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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 순충비삼절각 전경그리고 비문과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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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병 작성일04-02-15 20:17 조회1,6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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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안동김씨 삼절각 전경





창녕 삼절각 현판





삼절각 순충비문



안동김씨 삼절각 순충비 해설





보안불하가 건영에서 죽으니 그 부인 아로 가 곧 그 아들을 안고 우물에 빠져

죽었으니 그 딸과 그첩 그손녀가 모두 빠저 죽고 배영의 아들이 감물에서 죽으니

그 아들 거진 과 그의 종 합절 이 적진에 들어가 전사 하니 이 세상에 역사를 쓰는

자가 그 공덕을 높이 평가하였고 하산(昌寧)의 옛 김씨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가 임란에

죽으니 앞 두 가문에 뒤질까? 패잔병을 거두어 강한 도적을 쫏아 맹세코 한

하늘밑에 살지 않기위해 죽는데 이르려도 싸움을 그치지 아니함은 앞의 두

가문에는 없는일이지 않을까? 휘 걸 부장 휘 대수 주부 회 후생 학생 김씨는 안동사람이니

고려맹장 충열공 휘 방경 은 그의 이름난 할아버지 더라 휘. 휴 호 학당은 포은 선생의

제자이며 이참휘 익정 호 운암 은 효성으로 3대를 전하였다



휘 주 첨지 첨지가 휘문을 낳고 창녕에서 비로소 살았다 휘 희문이 응동을

낳고 응동은 (傑) 부장을 낳고 부장은 (大壽)주부를 낳고 주부은 학생을

낳아 만력 임진년에 부장공이 아들(大壽)와 손자를 거느리고 김문열공 천일과 진주

전장에 달려가니 문렬 공 이 그 용맹과 지략을 장하게 여겨 선봉장을 나가 공을 여러번

세웠으며 계사 유월에 성이 함되고 문렬 공 이 돌아가셨으니 부장공(傑)이 사로 잡혀으나

오히려 왜놈들을 호통치면서 죽으니 그 아들 주부공(大壽)이 시체를 바위틈에 숨겨두고

아들이 안고 통곡하여 가로되 아버지 는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죽는 것이 아들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하여 남은 군사를 독려하여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다가 화살이 다되어 죽고 그 손자 또한 죽으니 3대 세 사람이 같이 국사를 위해

죽었도다.



충신의 대를 한꺼번에 정하기 어려워 원종대사 가 나라에 상소함이 21번이 되었으나

증표를 얻지 못해서 335년이 지난 정묘 년 지금에 와서야 고을 사람들이 그룩한 업적이

살아질까 걱정이 되어 비석을 귀산리 에 세우려 하되 후손 재훈 재열이 나한테 글을

구하거늘 나 역시 창녕사람 이라 어찌 병들고 늙고 글 못한다고 사양하리오 왈 아버지

가로되 임금이 어려움 에 처하면 내가 죽어도 마땅하다 하여 나는 칼 한자루를 가지고

일만 군사에게 돌격하였으나 하늘과 때가 이롭지 못해 오직 “의” 만 한 것이 있겠는가?

하였으며 아들은 가로되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나 혼자 살아 있었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백리를 쫏아가 죽을 각오로 싸워 돌아가셨으며 손자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3대가 어진 것을 이루었도다 높고 높은 촉석루엔 흐르고 흐르는 정암 물결

백대 천추 에 충성스러운 넋이 길이 머무리







정묘 소만절에

광주 노상식 찬면병서



창녕 조왈수

십이서 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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