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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곡 김득신(1604-1684) 탄신 400주년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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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7-09 10:15 조회2,1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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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풍명월을 노래한 김득신의 시 (2002.5, 김득신기념사업회)



● 竹里孤烟 /죽리고연

老*叟*憑軒晩 /노수빙헌만 *늙은이 수 *기댈 빙

悠悠野興*牽 /유유야흥견 *끌 견

*疏林橫落日 /소림횡락일 *트일 소

荒店○孤煙 /황점○고연





● 竹里4)의 외로운 연기



늙은이 난간에 기대어 늦도록 있으려니



아득하게 들녘 흥취에 끌린다



성긴 수풀에 지는 해 비꼈고



쓸쓸한 주막에는 외로운 연기 피어오른다





4)竹里 : 본래는 청안군 남면의 지역으로서 남하리와 남차리의 중간에 있으므로 中里 또는 대나무가 많다 하여 竹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증평읍에 편입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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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리, 남하리는 삼보산 아래 마을로 안렴사공파 500년 세거지인데, 삼보산 전체가 안동김씨 종산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삼보산 산록 여기저기에는 안렴사공(휘사렴) 손자 사직서령공(휘자형)의 설단을 비롯하여 수많은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삼보산 아래에는 죽헌공(김규)파 재실 경모재가 있고, 남하리 쪽에는 금반부락 내력비, 김환극부부 효비각, 안동김씨사 등이 있고, 죽리 쪽에는 竹里 마을 지켜주는 守護石, 한사정(閑士亭), 院坪마을의 天祭祀(매년 낭독되는 제문은 안동김씨인 김근연 웃대 조부께서 제문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등의 유적유물이 산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번성해 나간 세대수가 1,600세대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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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시의 내용을 보면, 백곡 김득신(1604-1684) 선조님께서 늘그막에 죽리에 들러서 저 아래 주막이 보이는 곳에 있는 어느 건물의 난간에 기대어 시상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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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백곡 선조님께서는 1625년 아버지 남봉공의 유택을 율리에 모시고 묘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으므로, 이때 교유했을 가능성이 있는 죽리 남하리 안렴사공파 선조님은 다음과 같다.



○김명룡(金命龍)은 무진(戊辰) 1568년에 태어나 자 여윤(汝允)으로 청안(淸安)에 거주하다 한성부(漢城府), 동학(東學)에서 광해(光海) 10 (1618) 식년(式年) 생원(生員) 2등 0006으로 급제하였고,

○김주(金)는 부 김명룡(金命龍) 형 김오(金旿)이고 병오(丙午) 1606년에 태어나 자 여승(汝昇)으로 청안(淸安)에 거주하다 한성부(漢城府), 동학(東學)에서 인조(仁祖) 05 (1627) 식년(式年) 생원(生員) 3등 0040로 급제하였다. 이때 시험관은 이덕형(李德)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이었다.















▣ 솔내 -

▣ 김발용 -

▣ 김항용 - 오후 9시 이후 개통된 홈에 바로 불을 밝혀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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