寓庵集(우암집) 국역화 15--- 화산군 先系의 교유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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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2-02 22:47 조회1,684회 댓글0건본문
화산군 先系의 교유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 김종손---①김성---①김공량(김완,김척,김주) ②김공석 ③김공망
------------②김지---②김공언 ③김공예
1) ●김안국은 ★김공언과 교유가 있었으며, 김공언의 아버지이신 ★김지의 묘갈을 찬하기도 하여 <모재집>에 전하고 있습니다.
2) 화산군 ★김주는 모재 김안국의 門人으로 동호 독서당에서 사가독서할 때 퇴계 이황 등과 교유가 깊어서 <퇴계문집>에 교유시 여러 편이 실려 있고,
퇴계 이황도 ---34세 때에 ♠여주에 은거중인 모재 김안국을 권발과 같이 尋訪(심방)했으니 이때부터 퇴계의 견문이 많이 넓어졌고 --- 라는 기록으로 볼 때 모재 김안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으며,
참고로 공량의 손자 ★김충남과 공망의 후손 ★김억려는 퇴계의 문인입니다.
3) 또한 퇴계 이황과 교유한 조선조 중기의 명필 ●송인은 ★김공석의 묘비(김주 찬, 송인 서)와 김로의 묘비(정사룡 찬, 송인 서, 신효중 전액)를 서하고, 공석의 동생인 ★김공망의 묘비(송인 찬, 김이 서)를 찬하였습니다.
그리고 송인의 조부 송질의 묘비(성세창 문, 김로 서, 박영 전)는 (서운관정공파) 김로가 서하기도 하였습니다.
4) 그리고 서운관정공파 김희수는 ★김공망과 관직생활을 같이 하였으며, 희수의 아들 김로는 ★김공량의 묘갈(정사룡 찬, 김로 서)과 ★김공예의 묘갈(성세창 찬, 김로 서)을 서하였으며, 로의 아들 김홍도는 퇴계의 문인입니다.
5) 정사룡은 ★김공량의 묘갈(정사룡 찬, 김로 서)과 김로의 묘비(정사룡 찬, 송인 서, 신효중 전액), 김성동 묘비(정사룡 찬, 김종수 서)를 찬하였고,
김충갑 신도비에 보면
---명종선조(明宗宣祖)때 최고문장인 호음(湖陰) 정사룡(鄭士龍)이 공(公)의 사부(詞賦)를 읽어보고 당대 문장이라 항상 칭찬했으며, 혹 봄바람이 물결을 일으키는(春風 水) 즐거움이 된다고 했으며, 혹 신선의 골격이며 도인의 풍채로 여겨 물외에 표연(飄然)하며 대절(大節)이 당당해서 빼앗기지 않을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 라 되어 있습니다.
○송질묘비 : 재양주, 성세창 문, ★김로 서, 박영 전
○남변묘표 : 재광주, 김안국 문, ★김로 서
○★김공석묘갈 : 재여주, ★김주 문, 송인 서
○★김공망묘비 : 재양주, 이암 송인 문, ★김이 서병전
○★김공량 묘비 : 호음 정사룡 찬, 동고 ★김로 서
○★김공예 묘갈 : 성세창 찬, 동고 ★김로 서
○★김희수 묘비 : 심정 찬, 동고 ★김로 서
○★김로 묘비 : 호음 정사룡 찬, 이암 송인 서, 신효중 전액
○★김성동 묘비 : 정사룡 撰, 김종수 書
● 김안국(金安國)
1478(성종 9)∼1543(중종 38). 조선시대 문신·학자. 본관은 의성. 자는 국경(國卿), 호는 모재(慕齋).
참봉 연(連)의 아들이며, ★정국(正國)의 형이다. ★조광조(趙光祖)·기준(奇遵) 등과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으로 도학에 통달하여 지치주의(至治主義)사림파의 선도자가 되었다.
1501년(연산군 7) 생진과에 합격, 1503년에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으며, 이어 박사·부수찬·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507년(중종 2)에는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 지평·장령·예조참의·대사간·공조판서 등을 지냈다.
1517년 경상도관찰사로 파견되어 각 향교에 《소학》을 권하고, 《농서언해 農書諺解》·《잠서언해 蠶書諺解》·《이륜행실도언해 二倫行實圖諺解》·《여씨향약언해 呂氏鄕約諺解》·《정속언해 正俗諺解》 등의 언해서와 《벽온방 #벽17瘟方》·《창진방 瘡疹方》 등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였으며 향약을 시행하도록 하여 교화사업에 힘썼다.
1519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참찬이 되었으나 같은해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서 조광조 일파의 소장파 명신들이 죽음을 당할 때, 겨우 화를 면하고 파직되어 경기도 ★이천에 내려가서 후진들을 가르치며 한가히 지냈다.
