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모TV에서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있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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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4-03-01 05:06 조회1,482회 댓글0건본문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년(인조 1)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綾陽君) 종(倧: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당론의 폐해를 통감하고 이를 초월하여 좋은 정치를 해보려고 애썼으나, 자신이 대북파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당론을 초월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이원익 · 이항복 · 이덕형 등 명망 높은 인사를 조정의 요직에 앉혀 어진 정치를 행하려 하였으나, 이이첨 · 정인홍 등 대북파의 무고로 친형 임해군과 이모제(異母弟) 영창대군을 죽였으며, 또 계모인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패륜을 자행하였다. 이와 같은 광해군의 실정이 계속되어 기강이 문란해지자 서인 이귀 · 김자점 · 김류 · 이괄 등은 반정을 모의, 1623년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모든 계획을 추진하였다. 도중에 이이반의 누설로 탄로될 위기에 놓였으나 예정대로 거사를 단행하였다. 이서(李曙)는 장단(長湍)에서, 이중로(李重老)는 이천(伊川)에서 군사를 일으켜 홍제원(弘濟院)에서 김류의 군대와 합류하였다. 이 군대를 능양군이 친히 거느리고 이괄을 대장으로 하여 12일 밤에 창의문(彰義門)으로 진군하여 훈련대장 이흥립(李興立)의 내응으로 반정군은 무난히 궁궐을 점령하였다. 이어 왕대비(인목대비)의 윤허를 얻어 능양군(인조)이 왕위에 올랐다. 광해군은 의관(醫官) 안국신(安國臣)의 집에 피신하였다가 잡혀 서인이 되었으며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대북파 이이첨·정인홍·이위경(李偉卿) 등 수십 명은 참수되었으며, 추종자 200여 명은 유배되었다. 반정에 공을 세운 이귀·김류 등 33명은 3등으로 나누어 정사공신(靖社功臣)의 호를 받고 권좌의 요직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 논공행상이 공평하지 못하다 해서 1년 후에 이괄의 난이 일어났다. 반정 후 남인의 이원익이 영의정에 영입됨으로써 남인도 제2의 당세를 형성하게 되었다.
▣ 김윤만 -
▣ 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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