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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원주 투데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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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4-05-09 20:28 조회1,6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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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사이트 : 원주 투데이http://www.wonjutoday.co.kr/culture/m01/munhwa/mun3-11.htm

영원산성과 금대계곡
― 국토 수호(國土守護)의 산 현장 ―

  원주는 충절(忠節)의 고장이고, 영원산성은 국토 수호의 현장이다. 역사적으로 영원산성을 근거로 하여 많은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해마다 여기에 모여서 영원산성제를 올리는 것도 바로 이같은 뜻을 기리고, 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영원산성은 치악산의 서남쪽 자락의 산봉우리에 있다. 금대리에서 시작된 긴 골짜기는 입구가 되며, 주변의 험준한 산록은 산성과 이어진 방어 진지를 이룬다. 따라서, 금대리에서 영원산성까지의 긴 골짜기와 산자락은 원주가 오늘날까지 국토 방위의 거점이요 요새지였음을 증명해 주는 지역이다. 지금은 산수가 좋아 유원지로 더 유명하지만, 찾는 이마다 애국 선열들을 생각할 곳이다.

  영원산성은 원주의 동남쪽에 있는 금대리가 입구이다. 제천(堤川)으로 가는 길가에 있다. 시내를 벗어나면 왼쪽 개울 건너로 중앙선 철로가 보인다. 얼마 안 가서 굴에 이은 철교가 보인다. 금대유원지 입구인 길아천철교이다.

  오른쪽으로는 유명한 똬리굴이 있다. 아래굴로 들어간 기차가 왼쪽으로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서 윗굴로 나오게 되어 있다. 아낙네들이 물동이를 일 때 받치던 또아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급경사로 곧장 오르지 못하는 것을 휘돌아서 올라가게 한, 우리 나라에서는 여기밖에 없는 기차굴이다.

  상가와 식당들이 이어진 왼쪽길로 들어가 길아천 철교 밑을 지난다. 하얗게 물살을 일으키며 계곡물이 왼쪽으로 바짝 붙어 흐른다. 산자락이 양쪽에서 다가와 맞아 준다. 금대리유원지이다. 냇물과 주변의 경치가 한껏 도시인의 마음을 씻어 준다.

  <영원산성·영원사 입구 표지석>g$$00011.jpg
  얼마 안 가서 소쩍새마을이 나온다. 심신이 온전치 못한 이들의 보금자리이다. 넓은 마당과 큼직한 고목들도 보인다. 초등학교 분교였음을 아직도 풍긴다. 금방이라도 떠들썩한 아이들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데 보이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 마음이 안쓰러워 오래 있을 수가 없다.

  골은 점점 깊어지고 숲은 한결 우거진다. 산골의 정취도 더욱 짙어진다. 작은 언덕을 오르자 갑자기 수십 길의 큰 나무들이 나타난다. 앞쪽으로는 합수된 두 계곡물이 파랗게 꿈틀거린다. 이렇게 깊은 골짜기에 이런 멋진 곳도 있구나! 생각잖은 빼어난 경치에 한참을 구경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새삼 느껴진다.

  길은 두 골짜기로 갈라진다. 왼쪽길은 길아치를 넘는 험한 길이다.

   영원사는 오른쪽 길로 간다. 길이 가파라서 내려다 보이는 왼쪽 골이 깊다. 산길을 오르자 절이 바로 나타난다. 영원산성 아래에 있는 영원사이다.

  비탈 중턱에 자리를 잡았지만 남향이라 밝은 모습이다.

  <치악산 영원사 대웅전 : 영원산성 아래>g$$00012.jpg
 
영원사(령原鳥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 동안 없어졌다가 1964년에 김병준(金秉俊)주지가 새로 중창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옛 유물은 하나도 없다. 지금은 대웅전과 산신각 겸 삼성각 한 채에 요사채가 있다. 옛 기와와 자기의 조각들이 나왔다고 한다. 대웅전은 팔각지붕에 평기와를 올렸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삼성각도 같은 모양인데 지붕은 한식 골기와를 얹었다.

  영원사 윗쪽에 영원산성이 있다.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2㎞의 석성이 가파른 산줄기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다. 맨아래 양쪽의 끝 부분은 고리 모양으로 둥그렇게 돌려 쌓았다. 침입하는 적을 입구에서 격파하려는 착안(着案)이다. 이어진 좌우 성벽 주변은 비탈이 커서 침입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영원산성은 고려 충렬왕 17년(1291)에 연전연승하던 오랑캐 합단(哈丹)의 무리들을 향공진사 원충갑(元충甲)이 10여 차례의 접전으로 최초로 격파하여 그 예봉을 꺾어, 결국에는 물리쳐 버리게 한 곳이다. 이 공으로 원주는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뒤에 원주목(原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영원산성은 1592년 임진란 때 원주 목사 김제갑(金悌甲)이 군민을 이끌고 진을 치고 왜병들과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끝내는 성이 함락되어 아들 시백(時伯)과 부인과 함께 장렬하게 순절(殉節)하여 충·효·열(忠孝烈)을 한꺼번에 세상에 떨쳐 보이기도 했다.

  영원산성부터 금대계곡까지의 10여㎞는 산수가 빼어난 골짜기이다. 찾는 이마다 감탄하고 오는 사람마다 즐긴다. 하지만, 이곳은 외적을 물리친 격전의 장소요, 나라를 지켜낸 터전이었다. 원주가 예부터 군사 도시요 요충지였음을 깨닫게 해 주는 곳이다. 영원사는 영원산성을 지키는 호국불교의 전당이다. 애국 선열(先烈)들을 추모하는 절이기도 하다.  여름이면 금대계곡을 따라 영원산성을 찾으라. 산천의 시원함과 자연의 순수를 마음껏 맛볼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벌어진 선조들의 국토 수호(國土守護)의 정신과 사실(史實)을 배울 것이다.

  <영원산성 대첩제 : 영원사 옆에서 해마다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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