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寓庵集(우암집) 국역화 35---북경 사행길 2 (요양과 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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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6-05 16:48 조회2,1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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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벌을 품에 안고





1. 전승기념 요양 백탑 (고려총-삼류하-요양)



▲연암이 요동 벌판에 우뚝 솟은 이 백탑을 보고 한번 울만한 장관이라고 유명한 울음관을 도도하게 펼친 바로 그 탑이다.

▲중국 동북지방 5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요양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시민들 뒤로 백탑이 보인다.

▲백탑이 자리한 광우사. 절 음식으로 조선 두부맛이 별났다고 연행록들에 적혀 있는데, 조선 부인의 손에서 비롯됐다는 그 백탑 두부는 인근의 酒家나 飯店의 명물로 명맥을 잇고 있다.





2. 사행길 안전을 빈 관제묘 (요양 백탑-관음사-관제묘터-首山)



▲조선 사신의 행차를 노리는 좀도둑이 극심했다던 요양. 군고구마를 저울로 달아 파는 아가씨의 모습이 야무지다.

▲당태종의 고구려 친정 사령부가 자리 잡았다던 수산. 고구려와의 전쟁 때 전사한 양편의 군사들을 묻은 삼국시대의 국립묘지로서 조선 사신들이 자주 들렀다고 한다.

▲수산 근처의 농가. 물 위에서 노니는 오리들의 모습이 평화로운 마을과 함께 한가로워 보인다.





3. 효종의 채소밭 (요양-십리보-백탑보-옛나루터-渾河(혼하)-효종의 채소밭-심양성 남변문)



▲사행길 따라 왔던 우리의 하인들마저 한족이나 만주족에게 당당했는데 그것은 밑바탕에 깔려 있는 문화적 우월감 때문이었다. 거리에서 고기를 사고 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의 옛 60년대를 연상시킨다.

▲심양성 밖 혼하의 옛 나루터.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가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 관원에게 인계 인수되었던 바로 그 통한의 현장이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갇혀 살던 인질관을 빠져 나와 손수 채소를 가꾸었던 혼하변의 야판전. 지금도 여전히 채소밭으오 이용되고 있다.





4. 폐허가 된 조선관 (외성 남변문-내성 대남문-심양 조선관 자리-고궁)



▲중국 통일 이전의 청나라 서울이었던 심양 거리. 아직도 그 고풍스러운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병자호란으로 볼모로 잡혀 갔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8년간 갇혀 살았던 조선관 자리. 지금은 왜식 짙은 시립 아동 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5. 청태종의 고궁



▲심양 고궁의 침전인 청녕궁 앞뜰. 청나라 왕궁에 제사나 행사가 있으면 소현세자 일행도 초대되어 침전 가까이에 머물렀다. 뜰 왼편의 솟대 아래에서 청태종의 즉위식이 있었고, 그 식전에서 조선 사신이 배례를 거부하여 병자호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심양 고궁의 대정전. 국가적 행사를 치렀던 곳이며, 한족 만주족 몽고족의 세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6. 삼학사 형장(중산공원, 서문 밖)



▲병자호란 때 척화 삼학사가 갖은 유혹을 뿌리치고 끝내 절의를 지킨 끝에 처형당한 심양 서문 밖 형장. 천주교 신도의 순교 현장이기도 헌데, 지금은 시립 중산 공원이 돼 있다.

▲시립 중산 공원. 심양 시민들의 휴식처로 예술궁. 음악성. 백화원 같은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중산 공원 내에는 직업적으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가난한 화가들이 많다. 모델로 앉아 있는 아가씨의 얼굴 표정이 인상적이다.





7. 조선인 노예시장(남변문 남탑 내)



▲심양 옛 노예 시장으로 추정되는 남변문 밖 남탑 일대. 병자호란 때 납치돼 온 조선 피로인 수만 명이 이 남변문 밖 시장에서 매매되었는데, 곡성이 하늘에 메아리쳤다고 한다.

▲심양 남변문 밖 일대에 있던 최대 최고의 도매 시장인 오애 시장. 지금은 심양시 중심가로 옮겨져 시민들에게 이용되고 있다.





8. 유조구의 담배 농사 (청태조릉 북릉 옆)



▲병자호란 때 납치돼 간 조선인들이 담배 농사를 지으며 부유하게 살았다던 심양 교외 유조구. 9.18 만주전쟁이 일어난 이곳에 전쟁기념관을 지어 일본의 만행을 되뇌이고 있다.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 태종의 무덤으로 통하는 북릉 입구. 지금은 심양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바뀌어 시만들이 즐겨 찾는 유원지가 되고 있다.

▲모택동과 싸우다 대만으로 망명한 반공군벌 장학량이 살던 집인 장수부. 집주인이 돌아오면 돌려주겠다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집세도 꼬박 꼬박 적립하고 있다고 한다.





9. 김응하 장군 전사지(심양-무순시-사얼후)



▲병자호란에 볼모로 잡혀온 소현세자 일행의 양식을 자급자족했던 사얼후 벌판. 멀리 보이는 산맥이 김응하 장군이 장렬하게 싸웠던 심하(深河)의 사얼후산 연맥이다.

▲사얼후산 근처 마을의 전형적인 중국 농부. 노새가 끄는 달구지에 야채를 싣고 가고 있다.











▣ 김항용 - 감사합니다.

▣ 김윤만 - 잘 읽었습니다.

▣ 김용주 - 감사합니다.

▣ 김윤식 - 연재 감사합니다.

▣ 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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