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의 주변인물들(73)원종-1-원종시대의 충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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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06 20:48 조회1,526회 댓글0건본문
원종(1219-1274)은 1259년부터 1274년까지 16년간 재위했습니다.
충렬공할아버님 48세부터 63세까지의 기간입니다.
원종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를 살펴보는 것도 충렬공할아버님의 일생을 조명해보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 생각됩니다.
이기간의 할아버님 연보를 살펴보면
1265(을축) 54세 1월에 광평공 순과 함께 진봉사로 원에 가서 5월에 돌아셨으며
1268(무진) 57세 2월에 상장군 전분의 무고로 인해 남경수로 좌천,
3일만에 판례빈성사 서북면병마어사와 내각으로 형부상서 추밀원부사에 승진,북계로 가셨음.
12월에 임행이 김준을 죽이고 정권을 잡음.
1269(기사) 58세 6월에 임면이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 창을 신왕으로 세움.
9월에 원경까지 가서 토역군을 청함
10월에 최탄, 한신 등이 북계에서 반란
12월에 동지추밀원사어사대부를 배명함
1270(경오) 59세 1월 몽장 몽가독군과 같이 서경(평양)에 머물면서 몽고군의 대동강 도하를 저지시킴.
행궁에 가서 왕을 배알함.
5월 강도에서 개경으로 환도, 이 때 삼별초가 반란함.
9 월 전하도 추토사를 피명하여 몽장아해와 더불어 진도의 삼별초를 침.
1271(신미) 60세 5월 혼도. 홍다구와 더불어 진도의 삼별초를 섬멸함. 김통정이 삼별초의 무리를
거느리고 제주에 들어감.
1272(임신) 61세 4월, 전라도 전함 16,000항으로 탐라(제주)의 삼별초를 치고
6월에 개환하다.
1273(계유) 62세 1월 문하시랑에 승하고 판추토사가 되다. 2월에 중군행영병마원수가 되어
제주의 삼별초를 섬멸하다.
7월 원제 세조의 소환으로 원나라에 가서 금안. 채복. 금 은 전을 상으로 받다. 문하시중에 배명되다.
세조로 부터 개부의 동삼사에 배명되다.
1274(갑술) 63세 1월 동남도 도독사로서 홍다구와 함께 일본 정벌에 필요한 전함축조를 감독하다.
6월 원종이 죽고 거가 충렬왕으로 오르다.
원종의 생애
원종의 생애
원종의 생애(재위 1259~1274)
▶ 원종은 고종과 원혜왕후 유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1219년 3월에 태어났다. 초명은 전, 이름은 식, 자는 일신(日新)이다.
그는 1214년 정월에 태자에 책봉되어 1259년 4월에 몽고와의 화의조약에 따라 고종을 대신해서 몽고에 입조했다. 그가 몽고에 있었기 때문에 1259년 고종이 서거하자 김준이 그의 동생 안경공 창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많은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결국 원종은 1259년 6월 고종의 뒤를 이어 4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 1261년 태자를 몽고에 보내 아리패가(阿里?哥)의 평정을 축하하는 등 몽고에 성의를 표명하여 원활한 국교수립에 노력하였다. 1268년 환도를 준비하기 위해 개성에 출배도감(出排都監)을 설치하였다.
1269년 태자를 몽고에 보냈으며, 친몽정책과 개경환도를 추진하다가 임연에게 폐위당하여 동생 안경공 창이 왕위에 올랐으나, 원의 도움으로 4개월만에 복위되어 다시 몽고에 갔다가 다음해에 돌아왔다. 이해에 서경에서 최탄(崔坦) 등이 임연을 타도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 1270년 임연이 죽자 원종은 그 아들 임유무를 교정별감으로 임명하였는데, 그가 모반함으로 주살하였다. 그해 태자와 함께 몽고로부터 돌아와 개경환도를 실현하였다. 이에 배중손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가 항전을 하였으나 1273년 진압되었다.
몽고와의 화친에 주력하고 심지어 결혼도감을 설치하여 고려의 여인들을 강제로 몽고에 공녀로 뽑아 보내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시호는 순효(順孝), 원나라의 시호는 충경(忠敬)이며, 능은 소릉이다.
