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족보상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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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01-12-16 02:16 조회1,741회 댓글0건본문
운만씨 감사합니다.
직제학공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하여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역사상 대과 급제 사실과 족보상의 기록만 전할 뿐 비문도 마멸되어 판독할 수
없기에 안타까웠는데 좋은 자료를 발굴 하시었습니다.
좀더 많은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여야 하겠습;니다.
아울러서 둘째이신 참의공과 막내이신 사인공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특히 의정부 사인을 지내신 막내선조 계우할아버님은 당시
큰 역활을 하셨으리라 짐작되는데도 이렇다할 자료를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의정부의 직위을 살펴보면
영의정,좌,우의정--좌,우찬성-좌우참찬-사인-- 이러합니다.
직제학공과 사인공은 형제가 대과에 급제한 드문일로 기록된 것 뿐
다른 자료가 별로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훌륭한 선조님의 자료를 발굴하리라 믿습니다.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서 좋은 자료 발굴에 찬사를 보냅니다.
영환 드림
김윤만 wrote:
: 문종 2년(1452년)에 완성된 高麗史節要 修史官(고려사절요 수사관) 기록에
: 奉列大夫 守藝文館直提學 兼春秋館記注官 臣 金孟獻(봉열대부 수예문관직제학 겸춘추관기주관 신 김맹헌)
: 承議郞 成均主簿 兼春秋館記事官 臣 金 (승의랑 성균주부 겸춘추관기사관 신 김질)의 기록이 있습니다.
:
: 여기서는 佐翼功臣(좌익공신), 佐理功臣(좌리공신)으로 좌의정, 院相(원상)을 역임하신 文靖公(문정공) (질, 1422년 세종 24년∼1478년 성종 9년)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족보상 행장의 기록이 부족한 直提學公(孟獻)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펴보았습니다.
:
: 직제학공은 문온공(구용)의 손자이고, 부사공(명리)의 장자로서 문온공파 임신(1992년)세보 권2. 맹헌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孟獻 號 大隱菴 宣德 丙午文科歷檢閱銓郞官止 藝文館直提學
: 맹헌 호 대은암 선덕 병오문과역검열전랑관지 예문관직제학
: 직제학공께서는 1426년(세종 8년) 문과에 급제하시어 검열, 전랑(吏曹의 정랑 및 좌랑을 일컬음), 예문관직제학을 역임하셨는 바 직제학공께서 활동하시던 시기(세종조)와 직위(예문관직제학)가 고려사절요 수사관과 임신세보의 기록이 일치하고 있어 여기서 저는 두 분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따라서 향후 派譜(파보) 및 大同譜(대동보)를 편찬할 때 직제학공 행적에 고려사절요를 편찬한 수사관으로서의 기록을 첨가 삽입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 참고로 고려사절요 수사관 중 기주관은 김맹헌을 비롯한 신숙주, 박팽년, 김예몽, 양성지, 유성원 등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분들로서 직제학공의 교분의 폭을 가름해 볼 수 있겠습니다.
:
: 한편 직제학공(맹헌)과 六鎭을 개척하고 高麗史, 高麗史節要의 편찬을 주관하신 백두산 호랑이 忠翼公(충익공) 節齋(절재) 김종서장군 사이는 査頓之間(사돈지간)입니다.
: 즉, 직제학공의 장손 大司憲(대사헌) 延壽(연수)공의 配位(배위)가 貞夫人(정부인) 순천김씨이며, 이분이 김종서 장군의 따님이기 때문입니다. 무섭고 두려운 마음으로 세보를 살펴보건대 대사헌 연수공계는 아들 式(식)을 끝으로 절손되어 無後(무후)하다는 것과 養子(양자)의 기록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후한 이유가 혹시 癸酉靖亂(계유정란)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할 뿐입니다.
:
: 참고 1 : 癸酉靖亂은 1453년 단종1년에 왕권강화를 명분으로 한 수양대군(세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격살하고 동생 안평대군을 사사하여 왕이되려는 기반을 닦은 정변을 말합니다.
:
: 참고 2 : 고려사절요는 고려사와 더불어 세종, 문종대의 고려사 인식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史書(사서)인데 조선전기사학사연구(한영우, 서울대학교출판사)를 살펴보면 당시 조정의 臣僚(신료)들은 정인지, 신숙주 등 친고려사파(친세조파)와 김종서, 허우 등 친절요파(친단종파)로 구분되었다 하며, 세조가 가장 싫어한 사서가 고려사절요였다고 합니다.
