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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의 주변인물들(84)출렬왕-5-충선왕에게 선위와 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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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1-19 19:16 조회1,7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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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왕의 선위
25event2_01_pic01.jpg충렬왕과 장목왕후(제국대장공주) 사이에 태어난
세자 원(?)은 원과의 화친조건으로 원에 볼모로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1296년 진왕 감마라의 딸 계국대장공주에게 장가들어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다. 그런데 세자와 충렬왕 사이는 원만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장목왕후의 독선과 원의 내정간섭으로 정사에 흥미를 잃은 충렬왕은 사냥에 열중하고 궁인 무비에게 빠져 살았던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국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무비는 거만해졌고 그녀를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1297년 5월 장목왕후가 사망하자 모친상을 당한 세자가 7월에 귀국하였다. 귀국한 세자는 평소 모후의 큰 근심거리였던 무비와 환관 도성기ㆍ최세연, 전숙, 방종저 등과 중랑장 김근을 죽이고 그의 무리 40여명을 귀양보내고는 원으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부친인 충렬왕과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이로써 원황실은 세자 원을 지지하게 되었고, 측근세력을 잃은 충렬왕은 스스로 왕위를 내놓겠다는 글을 원에 보내었다. 1298년 1월 세자 원이 왕위에 즉위하니 이가 바로
충선왕이다.

 

충렬왕의 복위
25event2_02_pic01.jpg원 황실의 기대와는 달리
충선왕은 고려제도를 복원하는 등 자주적인 기틀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그런데다가 왕비 계국대장공주가 그를 원에 무고하는 바람에 즉위 7개월만에 원으로 압송되었다.

충선왕이 물러남으로써 다시 충렬왕이 복위하였다. 왕위를 되찾은 충렬왕은 아들 충선왕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자신의 후계자로 10촌 종제인 서흥후 전을 지목하여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계국대장공주를 그에게 개가시키려고 하였다. 충렬왕은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1305년 직접 원나라에 입조하여 2년간 머물었다.

당시 원나라 황실은 적자를 두지 못해 황실내 황제자리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지도 있었다. 충선왕이 지지하고 있던 희녕왕 하야스(무종)가 차기 왕으로 유력시되자 상황은 다시 역전되었다. 충선왕은 그동안 자신과 부왕 사이를 이간질시키던 왕유소, 송방영, 송린, 한신 및 그 일당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1307년 정월 원 성종이 서거하고 무종이 즉위하였다. 무종의 즉위에 충선왕이 공을 세웠고, 이로인해 충선왕은 무종의 신임을 얻어 세력이 더욱 강성해졌다.
충렬왕의 계획은 이 때문에 무산되었고, 힘없이 고려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충렬왕은 원 황실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는 충선왕에게 실권을 빼앗긴채 이름뿐인 왕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다가 다음해 1308년 생을 마감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사이의 대립은 종결되었다.




▣ 김주회 - 1298년 충렬왕의 선위와 충선왕의 즉위, 7개월만에 충렬왕의 복위. 이 과정에서 충렬왕파와 충선왕파의 알력과 세력다툼 속에 충렬공과 김흔 장군도 휘말리게 됩니다. 충선왕의 편에 서서.
▣ 김항용 -
▣ 김윤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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