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회에 이런것을 건의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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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1-12-19 05:29 조회1,796회 댓글0건본문
2001년 8월 초에 촬영한 충렬공묘소 비석 사진을 싣고자 했으나 실어지질 않네요.
어찌되었던 전면 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高麗推忠靖難定遠功臣壁上三韓(고려추충정난정원공신벽상삼한)
三重大匡僉議中贊世子師上洛君(삼중대광첨의중찬세자사상락군)
開國公 諡忠烈 金方慶 之墓(개국공 시충렬 김방경 지묘)
또한 충렬공신도비의 전면도 上洛君忠烈公金方慶神道碑(상락군충렬공김방경신도비)로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진 판독이 곤란하여 싣지 못했으니 자료를 갖고 계신 宗人(종인)이 계시면 확인하여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위의 것이 사실이라면 묘소 비문의 上洛君開國公은 上洛郡開國公으로 수정되어야 하고
특히 신도비의 上洛君은 上洛公의 오기가 분명하므로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고려시대 봉작제 연구서를 살펴 본 결과 작위를 수여할 때 公爵(공작)은 (國, 郡)公이었습니다.
또한 고려사를 대표하는 문헌을 살펴보더라도 분명히上洛郡開國公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온공파 임신세보 P103
왕은 공에게 推忠靖難定遠功臣三重大匡僉議中贊典理司事世子師를 삼아 치사케하고
다시 上洛郡開國公 食邑一千戶食實封三百戶를 封하다.
○고려사 권제104 열전 제17
今封 上洛郡開國公 食邑一千戶食實封三百戶
○고려사절요 권제21 충렬왕3
賜金方慶爵, 上洛郡開國公
○동안거사집(삼척시 발행) P28. 단모부
지금 새로 책봉된 上洛郡開國公 京兆 김방경 저하는 원묘(元廟)조 11년(1270년)에 재상이 되고,
따라서 대단히 송구스러운 건의입니다만 대종회에서 한번 사학계의 검증을 받아 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이 문제는 충렬공 할아버지의 명예에 관계되는 일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충렬공 할아버지 후손들의 자긍심에 관계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외람되이 이런 글을 올리게 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끝"
어찌되었던 전면 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高麗推忠靖難定遠功臣壁上三韓(고려추충정난정원공신벽상삼한)
三重大匡僉議中贊世子師上洛君(삼중대광첨의중찬세자사상락군)
開國公 諡忠烈 金方慶 之墓(개국공 시충렬 김방경 지묘)
또한 충렬공신도비의 전면도 上洛君忠烈公金方慶神道碑(상락군충렬공김방경신도비)로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진 판독이 곤란하여 싣지 못했으니 자료를 갖고 계신 宗人(종인)이 계시면 확인하여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위의 것이 사실이라면 묘소 비문의 上洛君開國公은 上洛郡開國公으로 수정되어야 하고
특히 신도비의 上洛君은 上洛公의 오기가 분명하므로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고려시대 봉작제 연구서를 살펴 본 결과 작위를 수여할 때 公爵(공작)은 (國, 郡)公이었습니다.
또한 고려사를 대표하는 문헌을 살펴보더라도 분명히上洛郡開國公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온공파 임신세보 P103
왕은 공에게 推忠靖難定遠功臣三重大匡僉議中贊典理司事世子師를 삼아 치사케하고
다시 上洛郡開國公 食邑一千戶食實封三百戶를 封하다.
○고려사 권제104 열전 제17
今封 上洛郡開國公 食邑一千戶食實封三百戶
○고려사절요 권제21 충렬왕3
賜金方慶爵, 上洛郡開國公
○동안거사집(삼척시 발행) P28. 단모부
지금 새로 책봉된 上洛郡開國公 京兆 김방경 저하는 원묘(元廟)조 11년(1270년)에 재상이 되고,
따라서 대단히 송구스러운 건의입니다만 대종회에서 한번 사학계의 검증을 받아 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이 문제는 충렬공 할아버지의 명예에 관계되는 일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충렬공 할아버지 후손들의 자긍심에 관계되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외람되이 이런 글을 올리게 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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