:
: 참고 3 : 춘추관은 經國大典(경국대전)에 의하면 領事(영사 : 영의정 겸임), 監事(감사 : 좌.우의정 겸임), 知事(지사 : 정2품), 同知事(동지사 : 정3품∼종4품), 修撰官(수찬관 : 정3품), 編修官(편수관 : 정3품∼종4품), 記注官(기주관 : 정. 종5품), 記事官(기사관 : 정6품∼정9품)으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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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제학공에 대해서는 자료가 부족하여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역사상 대과 급제 사실과 족보상의 기록만 전할 뿐 비문도 마멸되어 판독할 수
없기에 안타까웠는데 좋은 자료를 발굴 하시었습니다.
좀더 많은 자료를 찾아서 정리하여야 하겠습;니다.
아울러서 둘째이신 참의공과 막내이신 사인공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특히 의정부 사인을 지내신 막내선조 계우할아버님은 당시
큰 역활을 하셨으리라 짐작되는데도 이렇다할 자료를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의정부의 직위을 살펴보면
영의정,좌,우의정--좌,우찬성-좌우참찬-사인-- 이러합니다.
직제학공과 사인공은 형제가 대과에 급제한 드문일로 기록된 것 뿐
다른 자료가 별로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훌륭한 선조님의 자료를 발굴하리라 믿습니다.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하면서 좋은 자료 발굴에 찬사를 보냅니다.
영환 드림
김윤만 wrote:
: 문종 2년(1452년)에 완성된 高麗史節要 修史官(고려사절요 수사관) 기록에
: 奉列大夫 守藝文館直提學 兼春秋館記注官 臣 金孟獻(봉열대부 수예문관직제학 겸춘추관기주관 신 김맹헌)
: 承議郞 成均主簿 兼春秋館記事官 臣 金 (승의랑 성균주부 겸춘추관기사관 신 김질)의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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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는 佐翼功臣(좌익공신), 佐理功臣(좌리공신)으로 좌의정, 院相(원상)을 역임하신 文靖公(문정공) (질, 1422년 세종 24년∼1478년 성종 9년)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족보상 행장의 기록이 부족한 直提學公(孟獻)에 대해서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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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제학공은 문온공(구용)의 손자이고, 부사공(명리)의 장자로서 문온공파 임신(1992년)세보 권2. 맹헌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孟獻 號 大隱菴 宣德 丙午文科歷檢閱銓郞官止 藝文館直提學
: 맹헌 호 대은암 선덕 병오문과역검열전랑관지 예문관직제학
: 직제학공께서는 1426년(세종 8년) 문과에 급제하시어 검열, 전랑(吏曹의 정랑 및 좌랑을 일컬음), 예문관직제학을 역임하셨는 바 직제학공께서 활동하시던 시기(세종조)와 직위(예문관직제학)가 고려사절요 수사관과 임신세보의 기록이 일치하고 있어 여기서 저는 두 분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따라서 향후 派譜(파보) 및 大同譜(대동보)를 편찬할 때 직제학공 행적에 고려사절요를 편찬한 수사관으로서의 기록을 첨가 삽입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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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고려사절요 수사관 중 기주관은 김맹헌을 비롯한 신숙주, 박팽년, 김예몽, 양성지, 유성원 등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분들로서 직제학공의 교분의 폭을 가름해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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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직제학공(맹헌)과 六鎭을 개척하고 高麗史, 高麗史節要의 편찬을 주관하신 백두산 호랑이 忠翼公(충익공) 節齋(절재) 김종서장군 사이는 査頓之間(사돈지간)입니다.
: 즉, 직제학공의 장손 大司憲(대사헌) 延壽(연수)공의 配位(배위)가 貞夫人(정부인) 순천김씨이며, 이분이 김종서 장군의 따님이기 때문입니다. 무섭고 두려운 마음으로 세보를 살펴보건대 대사헌 연수공계는 아들 式(식)을 끝으로 절손되어 無後(무후)하다는 것과 養子(양자)의 기록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무후한 이유가 혹시 癸酉靖亂(계유정란)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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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1 : 癸酉靖亂은 1453년 단종1년에 왕권강화를 명분으로 한 수양대군(세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격살하고 동생 안평대군을 사사하여 왕이되려는 기반을 닦은 정변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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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2 : 고려사절요는 고려사와 더불어 세종, 문종대의 고려사 인식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史書(사서)인데 조선전기사학사연구(한영우, 서울대학교출판사)를 살펴보면 당시 조정의 臣僚(신료)들은 정인지, 신숙주 등 친고려사파(친세조파)와 김종서, 허우 등 친절요파(친단종파)로 구분되었다 하며, 세조가 가장 싫어한 사서가 고려사절요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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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3 : 춘추관은 經國大典(경국대전)에 의하면 領事(영사 : 영의정 겸임), 監事(감사 : 좌.우의정 겸임), 知事(지사 : 정2품), 同知事(동지사 : 정3품∼종4품), 修撰官(수찬관 : 정3품), 編修官(편수관 : 정3품∼종4품), 記注官(기주관 : 정. 종5품), 記事官(기사관 : 정6품∼정9품)으로 편제되어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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