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김극녕의 동서 미수 허목의 동해척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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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4-03-16 23:42 조회1,536회 댓글0건본문
동해척주비
강원도 삼척, 한 시멘트 공장의 우람한 저장탱크가 굽어보고 있는 바닷가 작은 동산 위에서 동해척주비(東海陟州碑)는 이렇게 이백 년 후의 어린 후손들을 한탄하며 자신의 예견을 자책하는 냥, 횟가루에 그을린 몇 그루의 소나무 아래, 나무 울로 막힌 당우에 갇힌 듯 서있다.
척주비는 조선시대 숙종조에 우의정을 지낸 미수(眉 ) 허목이라는 분이 삼척부사를 지낼 시절 만든 것이다. 당시 삼척은 해일의 피해가 극심하여 삼척부중이 연일 바닷물에 잠기다시피 했다는데, 선생이 지금은 방파제에 파묻힌 만리도라는 작은 바위섬에 이 비석을 세움으로써 해일의 침범을 막았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불가해한 일이나, 이것이 사적(史籍)에 남게 된 것은 미수 선생이 삼척을 떠난 후의 일로 인해서이다.
선생이 부사직을 이임하고 서울로 돌아가자 그곳의 유림들은 유학이 정도인 세상에 무슨 해괴한 일이냐며 그 비를 부숴 버렸고, 때맞춰 다시 해일이 범람하면서 민심의 흉흉함이 극에 달하자 강원도 관찰사까지 순시하기에 이른다. 이때 김 모라 이름이 전하는 한 아전이 관찰사에게 미수 선생의 말을 전하게 되는데, 선생은 이미 일의 전후를 예견하고 비를 처음부터 두 개를 만들어 그 하나를 동헌 마루 밑에 묻어 놓고선 후일 관찰사에게 이를 전해 비를 다시 세우게 하라 하였었다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되세워진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동해척주비이다. 척주비는 해일을 물리쳤다 하여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불리고, 물과 불로 인한 재앙을 막는 신이함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 삼척의 여러 기관과 음식점, 가정집에 도자기나 족자 등의 형태로 그 비문의 탁본이 회람되고 있기도 하다.
▣ 김윤식 -
▣ 김윤만 -
강원도 삼척, 한 시멘트 공장의 우람한 저장탱크가 굽어보고 있는 바닷가 작은 동산 위에서 동해척주비(東海陟州碑)는 이렇게 이백 년 후의 어린 후손들을 한탄하며 자신의 예견을 자책하는 냥, 횟가루에 그을린 몇 그루의 소나무 아래, 나무 울로 막힌 당우에 갇힌 듯 서있다.
척주비는 조선시대 숙종조에 우의정을 지낸 미수(眉 ) 허목이라는 분이 삼척부사를 지낼 시절 만든 것이다. 당시 삼척은 해일의 피해가 극심하여 삼척부중이 연일 바닷물에 잠기다시피 했다는데, 선생이 지금은 방파제에 파묻힌 만리도라는 작은 바위섬에 이 비석을 세움으로써 해일의 침범을 막았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불가해한 일이나, 이것이 사적(史籍)에 남게 된 것은 미수 선생이 삼척을 떠난 후의 일로 인해서이다.
선생이 부사직을 이임하고 서울로 돌아가자 그곳의 유림들은 유학이 정도인 세상에 무슨 해괴한 일이냐며 그 비를 부숴 버렸고, 때맞춰 다시 해일이 범람하면서 민심의 흉흉함이 극에 달하자 강원도 관찰사까지 순시하기에 이른다. 이때 김 모라 이름이 전하는 한 아전이 관찰사에게 미수 선생의 말을 전하게 되는데, 선생은 이미 일의 전후를 예견하고 비를 처음부터 두 개를 만들어 그 하나를 동헌 마루 밑에 묻어 놓고선 후일 관찰사에게 이를 전해 비를 다시 세우게 하라 하였었다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되세워진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동해척주비이다. 척주비는 해일을 물리쳤다 하여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불리고, 물과 불로 인한 재앙을 막는 신이함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 삼척의 여러 기관과 음식점, 가정집에 도자기나 족자 등의 형태로 그 비문의 탁본이 회람되고 있기도 하다.
▣ 김윤식 -
▣ 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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