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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제3회 안사연 여름캠프 보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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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김발용 작성일04-08-07 12:45 조회1,7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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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제3회 안사연 여름캠프 보고(2)

◆11:55 죽헌공종중 경모재 - 12:06 율리 남봉공 묘역 着
일가분 100여 명의 맑은 웃음소리를 삼보산에 남겨놓은 채 율리 남봉공(휘 치)
묘역으로 향합니다.
경모재 입구 돌표석에서 우회전하여 농로를 따라가면 죽리초등학교입니다. 이
곳에서 2차선 도로로 들어서서 우회전, 계속 길을 따라가면 남차3거리(12:01)
에 이어 도로 한가운데 고목 대여섯 그루가 모여 있는 곳이 나옵니다.
아름다운 길입니다. 이 길이 백곡(휘 득신) 할아버지의 호를 딴 백곡로입니다.
조선 최고의 시인 중 한 분이신 백곡 할아버지를 알리는 도로 표지판 하나 없
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남차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저수지를 낀 채 고개를 구비 도니 율리 입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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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하신 규복 종친께서 마을 입구에 나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
을유래비(율리유래비) 인근에 질서정연하게 주차한 다음 규복 종친을 따라 묘
역으로 오릅니다.
돌담길 군데군데 접시꽃이 환하게 피었습니다. 소나기 한 줄금 머금은 도라지
꽃도 한창입니다. 낯선 인기척에 놀란 동네 개들이 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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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분 묘역에 도착, 맨 위 남봉공(휘 치) 할아버지께 큰절을 올립니다. 남봉
공께서는 구암공(휘 충갑)의 큰아드님이신 부평공(휘 시회)의 5남 4녀 중 4째
아들로 태어나 작은아버님이신 충무공(휘 시민)께 입양되신 분입니다.

△충렬공 → 3子 문영공(휘 순) → 1子 문숙공(휘 영돈) → 子 상락백(휘 진) →
子 제학공(휘 익달) → 子 사령공(휘 고) → 1子 감찰공(휘 명렴) → 1子 주부공
(휘 철균) → 1子 승지공(휘 수형) → 2子 참판공(휘 언묵) → 子 영상공(휘 석)
→ 1子 구암공(휘 충갑), 2子 현감공(휘 효갑), 3子 참봉공(휘 우갑), 4子 문숙공
(휘 제갑), 5子 비안공(휘 인갑)

△구암공(휘 충갑) → 3子 충무공(휘 시민) → 子 남봉공(휘 치) → 1子 백곡공
(휘 득신) → 1子 화은군(휘 천주)

