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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과 신돈과 우리가문 02---이제현(1287-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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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2-24 20:50 조회1,7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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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현의 아버지 이진(1244-1321)은 경주이씨로 1300년 충렬공(김방경) 묘지명을 찬하였고,

-----나(▶이진)는 (▶충렬공과) 과갈(瓜葛)의 친분(親分)도 있고, 또 특별(特別)히 알아 주시고 대우(待遇)를 받은 자(者)이며, 또 사자(嗣子)이신 상국(相國=나라의 재상, ▶?문영공 김순)의 간청(懇請)도 있음으로 해서 삼가 붓을 잡아 명(銘)을 쓰노라.---



○ 이제현(1287-1367)은 1332년 문영공(김순)처 허씨 묘지명을 찬하여 그의 문집 <익재난고>에 전하고 있고, <역옹패설>에 충렬공, 문영공 기록을 실어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민왕 즉위 초(1351-) 개혁의 수장으로 있을 때 김영후, 김승택 등과 교유하면서 김사렴, 김구용, 김제안의 등용에 직간접으로 간여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 디지털한국학 홈페이지



이제현(李齊賢)

시대 고려

생몰년 1287-1367(충렬왕13-공민왕16)

본관 경주(慶州)

자 중사(仲思)

호 익재(益齋)/역옹(#역10翁)

시호 문충(文忠)

활동분야 학자, 정치가

다른 이름 이지공(李之公)



1. 가계

고려 건국초의 삼한공신(三韓功臣) 금서(金書)의 후예이지만, 아버지 진(#진19)이 신흥관료로서 과거를 통해 크게 출세함으로써 그 가문이 비로소 떨치기 시작하였는데, 진은 검교시중(檢校侍中)에까지 올랐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숙성하여, 글을 짓는 데 이미 작자기(作者氣)를 지니고 있었다 한다.

1301년 성균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이어서 과거에 합격하였다. 이해에 당시 대학자이자 권세가였던 권보(權溥)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생략---



4. 공민왕의 보좌

그가 다시 정치의 표면에 나타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은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한 직후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임명되면서부터이다.

이때 문란하여진 정치기강을 바로잡고 새로운 시책을 펴는 데 참여하여 여러 항목에 걸친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1348년 충목왕이 죽자 원에 가서 왕기(王祺:뒷날의 공민왕)를 왕에 추대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으나 실패하였다.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여 새로운 개혁정치를 추진하려 할 때 정승에 임명되어 국정을 총괄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네번에 걸쳐 수상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1353년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으로서 두번째로 지공거가 되어 이색(李穡) 등 35인을 등과자(登科者)로 선발하였다.

1356년 기철(奇轍) 등을 죽이는 반원운동이 일어나자, 문하시중이 되어 사태의 수습에 나섰다가 다음해에 치사하고 관직에서 아주 물러났다.



그뒤에도 국가의 중대사에 대하여서는 자문에 응하였으며, 홍건적이 침입하여 개경이 함락되었을 때에는 남쪽으로 달려가 상주에서 왕을 배알하고 호종(扈從)하였다. 정치가로서의 이제현은 당시 고려가 원의 부마국(駙馬國)이라는 현실을 시인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국가의 존립과 사회모순의 광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 온건한 태도로 현실에 임하였다. 당시 복잡한 정치상황 아래에서 원과 고려를 넘나들면서 활약하여 최고의 지위에 오르지만, 화를 당하거나 유배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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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李益齋의 在元生涯에 대하여(金庠基, 大東文化硏究 1, 1964)

李齊賢(高柄翊, 人物韓國史 Ⅱ, 1965)

益齋 李齊賢의 史學에 대하여(金哲埈, 東方學志 8, 1967)

整治都監의 設置經緯(閔賢九, 國民大學論文集 11, 1977)

益齋 李齊賢의 政治活動(閔賢九, 震檀學報 51, 1981)

李齊賢의 歷史意識(鄭求福, 震檀學報 51, 1981)

益齋小樂府와 高麗歌謠(徐首生, 東洋文化硏究 11, 1984). 〈閔賢九〉











▣ 김우회 - 추가로 더 읽으니 더 새롭군요. 감사

▣ 솔내 - 익제선생에 대해서 연구하면 우리 선조님얘기도 많이 찾을 것입니다.

▣ 김윤만 - 배움이란 새롭고 또 새롭습니다.

▣ 김항용 - 익재선생과 우리 가문이 이렇게 가까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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