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제3회 안사연 여름캠프 보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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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김발용 작성일04-08-10 16:00 조회1,538회 댓글0건본문
2004년 제3회 안사연 여름캠프 보고(4)
◆14:20 충민사 - 괴산관광농원 14:25 着
사전 접촉을 통해 괴산군수님과 충민사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
이었으나, 군수님과 우리 일행의 일정상 시간이 맞지 않아 소중한 기
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늦은 점심을 들기 위해 괴산관광
농원으로 향합니다.

◆16:00 이후(쌍곡계곡의 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다들 맛있게 점심을 들고 15:52분 제일민박에
도착했습니다. 쌍곡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은 소금강이라는 별칭에 걸
맞게 산과 물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곳곳마다 차량들이 늘어서서 발붙일
곳이 한 곳도 없을 지경입니다.
다행히 예약한 제일민박은 골짜기 안쪽 깊숙한 곳이라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넉넉했습니다. 한여름철 이만한 곳
고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숙박업소 정하느라 여러 모로 애쓰신 항용
종친과 총괄 기획을 담당하신 윤만 종친의 노고가 새삼스럽습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니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늦은 오후,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나가니 쌍곡계곡 입구에 차들이 늘어서서 꼼짝도
않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괴산 읍내로 들어가 장을 보는데, 답사본부
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빗발칩니다. 아이구! 아이들 배고플 걸 생각하
니 자꾸만 조급해집니다.
이렇게 저렇게 장을 보고 괴산관광농원에 들러 찌갯거리를 찾아서 돌
아오니 우리 식구들 안쓰럽게도 라면으로 아이들 요기를 하는 중입니
다. 무더운 날 부모 따라 잘 참아준 어린 종친들에게 미안하기만 합니다.
부랴부랴 튀김 닭을 꺼내 놓으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습니다.
저녁거리를 보자 용준, 용환 종친을 비롯해 은회 종친 등 남자분들께서
서둘러 저녁을 짓습니다. 저녁을 먹고나자 깜깜 어둠입니다. 아이들
폭죽 터뜨리는 소리와 화려한 불꽃이 깊은 산속 밤하늘에
추억거리를 새깁니다.

급한 일로 태우 종친 가족이 작별인사를 청합니다. 아쉬운 발길이 떨어
지지 않으시는 듯 태우 종친께서는 연신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드십니다.
태우 종친을 보내고 한두 사람씩 숙소로 들어가 피로를 풉니다.
◆8월 3일(화)
◆06:00 - 15:00 쌍곡계곡
안 떠지는 눈을 부비고 겨우 일어났더니 용주, 용준, 용환 3형제분께
서 마당을 말끔히 청소해 놓으셨습니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시는
분들입니다.
아침을 먹고 백일장과 퀴즈대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백일장 장원은
희준 종친의 자제 수형 군(고1)이, 차상은 상석 종친의 자제 선응 군
(초3)이 각각 차지했습니다.









◇백일장 시제 - 백곡억만재
◇장원 - 도평의공파 김수형
백 - 백색 물보라 일으키며
곡 - 곡류 따라 흐르는 저 물은
억 - 억만 년 동안 이 땅을 흘러왔을 텐데
만 - 만 년 역사도 안 된 우리가
재 - 재들을 우리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듯 손을 댈 자격이 있는가
※재 : 고개
◇차상 - 제학공파 김선응
백 - 백 장의 책에
곡 - 곡식들이 껴 있고
억 - 억원이 든 것 같았고, 엄마가 돈이 생긴 것 같아
만 - 만세를 불렀다.
재 - 재수가 있는 것 같았다.
※ 상석 종친님, 비상금은 이제 책갈피에서 딴 곳으로…….
퀴즈대회는 사전 공고와 어린 종친들 나름대로의 준비로 참가 인원
전원이 100점 만점을 맞았습니다. 퀴즈문제는 우리 문중과 선조님들
에 관한 기초내용과 답사지역에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애쓰신 어린 종친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어 보물찾기에 들어갔습니다. 일찍 찾은 학생들은 기분 좋아 어쩔
줄 모르고, 끝내 못 찾은 어린 종친들은 입이 삐죽 나옵니다. 웃음이
절로 나오고 귀엽기 그지없습니다.



대학생인 용균 군(정중 종친 자제)은 물놀이 가서도 어린 동생들 살피
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고, 답사 기간 동안 인기 ‘짱’이었습니다. 그
덕에 어른들 손 덜 가고, 큰 걱정 덜었습니다. 용균 군, 감사합니다.




점심 직전인 11:00~12:00 사이에 판서공파 대 문영공파 족구시합이
벌어졌습니다. 결과는 판서공파의 분전으로 따라붙었습니다만, 문영
공파가 세트 스코어 3:2로 승리했습니다. 한여름 땀 뻘뻘 흘리며 땅바
닥에서 신나게 뒹굴었더니 연속 헛발질하면서도 즐거운 한때였습니다.