▲ 율리 남봉공 묘소
헌관 : 규복(백곡공 12대손)
집례 : 용두
집사 : 항용
사준 : 윤만

남봉공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홈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므로 자세한 소개는 생
략합니다.(제3회 여름캠프 답사자료 및 안동김씨 홈페이지 ‘안동김씨 소개’ 중
‘역사적 주요인물’ 참조)
남봉공의 휘자가 ‘치’인 관계로 제학공파 남봉공문중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짠
지’, ‘침채’ 등으로 피휘하고 있습니다.
묘소에는 묘비와 문인석, 망주석, 동자석이 각각 1쌍이며, 근래에 새로 조성한
상석 등의 석물이 배치돼 있습니다. 묘비와 커다란 문인석이 웅장합니다.
중국의 자미두서보다 더 뛰어난 <심곡비결> 등을 남기실 정도로 역술에 밝은
분이시기도 합니다. 남봉공의 12대 손이신 규복 종친께서 남봉공 묘소가 이곳
율리에 자리잡게 된 내력을 들려주십니다.
“이곳 분티고개가 본래 경상도로 넘어가는 고개요. 남봉공 할아버지께서 경상
도 관찰사로 계실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각 관아에서 운구를 책임졌다고 합
디다. 남봉공 할아버지 시신을 모시고 저 분티고개를 넘었는데, 갑자기 명정         
공포가 바람에 날리더니 지금 이 자리로 날아와서는 계좌(癸坐)로 쪽 깔린겨.         
그때만 해도 여긴 사람 하나 살지 않는 첩첩산골이라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고 합디다. 이곳 청안현 현감이 백성들을 동원해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내서         
이곳에 모시게 되었답디다. 옛날부터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 전부여. 저기 저         
고개가 경상도로 넘어가는 분티고갭니다.”         
다정하게 웃으며 조용조용 옛 일을 들려 주시는 규복 종친의 얼굴에서 남봉공         
할아버지 얼굴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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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봉공 묘역 바로 밑 첫 번째 집이 백곡 할아버지께서 시묘살이를 하시던 묘막         
터라고 합니다. 지금은 농촌 가옥이 들어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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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땡볕을 받으며 규복 종친 댁 앞으로 내려오니 어느 틈에 영회 종친께서         
차가운 물을 준비했다가 내놓으십니다. 월례 등산모임이나 여름캠프 때면 빠        
짐없이 참석하셔서 격려해 주신 덕에 매번 송구하기만 합니다. 냉수 한 그릇에         
더위가 저만큼 물러갑니다.         
                 
남봉공 묘소 밑에는 백곡공(휘 득신) 할아버지와 배위 정부인 경주김씨 쌍분이         
모셔져 있습니다. 동자석 1쌍을 제외하곤 묘비와 망주석 등은 모두 근래에 새        
로 세운 것입니다. 묘비에는 가선대부 안풍군 김득신지묘라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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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곡 할아버지는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뛰어난 시인이신지라 이곳 율        
리 묘역을 찾는 문학도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답니다. 묘역 관리와 관        
할 관청의 안내판 설치 등이 필요한 곳입니다.         
백곡 할아버지는 올해 탄신 400주년을 맞이한 까닭에 우리 후손들이 미리 준        
비했다면 널리 현양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죄스럽기만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주회 종친께서 우리 홈 게시판 올리신 글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백곡 할아버지 출생지는 진천군인지 증평군인지 아직 확연하게 밝혀지지 않았        
습니다. 이 문제만 고증된다면 관할 관청에서도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으        
리라 봅니다. 규복 종친과 항용 종친께서는 이곳 고개 너머 지명이 ‘백곡’이고,         
묘소 앞의 개울이 ‘심곡’인 점으로 보아 출생지가 이곳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정        
하기도 합니다.         
                 
▲ 백곡공 묘소         
헌관 : 태서         
집례 : 용두         
집사 : 항용         
사준 : 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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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 율리 - 13:02 청안사마소 着         
율리에서 길을 되돌아 나와서 길 복판에 고목들이 서 있는 곳을 지나면 남차3        
거리입니다. 이곳에서 우회전(청안 방향)하면 자그마한 남차2교입니다. 그 길        
을 따라 조천리까지 가서 도로표지판을 보고 금신4거리에서 좌회전(12:59분 -         
괴산ㆍ사리 방향) 청안면 시가지입니다. 청안사마소는 시가지 뒤쪽인데 주민        
들에게 물어보시면 쉽게 찾으실 수 있습니다.         
청안사마소 전교께서 우리 일행이 온다는 기별을 받고 1시간 넘도록 기다리시        
다 우리 일정이 늦어져 송구스럽게도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약속시간을 지키        
지 못해 죄송한 말씀을 전합니다.         
사마소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으로 두리기둥에 겹처마, 익공집입        
니다. 청안사마소는 바로 옆의 향교와 함께 최근에 복원공사가 끝나 우리 일행        
이 첫 손님으로 방문한 셈이 되었습니다.         
사마소는 전국적으로 매우 희귀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남에 2개소, 이북에 1        
개소만 있었다고 합니다. 인근 사리면 도화동에 살고 계시는 용두 종친께서 이        
곳 청안사마소 장의를 맡고 계십니다.         
청안사마소에는 총 168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우리 문중에서는 제학공파        
의 백곡 할아버지를 비롯해 죽리와 남하리 출신인 안렴사공파 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향사는 매년 음력 9월 27일입니다.         
지난 7월 4일 사전점검 때만 해도 현장에서 내부수리가 완료되지 않을 것 같다        
는 소식을 들었는데, 우리 일행의 방문 소식 때문인지 8분 할아버지 위패가 모        
두 모셔져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신 청안사마소 관계자들께 감사 말        
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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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사마소         
김명룡(金命龍 생원), 김호철(金好哲 진사), 김기필(金基弼 진사), 김흥보(金興        
輔 진사), 김보(金寶 생원), 김구석(金龜錫 생원), 김득신(金得臣 진사), 김주(金        
日+舟 생원)         
                 