1532년에 다시 등용되어 예조판서·대사헌·병조판서·좌참찬·대제학·찬성·판중추부사·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을 역임하였으며, 1541년 병조판서 때에 천문·역법·병법 등에 관한 서적의 구입을 상소하고, 물이끼〔水苔〕와 닥〔楮〕을 화합시켜 태지(苔紙)를 만들어 왕에게 바치고 이를 권장하였다.
사대부출신 관료로서 성리학적 이념에 의한 통치의 강화에 힘썼으며, 중국문화를 수용,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였다.
시문으로도 명성이 있었으며 대제학으로 죽은 뒤 인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으며, 여주의 기천서원(沂川書院)과 이천의 설봉서원(雪峰書院) 및 의성의 빙계서원(氷溪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저서로는 《모재집》·《모재가훈 慕齋家訓》·《동몽선습 童蒙先習》 등이 있고, 편서(編書)로는 《이륜행실도언해》·《성리대전언해 性理大典諺解》·《농서언해》·《잠서언해》·《여씨향약언해》·《정속언해》·《벽온방》·《창진방》 등이 있다.
참고문헌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慕齋集. 〈丁淳睦〉
● 송인(宋寅)
1517(중종 12)∼1584(선조 17). 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명중 (明仲), 호는 이암(#이96庵).
영의정 ★질(#질34)의 손자이며, 지한(之翰)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어려서 어머니가 죽자 외가에서 자랐다.
10세에 중종의 셋째서녀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결혼하여 여성위(礪城尉)가 되고, 명종 때 여성군(礪城君)에 봉해졌다. 의빈부·충훈부·사옹원·상의원 등에서 요직을 역임하고, 도총관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이황(李滉)·★조식(曺植)·★이민구(李敏求)·정렴(鄭#염11)·★이이(李珥)·★성혼(成渾)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유하였으며, 만년에는 선조의 자문 역할을 하였다.
글과 글씨에 능하여 산릉 (山陵)의 지(誌)와 궁전의 액(額)으로부터 사대부의 비갈(碑碣)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과 글씨를 남겼다. 그는 특히 오흥(吳興)의 필법을 받아 해서를 잘 썼다고 한다.
저서로는 《이암유고》 12권 4책이 있다.
그의 글씨는 양주의 덕흥대원군신도비(德興大院君神道碑)·송지한묘갈(宋之翰墓글), 남원의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부안의 김석옥묘비(金錫沃墓碑), 여주의 ★김공석묘갈(金公奭墓글), 남양의 영상홍언필비(領相洪彦弼碑), 광주(廣州)의 좌참찬심광언비(左參贊沈光彦碑) 등에 전한다.
시호는 문단(文端)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澤堂集(李植)
글庵遺稿(宋寅)
朝鮮金石總覽, 大東書法. 〈李民植〉
●정사룡(鄭士龍)
1491(성종 22)∼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
부사 광보(光輔)의 아들이며, 영의정 ★광필(光弼)의 조카이다.
1509년(중종 4)에 생원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장원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1516년 황해도도사로서 문과중시에 장원하였으며 사간을 거쳐 1523년 부제학이 되었다.
1534년 동지사(冬至使)로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542년 예조판서로 승진이 되고, 1544년 공조판서로 다시 동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54년 대제학이 되었으나 1558년 과거의 시험문제를 응시자 신사헌(愼思獻)에게 누설하여 파직되었다.
이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로 복직되고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다가, 1562년 다시 판중추부사에 전임되었다.
이듬해 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제거하려던 이량(李樑)의 일당이라 하여 삭직당했다.
그는 일찍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문명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여러번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동안 중국인과 주고받은 시가 많았다. 중국에 다녀와서 《조천록 朝天錄》을 남겼으며, 말을 치밀하게 다듬어 웅걸차고 기이한 문구를 얻으려는 시풍을 장기로 삼았다.
특히, 칠언율시에 능하였으며, 당시 문단에서 그와 신광한(申光漢)을 쌍벽으로 꼽기도 하였다.
관료적인 시인으로 시문·음률에 뛰어났고 글씨에도 능했으나 탐학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저서로는 《호음잡고》·《조천록》 등이 있고, 글씨로는 광주(廣州)에 있는 ★이둔촌집비(李遁村集碑)가 있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明宗實錄, #충01齋集, 湖陰雜稿, 詩話叢林, 韓國漢文學史(李家源, 민중서관, 1961)
한국문학통사 2(조동일, 지식산업사, 1984). 〈高敬植〉
▣ 김항용 -
▣ 김용주 - 대부.고맙읍니다.
▣ 솔내 -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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