없이 동원하는 자유인의 글쓰기로 파괴하고자 한 것이다. ★연암은 당대의 문장가였다. ‘열하일기’는 그의 정신적 스승인 김시습조차도 주저했던 묘사들로 가득찬 이념의 여행기이자 비판적 소설이고, 육경고문(六經古文)에 집착하는 학자들을 비웃는 도발적 에세이다. 십리하(十里河)를 떠나 성경(盛京)으로 가는 길에 ★연암은 노부부를 만났다. “주인은 긴 수염이 희끗희끗한 늙은이로 오똑하게 방 속 나지막한 걸상에 걸터앉았고 창 밖에는 교의를 마주하여 한 할멈이 앉아 있다. 머리 위에는 희붉은 촉규화 한 봉우리를 꽂았으며, 옷은 야청 빛깔에 복숭아꽃 무늬 놓은 치마를 입었다.” 조선 최대의 문인 ●허난설헌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묘사를 할 수 있으랴. 이런 시선이라면 치안 제도, 성곽, 포장도로, 시장 상인, 관리들의 말과 어투, 학자들의 이념과 세계관 등이 정밀화로 포착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조선 선비들의 허위에 화가 치밀었는지 느닷없이 호랑이를 등장시켜 문약한 선비의 전형인 북곽 선생을 물어뜯는다 (‘호질 虎叱’).



영의정 발탁설이 나돌았던 상황에서도 ★연암은 사대부의 인식론을 허학(虛學)으로 비판하고, 위험천만한 문장으로 소설을 썼다. 최고 권력자 정조의 총애를 받는 학자가 스스로 ‘문제아적 개인’임을 선택한 것은 자유로운 정신세계로 망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표의언어인 한문으로 담아내기 벅찬 ★연암의 풍요로운 상상력과 문체가 육경고문에 포획된 정신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초가을, 8월 8일, 열하를 백여리 앞둔 길에 늘어선 조공 대열에 끼여 ★연암은 말잔등 위에서 꾸벅꾸벅 존다. “눈시울이 구름장처럼 무겁고 하품이 조수 밀리듯 한다. 때는 가을, 매미 소리가 가느다란 실오리를 뽑고 태공에 흩어진 꽃봉우리가 어지러이 떨어지며, 그 아늑한 마음은 도교의 묵상과 같고, 놀라서 깰 때는 선가의 돈오(頓悟)와 다름없었다.” 여독에 겨운 단잠 속에서 ★연암은 12년 후에 닥쳐올 문체반정(文體反正)의 회오리를 예감하지 못한다. 정학(正學)을 고수하라는 서인학자들의 상소에 못 이겨 정조는 ★연암과 그의 문하생들에게 회개할 것을 명했고, 정조가 죽자 그들은 규장각에서 쫓겨났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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