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공민왕과 신돈과 우리가문 08---김영후(1292-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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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2-29 22:01 조회1,753회 댓글0건본문
▣ 고려사제38권-세가제38 (공민왕 임진원년 1352)
(★정간공 김영후 61세)
기미일에 서연(書筵)을 열고
영천 부원군 이능간(李凌幹),
김해 부원군 이제현(李齊賢), ★1300년 김방경 묘지명 찬한 이진의 자로, 1332년 김순처허씨 묘지명을 찬함
복창 부원군 김영후(金永煦), ★문영공 김순의 4자, 김영돈의 막내동생
한양 부원군 한종유(韓宗愈),
연안 부원군 인승단(印承旦),
전 첨의 정승 이군해,
정승으로 치사(致仕)한 손기(孫琦),
전 찬성사 허백(許伯)과 김자(金資), ??★충렬공 1자 김선의 장자, 김승택의 백형
안산군 안진(安震), ★1350년 김방경 행장 찬함
정천군 정을보(鄭乙輔),
영창군 김승택(金承澤), ★충렬공 1자 김선의 3자
영산군 장항(張沆),
낙 낭군 이천선(李遷善),
밀직부사 안목(安牧), ★안렴사공 김사렴의 장인 안원숭의 부, 즉 김사렴처 안씨의 조부
전리 판서 백문보(白文寶) ★문영공(김순)의 사위 백이정의 아들
등이 날을 바꾸어 시독(侍讀)하게 하고,
또 교서를 내리기를
“원로와 대신과 사대부들이 교대로 들어와서 경서와 사기 그리고 예법에 관한 말(法言)들을 강의하며 권세 있는 집안에서 토지와 가옥 및 노비를 강탈하여 여러 해 동안 송사하고 있는 사건들과 무고한 죄로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는 사건들을 판결하여 처리하라!
첨의사와 감찰사는 나의 귀와 눈이다. 현행 정치의 옳고 그릇됨과 민간의 이해 관계에 대하여 기탄없이 바로 말하라!”고 하였다.
▣ 고려사제39권-세가제39 (공민왕 병신5년 1356)
(★정간공 김영후 65세)
2월 갑술일에 복창 부원군 김영후(金永煦)를 원나라에 보내 공신호를 준 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였다.
그 표문에 이르기를
“천 년에 한 번이나 있는 드문 당신이 준 이 칭호를 받으니 천하 만국이 모두 귀를 기울여 세상에 드문 이 영예의 소식을 듣고 있다. 이것을 뼈에 아로새긴들 잊을 수 있겠는가? 몸이 가루가 되어도 보답하기 어렵다.
당신은 아랫사람에게 간락하게 대하며 마음을 전일하게 하고 중정의 길을 취하며 선조의 길을 따르고 있으므로 노하지 않아도 위엄이 있으며 말하지 않아도 믿음이 있다. 당신은 하늘의 법을 따르고 있으므로 지나는 곳마다 사람들이 감화되며 간직한 마음 신통하여 마치 초목의 자라나는 것이 하늘과 땅이 길러 주는 그것과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당신의 밑에 있으면서 궁궐을 보위하였으나 사소한 공로도 없었으며 왕위를 이어 이 땅을 지키면서도 조그만 공적도 없다. 그런데 뜻 밖에도 12글자의 아름다운 칭호가 백 가지에서 한 가지의 재능도 없는 이런 자에게 잘못 오게 되었다.
당신은 여러 해 동안 당신에 대한 나의 수고를 잊지 않고 또 당신을 사모한 나의 성의를 고맙게 여겨 특히 조서를 내리어 공훈 높은 신하들의 대렬에 넣어 주었다. 나는 마땅히 인(仁)을 추구하여 당신의 혜택이 만물에까지 미치도록 노력하며 의(義)를 몸소 실행하여 당신에게 성의를 다할 것을 염원하여야 겠다.
먼 곳의 어리석은 백성들의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게 그들을 안정시킬 것이며 당신의 교훈을 엄수하여 감히 노력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 고려사제39권-세가제39 (공민왕 신축10년 1361)
(★정간공 김영후 70세)
5월 임술일에 상락후(相洛侯) 김영후(金永煦)가 죽었다.
▣ 김태서 -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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