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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金方慶 44---제1차 정벌군의 병력과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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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8-06 23:27 조회1,4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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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조선 2004년 1월호

제1차 정벌군의 병력과 장비

제1차 원정군의 병력은 기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高麗史」에는 몽골군은 2만5000명이고, 고려군은 장병 8000명과 梢工·引海(바다길 안내자)·水手 6700명 등 1만4700명이다. 이를 모두 합치면 연합군의 軍勢는 3만9700명이다. 고려군의 지휘부는 三翼軍 中軍都督使 ★金方慶, 副使는 左軍이 김선, 右軍이 金文庇(김문비)로 구성되었다.

몽골군은 원정군의 배후에서 督戰隊(독전대)의 역할을 하고, 선봉의 역할은 고려군이 감당해야 했다. 원정군의 편성은 千戶制(천호제)를 취해 그 아래로 百戶, 十戶로 세분, 제각기 지휘자를 두었다. 이것이 유목민족국가의 전통적 시스템이다.

合浦를 출항한 병선 900척은 100∼300t급의 千料舟(천료주)가 300척, 상륙용 주정인 拔都魯輕疾舟(발도로경질주)가 300척, 음료수를 싣는 吸水舟(흡수주)가 300척이었다. 이 중 장병과 軍糧, 말과 기타 군수품을 적재한 것은 천료주로서 이것이 주력함이었다. 상륙정 앞에 붙은 「拔都魯」(바토르)라는 말은 「용맹하다」는 뜻의 몽골어이다. 따라서 전함 1척이 제각기 상륙정과 흡수주를 거느리고 있는 셈인 만큼 주도면밀하게 준비된 기동부대라고 할 수 있다.

몽골의 병사들은 日本兵과 달리 가능한 한 輕裝(경장)으로서 머리에 얇은 철제의 투구를 쓰고, 가죽製의 갑옷과 장화로 온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무기는 손에 短弓(단궁) 혹은 長槍(장창)을 들고 허리에는 曲刀(곡도) 혹은 도끼를 찼다.

短弓은 길이 1.5m의 활로서 탄력이 있고, 사정거리가 200m에 달했는데, 그것을 지닌 병사들은 제각기 화살통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었다.

기타 무기로서는 투척용 石彈과 爆裂彈(폭열탄)이 있었다. 이것은 鐵 혹은 도자기로 만든 둥근 容器(용기)에 화약을 집어넣은 것으로서 점화하여 투척하면 공중에서 작열하여 엄청난 굉음을 냈다.

연합군은 진지를 구축하면 거적이나 대나무로 만든 방벽으로 주위를 굳히고, 공격할 때는 鼓笛(고적)을 울려 사기를 북돋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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