▣ 김항용 -
▣ 김윤식 -
▣ 김태서 -
▣ 김윤만 -
충렬공할아버님 48세부터 63세까지의 기간입니다.
원종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를 살펴보는 것도 충렬공할아버님의 일생을 조명해보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리라 생각됩니다.
이기간의 할아버님 연보를 살펴보면
1265(을축) 54세 1월에 광평공 순과 함께 진봉사로 원에 가서 5월에 돌아셨으며
1268(무진) 57세 2월에 상장군 전분의 무고로 인해 남경수로 좌천,
3일만에 판례빈성사 서북면병마어사와 내각으로 형부상서 추밀원부사에 승진,북계로 가셨음.
12월에 임행이 김준을 죽이고 정권을 잡음.
1269(기사) 58세 6월에 임면이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 창을 신왕으로 세움.
9월에 원경까지 가서 토역군을 청함
10월에 최탄, 한신 등이 북계에서 반란
12월에 동지추밀원사어사대부를 배명함
1270(경오) 59세 1월 몽장 몽가독군과 같이 서경(평양)에 머물면서 몽고군의 대동강 도하를 저지시킴.
행궁에 가서 왕을 배알함.
5월 강도에서 개경으로 환도, 이 때 삼별초가 반란함.
9 월 전하도 추토사를 피명하여 몽장아해와 더불어 진도의 삼별초를 침.
1271(신미) 60세 5월 혼도. 홍다구와 더불어 진도의 삼별초를 섬멸함. 김통정이 삼별초의 무리를
거느리고 제주에 들어감.
1272(임신) 61세 4월, 전라도 전함 16,000항으로 탐라(제주)의 삼별초를 치고
6월에 개환하다.
1273(계유) 62세 1월 문하시랑에 승하고 판추토사가 되다. 2월에 중군행영병마원수가 되어
제주의 삼별초를 섬멸하다.
7월 원제 세조의 소환으로 원나라에 가서 금안. 채복. 금 은 전을 상으로 받다. 문하시중에 배명되다.
세조로 부터 개부의 동삼사에 배명되다.
1274(갑술) 63세 1월 동남도 도독사로서 홍다구와 함께 일본 정벌에 필요한 전함축조를 감독하다.
6월 원종이 죽고 거가 충렬왕으로 오르다.
원종의 생애
원종의 생애
원종의 생애(재위 1259~1274)
▶ 원종은 고종과 원혜왕후 유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1219년 3월에 태어났다. 초명은 전, 이름은 식, 자는 일신(日新)이다.
그는 1214년 정월에 태자에 책봉되어 1259년 4월에 몽고와의 화의조약에 따라 고종을 대신해서 몽고에 입조했다. 그가 몽고에 있었기 때문에 1259년 고종이 서거하자 김준이 그의 동생 안경공 창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많은 신하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결국 원종은 1259년 6월 고종의 뒤를 이어 4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 1261년 태자를 몽고에 보내 아리패가(阿里?哥)의 평정을 축하하는 등 몽고에 성의를 표명하여 원활한 국교수립에 노력하였다. 1268년 환도를 준비하기 위해 개성에 출배도감(出排都監)을 설치하였다.
1269년 태자를 몽고에 보냈으며, 친몽정책과 개경환도를 추진하다가 임연에게 폐위당하여 동생 안경공 창이 왕위에 올랐으나, 원의 도움으로 4개월만에 복위되어 다시 몽고에 갔다가 다음해에 돌아왔다. 이해에 서경에서 최탄(崔坦) 등이 임연을 타도한다는 구실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 1270년 임연이 죽자 원종은 그 아들 임유무를 교정별감으로 임명하였는데, 그가 모반함으로 주살하였다. 그해 태자와 함께 몽고로부터 돌아와 개경환도를 실현하였다. 이에 배중손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가 항전을 하였으나 1273년 진압되었다.
몽고와의 화친에 주력하고 심지어 결혼도감을 설치하여 고려의 여인들을 강제로 몽고에 공녀로 뽑아 보내어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시호는 순효(順孝), 원나라의 시호는 충경(忠敬)이며, 능은 소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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