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여름캠프 답사자료집 4---비안공종회 세덕사 및 김시열 묘소, 김공걸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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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7-28 17:40 조회1,814회 댓글0건본문
비안공종회 세덕사 및 김시열 묘소, 김공걸 묘역
(괴산 괴산읍 동부리 수진리, 괴산군청 인근)
1. 비안공종회 세덕사
괴산군청과 괴산향교 인근 동부리 402번지에 제학공파 비안공(휘 인갑) 종회 세덕사가 있다. 재실(숭모재)는 1991년 5월에, 사당(세덕사)은 1992년 10월에 준공하였다. 陽德公(휘 시열) 宗孫家(泰燮)에서 창건하였다.
비안공 이하 17위의 위패를 배향하고 있다. 비안공 (휘 仁甲) 양덕공 (휘 時說) 충익공 (휘 時讓) 합천공 (휘 徽) 穀 감사공 (휘 素) 안주공 (휘 繁) 판서공 (휘 徽) 승지공 (휘 龜萬) 부호군 (휘 南挺) 통덕랑 (휘 南採) ---
2. 김시열(金時說) 묘소 1569년(선조2)--1645년(인조23)
字는 여습(汝習). 충북 괴산 출생. 비안공 휘 인갑의 二子. 충북 괴산군 사리면 하도(荷島) 거주.
1620년(광해12. 52세) 무과급제. 1623 년(인조1. 55세) 선공감역(繕工監役). 1631(인조9. 63세) 양덕현감. 77세로 몰함. 子 素(監司公) 의 귀(貴)로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 묘는 충북 괴산군 괴산읍 수진리 수진산 자좌(子坐)이다. 평남 양덕에 송덕비가 세워졌다 함.
<유물> 교지 1매 (무과 급제)
3. 김공걸(金公傑) 묘역 (공걸---계안---원길 묘소)
세덕사 인근(150m) 수진리에 사직공(휘 공걸) 묘역이 있다. 안렴사공(사렴)--- (약)---遇周(우주)---丸(환)---宗孫(종손)---2자 현령공 휘土+遲(지)께서 문의현령으로 그 장자 사직공 휘公傑(공걸)의 후손이 괴산 문광에 살아서 文光派(문광파)라 한다. 후손들이 괴산군 문광면 신기리, 대명리 모실, 괴산군 사리면 이곡리, 청원군 북일면 덕암리 등지에 주로 세거하고 있다.
생원진사 급제 5명(지, 근, 계선, 영기, 규), 무과급제 1명(두근)이 있고, 영기는 율곡 문인이며, 김만협,김일 효자각(괴산군 문광면 신기리), 김태룡(1905-)송덕비 (괴산군 사리면 이곡리 이곡초), 김태선(1925-)공덕비 (괴산군 괴산읍 금산리) 등이 있다.
4. 괴산군청 주변 김사달 필적
괴산군청 정문에는 한글로 <괴산군청> 현판이 걸려 있고, 괴산군청 바로 아래에 괴산향교가 있는데 향교 정문 바로 앞에 <權熙鐸 頌德碑>가 서 있으며, 괴산군청 맞은편 괴산운동장 궁도장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 <射虎亭> <읍翠樓>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모두가 김사달 박사께서 書하신 것이다.
"괴산군청"과 같은 한글에서는 쉽지 않지만 "읍취루"와 같은 해서(楷書)에서는 50여세(1968)의 그의 강인하고 성숙한 성격을 엿보게 한다.
청천면 사무소에서 화양동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왼쪽에 그의 유적비가 있다. 1984년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났다. 비문은 한학자 이가원이 지었다.
김사달이 소중했던 것은 어떤 신식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문명을 독자적으로 흡수하여 이해했기 때문이다. 한학에만 통달해도 서양학이 쉽다는 이야기처럼, 그는 마지막 전통인이었으며 동시에 최초의 현대인이기도 했다. 특히 그의 독학정신은 당시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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