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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우당(문익점)의 동년 김주(金輳)는 낙안(樂安)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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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4-03-25 09:16 조회1,5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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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우당 동년 중에 안동인으로 기록된 <김주>는 낙안김씨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주회 대부님께서 말씀하신 내용과 관련이 있는가 싶어 삼우당 동년들을 추적하였으나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유명해서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포은 선생 문집에 <김주>의 관향이 <安樂>으로 기록돼 있는 겁니다.
이 기록이 안악김씨(安岳金氏)를 잘못 적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악김씨를 찾아보았더니 안악김씨의 시조는 조선조 인물이었습니다.
갈수록 오리무중이라 조만간 온양방씨 족보에서 <방자번(方子蕃)>을 찾아보고 크로스체킹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정리하기 위해 삼우당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았더니 <삼우당선생도천원적(三夏堂文先生道川院蹟)> 卷之一 <과방(科榜)>에 <김주>의 관향이 <樂安>으로 적혀 있었습니다.(<삼우당선생도천원적>의 기록은 <삼우당선생실기>에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잡은 듯하나, 왜 안동인으로 기록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포은 선생 관련 자료의 오류는 목활자로 조판하면서 앞뒤 글자를 바꾸어 넣어 발생한 단순한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낙안김씨를 찾아보았더니 과방 기록대로 <김주>의 가족관계가 모두 확인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려조 과거제도를 조금 공부하는 소득을 얻었습니다.
또한 개경이 아니라 한양에서 동당시를 실시(擢新京東堂及第)하여 공민왕의 천도 의지가 매우 강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관련 서적에서도 찾아보지 못한 공민왕 9년의 동당시의 실시 일자(11월 25일), 삼우당과 포은 등 당시 급제자들의 지공거(김득배) 및 동지공거(한방신) 등을 확인하여 다른 자료들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자료를 면밀히 검토하지 못하고 침소봉대라 송구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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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 - 문과에 급제, 성균직강으로 정추(鄭樞) 등이 신돈(辛旽)을 탄핵하다 투옥된 사건에 연루되어 고향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풀려나 비서감승을 거쳐 우왕 때 사헌집의, 지신사, 밀직제학 등을 역임하고, 공양왕 초에 문하평리 겸 대사헌이 되었다. 조선 개국 후 예문춘추관 태학사, 좌복야를 겨쳐 신도궁궐조성도감 도청으로서 종묘·궁궐 신축에 공을 세웠다.

 




▣ 김태영 - 낙안김씨 였군요. 밑에 김군정은 상락군 厚(승용의子)의 사위로 본 善州(선산)..
▣ 김항용 - 고생하셨습니다. 낙안의 김주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 덕에 공부도 많이 했구요
▣ 솔내 - 줗은 공부 되었습니다. 어제는 수고 많으셨습니다.
▣ 김주회 - 낙안김씨 김주였군요.
▣ 김태서 - 감사합니다.
▣ 김재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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