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묘 출토의복 02--- 포천 김확묘 (경기도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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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1-30 08:34 조회1,459회 댓글0건본문
작성자 :김영환 작성일 : 2002/05/02 11:00 (from:211.105.92.220) 조회 : 72
금수정부근에서 많은[100여점] 의류 출토
서운관정공파 김첨선조님의 의복 수점을 보고 기쁜 마음을 참을 수 없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소식은 미리 현종 여러분에게만 알려 드립니다.
1991년 봄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에서 문온공할아버님의 후손이신
철원부사를 역임하시고 상의원정으로 치사하신 김확(1572-1653) 할아버님의
이장을 위한 파묘가 있었습니다.
김확 할아버님은 지봉 이수광, 교산 허균과 처남 매부사이이십니다.
너무나도 두터운 회닫이때문에 굴삭기로서 회곽을 깨고나니
그속에 향나무로 만든 두께 10쎈치 정도의 관이 보였습니다.
아직도 향내음이 진동하는 가운데 관을 어렵게 열었더니 그 관 속에는
또 관이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겉관(곽)과 속관(관)이었습니다.
이 관곽 모두 약 2쎈치 정도의 숯가루를 입혔고 한지로 쌓여져 있었습니다.
그속에 염습을 하지 않고 평상복 그대로 입고 계신 할아버님, 할머님이
돌아가실때의 그 모습 99%로 계셨고, 그 주위를 많은 의류로 꼭꼭 채워저 있었습니다.
그 때의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 여러장 있어 지금 다시 살펴 보아도 정말 살아 계신 듯 합니다.
미이라가 되어 건조된 상태로 발견된 예는 많이 들었지만 피부도 조금도 상하지 않으시고
치아도 그대로이며, 심지어 가장 먼저 상한다는 안구도 그대로 였습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라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습니다.
새로 마련한 수의로서 이장을 모시고 구묘의 모습 그대로, 석물도 그대로 옮겨 모셨습니다.
여기에서 발굴된 지석 또한 백자로 되어 있는 9장(복제본 2개 포함 도합 11장)은 현재
종중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이 사진은 제가 얼마전에 {김확 지석} 이라는 제목으로
본 홈에 게재 하였었습니다. 아울러 정신문화연구원에도 이 지석 파일을 기증하여
디지탈한국 홈 페이지에 올려 있습니다. 보시고 싶으신 분은 본인에게 연락 주시면
보내드릴 수 있으며, 디지탈한국 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출토된 의류는 단국대 고전복식박물관 팀과 본인이 직접 한점 한 점 챙겨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 의류는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서 정밀 조사에 들어 갔으며 곧 조사 보고서가 나오리라
기대 됩니다. 특히 할아버님이 돌아가실 당시의 직함이 궁중의 의복을 맡은 기관(상의원)의
최고 책임자이시었기 때문에 당시의 궁중의복의 원단도 많을 것으로 단대석주선박물관 팀의
의 견 이었습니다. 그 질이나(전혀 손상되지 않았으니까요-할아버님 모습이 그 대로인대 하물며 의복이야 그 당시 그대로이지요) 양(100여점이 넘을 것임), 종류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출토의류와는 비교가 안 될 것으로 사료 됩니다.
자세한 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여러분에게 먼저 알려 드리겠습니다.
김확선조님은 1572(선조 5)에 태어나신 조선 중기의 문신이십니다.
안동김씨 문온공의9세손이시며 자는 정경(正卿), 호는 금사(金沙).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대섭(大涉)이시며, 어버니는 이조판서 청파군 심전의 따님이십니다.
두명의 누님이 태어난 후 막내로 태어나시어 어려서 집안과 교류가 깊었던
초당 허엽의 아들 하곡 허봉에게서 공부를 하시었습니다.
후에 작은누님이 허봉의 동생 허균에게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큰 누님은 지봉유설의 저자 지봉 이수광에게 출가하셨습니다.
허봉에게서 열심히 공부하여 1589년 사마시에 합격, 진사가 되시었으나,
아버님의 급서의 충격으로 과거를 포기하였다가 늦게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시었습니다.
그후 철원부사(鐵原府使)를 지내시고 상의원정으로 치사하시었습니다.
일찍이 하곡(荷谷) 허봉(許봉)에게 수학하여, 문장이 뛰어나 사림들 사이에
명성이 높았다고 어려 곳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병조정랑(兵郎)으로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호위하여
한강을 건넜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는 동궁을 배위(陪衛)하여 남행(南行)하는 등 국가의
비상시에 왕실의 안위를 담당한 바 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653(효종 4). 에 돌아가셨습니다.
묘지명은 생질(큰누님+지봉이수광)인 판서 이민구가 지었습니다.
이민구의 형은 영의정을 지낸 이성구입니다.
작성자 :김윤식 작성일 : 2003/09/05 00:50 (from:211.201.4.12) 조회 : 106
포천지역 선조님 묘소 답사 02
부사공 묘갈과 상석
규모가 상당히 크면서도 매우 정갈해 보는 이를 긴장시킬 정도입니다.
비갈에는 "통훈대부 상의원정 금사 김공 확 지묘 숙부인 동래정씨부"라 적혀 있습니다.
비갈에 한국동란 당시의 총탄 자국이 많아 치열했던 흔적을 고스란히 전해 줍니다.
철원부사공(휘 확) 묘소는 부사공(휘 명리) 묘소 인근입니다. 비갈과 상석이 당시로서는 대단히 큰 규모일 뿐만 아니라, 깔끔하고 단아해 보는 사람을 긴장시킬 정도입니다.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쌍인데, 문인석은 깊이 조각해 입체감이 두드러집니다.
비갈은 아래쪽보다 위쪽이 조금 넓은 형태입니다. 묘갈에는 "통훈대부 상의원정 금사 김공 확지묘 숙부인 동래정씨부"라 적혀 있습니다.
철원부사공 묘소는 올해 추동리에서 옮겨 모셨는데, 이때 조선시대 의복이 출토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복식 연구의 선구자인 석주선 여사가 몸담았던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이 소식을 듣고 큰 관심을 기울였으나, 현재 경기도박물관에 보관돼 있다고 합니다.
지봉 이수광과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 철원부사공의 매부입니다. 또한 철원부사공께서는 허균의 형이자 당대 정계의 거두인 하곡 허봉에게서 학문을 닦았습니다.
▣ 김항용 -
▣ 솔내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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