청안사마소를 나와 예약해 둔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14:19분 보광산 휘 소ㆍ        
휘 구만 할아버지 묘역으로 향합니다.         
                 
◆14:19 청안사마소 - 15:00 보광사 着         
도로표지판의 괴산 방향을 달려 모래재(14:32)를 지나 보광사 입구에 도착하        
니 14:53분입니다. 보광산은 근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대부분 알고 있는 산        
입니다. 보광산 중턱에 우리 일가분이신 태국 종친이 주지로 계신 보광사가 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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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에서 그 위쪽으로 난 오솔길이 감사공(휘 소)과 승지공(휘 구만) 묘소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보광사까지는 길이 좁기는 하나 승용차로 충분히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영상공(휘 석) → 5子 비안공(휘 인갑) → 4子 양덕공(휘 시열) → 子 감사공        
(휘 소) → 子 승지공(휘 구만)         
                 
감사공 묘소 앞에는 고려시대의 5층 석탑(괴산 봉학사지 5층석탑)이 서 있습니        
다. 통일신라기의 석가탑 계열 양식에 백제 계열의 목탑 양식이 약간 습합된         
형태이나 체감 비율이 적절하지 않은 석탑입니다. 그러나 비교적 웅장한 맛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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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탑명이 말하듯 봉학사가 있던 자리로 황계포란형 또는 금계포란형에         
해당하는 혈자리라고 합니다.         
감사공의 묘소는 본래 보광산 아래 사담리에 유택을 정했는데 이곳이 워낙 명        
당자리인지라 출가하신 따님이 장례 전날 바가지로 물을 퍼 넣어서 물 나오는         
자리인 줄 알고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봉학사는 조선조의 숭유억불 정책에 의해 거의 폐사 직전까지 쇠락했는        
데, 이곳에 감사공 할아버지 묘소를 쓰게 되면서 완전히 폐철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 절 출신 승려가 천문지리를 익힌 다음 술수를 써서 혈자        
리를 손상하게 만들었답니다. 건너편 산에 물 흐르는 자리를 가린 것과 알둥지        
에 해당하는 묘소 뒤쪽에 바람막이용 언덕을 높이 쌓은 것이 바로 그것이랍니        
다. 이로 인해 뒤에 자손이 이어지지 못하고 양자를 들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옵니다.         
상석 역시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전 점검 당시 항용 종친께서 소개한         
내용입니다.         
장례 당시 상석을 크게 준비하려고 했더니 석수장이 말이 “이 상석은 점점 커        
지는 돌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자연법칙으로야 돌이 어찌 커지고 줄어지고         
하겠습니까? 그 말은 곧 자손이 줄고 재물이 줄어서 상석에 올릴 제물이 줄어        
드니 빈자리가 점점 크게 드러난다는 이야기랍니다. 어찌 되었든 그 후 3대에         
걸쳐 양자를 들이게 된답니다. 그리고 항용 종친의 이야기로는 풍수지리상 화        
와 복은 10대에 그치고 새로운 기운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항용 종친        
께서는 할아버지께서 양자 오셨는데 바로 그 화에서 벗어나는 대수라 그런지         
아드님을 여러 분 두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사전점검 당시는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좌우의 커다란 나무들이 이리        
저리 쏠리며 울어대는 소리에 귀가 멍멍할 정도였는데, 유독 묘소 부근만 바람         
한 점 없었습니다. 아마도 와류가 생기면서 이 자리만은 바람이 들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눈이 와도 이곳이 가장 먼저 녹는다고 합니다.         
감사공 묘역 좌우에는 간격을 멀리 두고 커다란 문인석 1쌍이 묘역을 지키고         
있습니다. 수풀에 가려 유심히 보지 않고는 1쌍이란 걸 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묘소 앞에는 각각 동자석 1쌍과 상석이 놓여 있습니다. 감사공 묘소 상석에는         
감사공 휘자와 배위 정부인 광주김씨, 승지공 묘소 상석에는 승지공 휘자와 배        
위 정부인 의령남씨가 음각돼 있습니다. 묘 둘레는 각각 40보씩으로 대단한 규        
모입니다.         
마침 충북대 연구원 1명이 괴산군 유적지 조사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올라오        
는 중이라 우리 일행과 합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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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공 묘소         
헌관 : 옥회(성암)         
집례 : 용두         
집사 : 항용         
사준 : 윤만         
                 
