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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전서공파 소개자료 06 ---익정 현손 師哲, 사철 손자 濟鼎(제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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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2-17 07:04 조회1,7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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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군지, 1988

▣ 金濟鼎 선조11년(1578)- 인조5년(1627)

안동인, 자는 僉中이다. 선조12년(1578) 전동면 양곡리 (지금의 전의면 양곡리)에서 태어난 그는 1605년 무과에 급제하여 금부직에 있다가 1624년 의주의 방어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에 인조5년(1627)에 강홍립의 난을 맞이하였다.

난이 일어나자 그는 당시 의주부윤으로 있던 이완, 남이흥과 더불어 전투를 벌이던 중에 적의 장수 강로의 세력에 눌려 이완이 전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용전을 거듭하였으나 적의 화살이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적진에서 대검을 휘두르다가 전사하였다.

그후 영조50년(1774)에 우승지 ★조영진이 상소하여 인조묘에 당시 신하에게 내리는 제문인 치제문을 내리도록 하였으며 제전을 내려 영묘와 정려를 짓도록 하고 忠壯이라는 시호를 주었다 한다.

그러나 현재는 종세가 여의치 못하여 영묘와 정려를 건립하지 못하고 연기군 전의면 신흥리(생촌부락)에 현판만 보관중이다.

<연기지, 구연기읍지>





■ 연기군청 홈페이지

충신 김제정(金濟鼎)

김제정의 자는 첨중(僉中)이요 본은 안동(安東)으로 서기 1578년 (선조11)전동면 양곡리에서 태어났다.

공은 1605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금부직(禁府職)에 있다가 1624년 의주 인산방어사(防禦使) 로 재직시 1627년(인조5) 강홍립의 난(姜弘立의 亂)이 발생하므로 당시 의주부윤(義州府尹) 이완(李完)남이홍(南以興)등과 더불어 교전중 적장 강로(敵將 姜虜)의 세력이 강하므로 이완 이 전사하고도 용전을 거듭하였으나 마침 화살이 쉴새없이 날아오니 단신의 몸으로 대검을 휘두르며 적의 진중에 진격하여 적을 물리치다가 전사했으니 1774년(영조50년)이었다.

우승지 ★조영진(趙英鎭)이 상소하여 인묘조(仁廟朝)에 왕이 소 치제문(致祭文 신하에게 내리 는 제문)을 내리고 제전(祭田)을 내려 영묘와 정려를 짓도록 했다.

그러나 종세(宗勢)가 여의치 못하여 정려와 영묘를 건립하지 못하고 현판만 보관중이다.

* 참고문헌 : 族譜





■ 연기군청 홈페이지

남양홍씨 정려

[소재지]연기군 전의면 양곡리

[시 대]조선

남양홍씨는 ★홍처한의 따님으로 일찍이 가훈을 익히고 부덕을 쌓았으나 출가하기 전에 양친을 잃고 남매가 의존하여 길삼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제례에 결함이 없었다. 이웃마을에 사는 안동 김씨 전서공의 14세손인 김 환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정성껏 섬기고 동기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였다.

그 어진 소문이 원근에 자자하였다. 영조 8년 6월에 남편이 이름모를 병에 걸려 위독하게 되자 남편의 병환에 동침하면 해가 온다하니 이때는 벌써 임신 4 ~ 5개월이 되었다. 점장이를 찾아가서 점을 치니 남편이 곧 죽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부인은 일찍 일어나서 목욕재개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였으나 남편의 병은 악화되어 이에 부인이 말하기를 "이 집의 가장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바랄 것이 없는 지경에 내가 어찌 생명을 보전하랴" 하면서 급히 어린아이를 불러 울면서 젖을 먹이고 광속에 들어가 음독자살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남편의 병이 차도가 있어서 살아나니 이를 보고 사람들은 부인의 지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남편의 생명을 연장시킨 것이라며 장한 열녀로 칭송하였으며 후에 후손들이 정려를 짓고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참고문헌 : 정려기)









▣ 김윤만 -

▣ 솔내 - 충장공 김제정... 기억하겠습니다. 시호 받은분이 또 한분 밝혀졌습니다.

▣ 김항용 - 새로운 명인 선조님을 알았습니다. 충장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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