◆15:10 쌍곡계곡 - 16:00 서봉 김사달 박사 묵적비 着
점심식사 후 대종회장님을 대리해 수상자들에 대한 상장 및 부상을
수여하고, 다음 답사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이제 김사달 박사 묵적비와 김시약 장군 유적지가 남아 있습니다.
민박집 주인께 인사를 마치고 15:10분 청천면 무릉리의 묵적비로 향
합니다.
쌍곡계곡 반대편 산등성이를 향해 올라갔다 내려가니 살짝 경상북도
경계로 들어가나 봅니다. 경상북도 문경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경치
또한 일품입니다. 장쾌한 속리산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충북에서도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집니다.
인산인해를 이룬 무릉계곡을 거쳐 16:00시경 묵적비에 도착했습니다.
야트막한 계단을 올라서니 길섶에 가려진 묵적비 전면이 드러납니다.
당대 최고 서예가 중의 한 분인 일중 김충현 선생이 ‘서봉 김사달 묵
적비’라고 쓴 글이 눈에 익습니다. 뒷면은 서봉 박사님의 초서체로 쓴
후적벽부가 새겨져 있습니다. 옆면(좌)에는 적벽부 행서, 또 다른 측면
(우)에는 우리말 풀이가 각각 적혀 있습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와 중앙일보사 서봉 묵적비 건립위원회가
공동으로 건립한 묵적비의 우리말 풀이만 옮깁니다.

그대도 또한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감히 이와 같다 하지만
그러나 일찍이 가는 것만이 아닌 것을
차고 비고 함이 저와 같으나
마침내 소장할 수 없음이라
대저 그 변하는 자 스스로가 볼진대
곧 천지도 일찍이 한순간이나마 머물지 못하는 것을
그 변하지 않는 자 스스로가 볼진대
곧 물건과 내가 모두 다함이 없음이라
그런데 또 무엇을 부러워할 것인가
또한 저 천지의 사이에 물건이 각각 주인이 있으니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닐진대
비록 털 끝 하나라도 취하지 말 것이라
오직 강상의 청풍과 산간의 명월로 더불어
귀는 이를 얻어 소리를 삼고
눈은 이를 만나 빛을 이룰 것이니
이를 써도 금할 자 없으며
써도 다하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섭리일러라
그리고 그것은 나와 그대가
다 같이 즐겨하는 바라
- 적벽부에서 뽑아 쓰다
갑자년 가을 서봉 김사달 쓰다
묵적비를 답사하고 내려오니 대구에서 참가하신 희준 종친 가족과 정
중 종친 가족이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끝없는 애정과 관심
을 베풀어 주시는 두 분과 가족 여러분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먼 길
무사히 귀가하시기를 빌면서 답사팀은 김시약 장군 현충비로 향합니다.
◆16:20 묵적비 - 16:40 김시약 장군 현충비
두 분 가족이 떠나시고 나니 차량이 5대로 줄어들었습니다. 마음 한
켠에 빈 자리도 그만큼 늘었습니다.
증평 읍내로 가는 길로 들어선 다음 새로 건설 중인 도로로 올라섭니
다. 일부 구간만 개통된 곳이라 그런지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습니다.
시원하게 내달려 청천면 덕평리의 김시약 장군 충효삼문에 도착했습니다.







묘소는 조금 떨어진 곳이라 일정상 참배를 하지 못하고 현충비에서
대신 헌작합니다. 김시약 장군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동생으로 우
리 문중의 자랑스런 무장이십니다.



장군께서는 일찍이 충무공을 도와 진주대첩에서 큰 공을 세우셨으며,
괴산에 돌아와서는 창의병을 일으켜 각지에서 도적의 무리인 왜적을
격파했습니다.
그 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대군의 호병을 맞아 분전하시다가 중과부
적으로 적에게 포로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장군께서는 결코 항복하시지
않고 장렬한 최후를 맞으셨습니다. 항복을 요구하며 긍ㆍ규 두 아드
님의 목숨을 위협하는 적의 악랄한 협박에 의연히 대처하시다가 차마
입으로 옮기지 못할 형태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구암공(휘 충갑) → 3子 충무공(휘 시민), 6子 충숙공(휘 시약)
△충숙공(휘 시약) → 1子 첨정공(휘 긍), 2子 첨정공(휘 규)
장군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해 덕평리 가지산에 초혼묘를 설단하였으
며, 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병조참판으로 추증되셨습니다. 두 아
드님 역시 정문(旌門)과 함께 첨정으로 증직되셨습니다. 현 충효삼문
과 현충비는 괴산ㆍ증평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의 노력으로 2001년
11월 묘역 정비에 이어 2003년 5월에 세워졌습니다.
▲ 현충비 헌작
헌관 : 윤만
집사 : 항용
현충비 앞에서의 묵념이 어느 때보다 깊은 침묵 속으로 잠깁니다.
그 침묵 속에서 크고 강하게 울리는 우리 문중 선조님들의 가르침을 듣
습니다.

▲ 헤어질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상 2004년도 제3회 안사연 여름캠프 보고를 모두 마칩니다.
여름캠프가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여러 모로 배려해 주신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문중 어르신들과 일가분,
참가 가족 여러분께 감사 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글 김윤식, 사진 김발용>
*. 촬영한 사진을 모두 실지는 못하였습니다. 빠른 시간내에
전자 앨범에 수록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내주시면 첨부 제작토록 하겠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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