▲ 승지공 묘소          
헌관 : 항용         
집례 : 용두         
집사 : 용주         
사준 : 윤만         
                 
보광사로 내려와 잠시 땀을 식힙니다. 마침 태국 종친께서는 출타 중이라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보광사 본전에는 옛 봉학사에 모셔져 있던 본존불을 되찾아         
이곳에 봉안해 놓고 있다고 합니다.         
보광사 샘물 뒤쪽 암벽이 예전에는 볼 만한 곳이었는지 사람 이름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샘물 바로 옆 건물 뒤로 돌아가 보니 ‘鳳鶴’이라 새긴         
커다란 글자가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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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 옆은 옥회 종친의 웃대 할아버지 묘소라고 합니다. 이곳을 처음 찾은 옥        
회 종친께서는 만감이 교차하시는 듯합니다.         
보광산을 내려오면서 펼쳐지는 풍치 또한 장관입니다. 큰길로 들어서니 16:03        
분입니다. 이제 홍명희 생가로 향합니다.         
                 
◆16:03 보광사 입구 - 16:36 홍명희 생가 着         
30여 분을 달려 증평 읍내로 들어서서 괴산교육청이 나옵니다. 증평 읍내 중앙        
서림이 대식 종친(괴산문화원장)께서 운영하시는 사업체입니다. 규모가 증평        
읍 일대에서는 가장 큰 서점이랍니다.         
홍명희 생가는 증평 읍내에서 동진천 다리를 건너자마자 있습니다. 거의 다 쓰        
러질 정도로 퇴락했는데 홍명희의 전력 때문에 생가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        
습니다. 이 때문에 홍명희 생가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 홍범식의 생가로         
복원 결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홍범식은 1900년대에 홍성군수로 재직 중 한일        
합방에 의해 주권을 잃게 되자 이에 격분하여 자결한 분입니다.         
다리 위에 주차할 만한 공간이 있으나 교통위반으로 자주 단속하는 장소이므        
로 가급적 홍명희 생가에 있는 공터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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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희 생가를 둘러보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곧 멎겠지 했는데         
점점 더 굵어집니다. 느린 속도로 선두 항용 종친 차량을 따라 세덕사로 향합        
니다.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라 이내 세덕사에 도착했습니다.         
                 
