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이효장(李孝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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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섭 작성일04-02-26 20:31 조회1,467회 댓글0건본문
자료 잘 보았습니다. 고려사절요를 간행하는데 참여한 전의이씨 인물인 이효장(李孝長)을 아래에 부기해봅니다.
인터넷 작가로 유명세을 타고 있는 귀여니[본명은 이윤세(李允世)]가 이효장(李孝長)의 16대손입니다.
이효장(李孝長) 1412(태종 12) ∼ 1463년(세조 09)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아버지는 한성부윤 사관(士寬)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한상경(韓尙敬)의 딸이다. 아버지의 음덕으로 벼슬길에 올라, 1447년(세종 29) 오위사용(五衛司勇)으로서 식년문과에 정과(丁科)로 급제하고, 예문관대교에 승진하였다.
그뒤 1449년 예문관봉교를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 오위부사직을 역임하고, 1452년 승문원부교리로서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곧 사섬서령(司贍署令)이 되었다.
1453년(단종 1) 경상도도사를 지냈고, 이듬해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으로 입조하였다.
1457년(세조 3) 의정부사인으로서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정과로 급제하였으며, 1459년 우사간대부를 거쳐 통정대부에 올라 이조참의에 발탁되고, 곧 호조참의에 체직되었다.
1460년 중추원첨지가 되고, 호조참의에 체직되면서 해청(海靑, 매)진헌을 위한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공조참의가 되었다. 이어 가선대부에 오르고 대사헌이 되었으며 1462년 다시 중추원부사가 되었다가 1463년 경상도 도관찰사(慶尙道都觀察使)로 나갔는데, 이때 임지에서 죽었다.
무과에 급제한 의장(義長), 문과에 급제한 예장(禮長), 지장(智長), 함장(言咸長), 서장(恕長)과 함께 6형제가 과거에 급제하여 모두 명성을 떨쳤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世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韓忠熙〉
인터넷 작가로 유명세을 타고 있는 귀여니[본명은 이윤세(李允世)]가 이효장(李孝長)의 16대손입니다.
이효장(李孝長) 1412(태종 12) ∼ 1463년(세조 09)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아버지는 한성부윤 사관(士寬)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한상경(韓尙敬)의 딸이다. 아버지의 음덕으로 벼슬길에 올라, 1447년(세종 29) 오위사용(五衛司勇)으로서 식년문과에 정과(丁科)로 급제하고, 예문관대교에 승진하였다.
그뒤 1449년 예문관봉교를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 오위부사직을 역임하고, 1452년 승문원부교리로서 《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곧 사섬서령(司贍署令)이 되었다.
1453년(단종 1) 경상도도사를 지냈고, 이듬해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으로 입조하였다.
1457년(세조 3) 의정부사인으로서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정과로 급제하였으며, 1459년 우사간대부를 거쳐 통정대부에 올라 이조참의에 발탁되고, 곧 호조참의에 체직되었다.
1460년 중추원첨지가 되고, 호조참의에 체직되면서 해청(海靑, 매)진헌을 위한 사신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공조참의가 되었다. 이어 가선대부에 오르고 대사헌이 되었으며 1462년 다시 중추원부사가 되었다가 1463년 경상도 도관찰사(慶尙道都觀察使)로 나갔는데, 이때 임지에서 죽었다.
무과에 급제한 의장(義長), 문과에 급제한 예장(禮長), 지장(智長), 함장(言咸長), 서장(恕長)과 함께 6형제가 과거에 급제하여 모두 명성을 떨쳤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世祖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韓忠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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