◆18:10 세덕사 - 18:15 양덕공 묘소 着         
세덕사는 안동김씨 제학공파 비안공종중회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비안공은         
바로 5甲 형제분 중 막내이신 휘 인갑 할아버지이십니다. 세덕사 앞 공터에 도        
착하니 언제 그랬냐 싶게 빗줄기가 가늘어졌습니다.         
세덕사는 항용 종친의 부친께서 사재를 털어 세운 것으로 현재 비안공 후손 할        
아버지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세덕사 옆은 숭모재(崇慕齋)로 항용 종친의 부모        
님께서 거주하고 계십니다.         
항용 종친의 부모님과 누님 등 가족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세덕사로 들어가 인        
사를 드립니다. 우리 일행을 위해 항용 종친께서는 미리 비안공문중에서 전해        
지는 각종 교지, 서적, 백패, 홍패 등을 잘 정리해 전시해 놓았습니다. 귀한 보        
물들을 대하는 감격과 부러움이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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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남자들만 양덕공(휘 시열) 묘소로 향합        
니다. 거리는 대략 10분 이내입니다. 이곳은 안렴사공파 종중산인데 양덕공 묘        
소 위쪽으로 안렴사공파 사직공(휘 공걸) 묘역입니다.         
양덕공은 평안도 양덕현감을 지내셨는데 충무공(휘 시민)과 충숙공(휘 제갑)         
할아버지 음덕으로 52세에 무과 급제 교지를 받고 출사하셨습니다. 이곳 지명        
이 수진리(水津里)로서 일제 때 지명이고 원이름은 괴산 나루터였다고 합니다.         
예전에 한강을 따라 이곳까지 소금배가 들어왔던 까닭에 수진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덕공 묘소에는 동자석과 망주석 각 1쌍과, 상석이 배치돼 있습니다. 원래 새        
기다 만 장군석 1쌍이 있었는데, 웃대 어른들께서 새기다 만 까닭이 있을 것으        
로 생각해 그 상태 그대로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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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덕공 묘소         
헌관 : 상석         
집례 : 용주         
집사 : 항용         
사준 : 용준         
                 
◆18:20 양덕공 묘소 - 18:25 사직공 묘소 着         
양덕공 묘소에 참배한 다음 그 위쪽으로 조금 떨어진 사직공 묘소로 올라갔습        
니다. 사직공 묘역에는 사직공(휘 공걸)을 비롯해 부사공(휘 계안), 부사공(휘         
원길) 및 통훈대부 김공의 묘소가 있습니다.         
                 
△안렴사공 → 5子 소윤공(휘 약) → 子 지주사공(휘 우주) → 1子 판교공(휘         
환) → 子 참의공(휘 종손) → 2子 현감공(휘 지) → 1子 사직공(휘 공걸) → 1子         
부사공(휘 계안) → 1子 부사공(휘 원길)         
                 
맨 위가 부사공(휘 원길) 묘소로 그 아래에 사직공 묘소가 있으니 역장으로 모        
신 겁니다. 사직공 묘소(합봉)로 올라가 큰절을 올립니다.         
                 
▲ 사직공 묘소         
헌관 : 용주         
집례 : 용준         
집사 : 용환         
                 
사직공 묘소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쌍입니다. 상석은 근래에 새로 만        
들었습니다. 묘표에는 충무위사직 안동김공 휘공걸지묘, 배 숙부인 순흥안씨         
해좌라 적혀 있습니다. 주위에 보라색 도라지꽃이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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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 부사공(휘 계안) 묘표에는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안동김공 휘계안지묘,         
배 숙부인 의성김씨 묘부 해좌라 적혀 있습니다. 봉분은 쌍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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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사공 묘소         
헌관 : 주회         
집례 : 용준         
집사 : 용환         
                 
안렴사공 후손이신 용주, 용준, 용환 3형제분이 부사공 묘소 앞에서 기념사진        
을 찍습니다. 3형제분이 함께 하신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 형제애가 정말 부        
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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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공 묘소(휘 원길) 묘소로 내려와 참배를 올립니다. 묘표에는 통훈대부 행        
영해도호부 김공지묘, 숙인 의령남씨지묘라 적혀 있습니다. 쌍분으로 문인석         
1쌍이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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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사공 묘소         
헌관 : 항용         
집례 : 용준         
집사 : 주회         
                 
그런데 곤혹스런 일이 생겼습니다. 그 아래쪽에 묘소가 있는데 묘표에는 통훈        
대부 김양○이라 적혀 있습니다. 맨 끝자가 명확하지 않아 守자 같기도 하고,         
宇자 같기도 합니다. 또 어찌 보면 中자인 듯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3글자         
모두 아니기도 합니다.         
문인석 1쌍만 서 있을 뿐 별다른 표석이 없어 어느 분이신지 도저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항용 종친 말씀으로는 인근 종친들도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실        
정이라고 합니다. 어찌 되었든 묘역 형편으로 보아 웃대 할아버지일 가능성이         
높아 각자 재배를 올립니다.         
이 문제는 우리 일행의 숙제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곳을 잘 아시는 분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조금씩 산그늘이 짙어지는 걸 보니 조금 지치기도 합니다. 숨가쁘게 달려온 하        
루 일정입니다. 느린 걸음으로 정담을 나누며 세덕사로 향합니다.         
세덕사에 도착하니 영환 종친을 비롯해 옥회 종친 및 현지 종친 몇 분께서 귀        
가하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일가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말        
씀 올립니다.         
                 
◆19:30 이후         
저녁시간이 되자 세덕사 마당은 말 그대로 잔치마당이 되었습니다. 곱게 자란         
잔디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푸짐한 저녁을 듭니다.         
항용 종친의 자당어른과 누님들, 그리고 답사팀에 참여한 안동김씨 며느님들        
께서 연신 음식을 내오십니다. 마당 한쪽에서 남자 종친들이 돼지고기를 굽습        
니다. 그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이 자리에서 항용 종친의 아버님께서는 환영 인사와 함께 세덕사의 유래를 들        
려 주십니다. 아울러 안동김문의 일원으로 그에 따른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죽        
어서도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배부르게 저녁을 들고는 우리 일행 모두 동친천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동진        
천 맨밭숲길’이라는 이름으로 공원이 조성돼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뾰족뾰족        
한 길을 걸으니 저절로 발에 지압이 됩니다. 맨발숲길 맨 끝에 둘러앉아 발을         
물에 담근 채 캔맥주 한 잔씩을 나눕니다. 갈증이 다 달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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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쉰 뒤 느린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 사호정으로 향합니다. 마침 국가대표         
상비군 2진 선수들이 이곳 활터에 전지훈련을 나와 있었습니다. 밤이 늦어 훈        
련장면을 볼 수 없었지만 이곳을 관리하는 사호정 총무 윤회진 씨를 만났습니        
다.         
윤두수 공의 후손으로 괴산지역의 우리 일가분들과 친교가 깊은 분이십니다.         
이분을 통해 도의원을 지내신 김서응(휘 우갑 후손) 공의 이야기와 김서응 공        
의 국궁 장면 사진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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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호정은 본래 군자정인데 중심정(中心亭)을 거쳐 사호정(射虎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김사달 박사께서 쓰신 ‘射虎亭’ 휘호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 글자를 모각한 것이 바로 이곳에 복원된 정자 射虎亭 현        
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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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사로 돌아오는 길에 역시 김사달 박사께서 쓰신 괴산군청 현판을 살펴봅        
니다. 한글 휘호로 반듯한 성품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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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수권공공덕비-김사달 書

남자분들은 세덕사 인근 향교로, 여자분들은 세덕사로 들어가 단잠을 청합니        
다. 그 날, 향교에서는 코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 그리고 핸드폰 알람 소리         
때문에 단잠을 설쳤다는 후일담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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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향교
                 
이상 8월 1일 첫날 일정 보고를 마칩니다. 내일 이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김윤식, 사진 김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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