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60---충렬공의 원나라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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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12 12:10 조회1,778회 댓글0건본문
충렬공 께서는 기록상 8차에 걸쳐 원나라에 다녀 오셨습니다. 실제로는 더 많이 다녀 오셨겠지요.
● 1차로 대장군으로 계실때인 54세때 1265년 1월부터 5월까지 진봉사로서 원나라에 다녀 오시었고,
● 2차로 추밀원부사로 계실때인 58세때 1269년 9월에 임연이 원종을 폐위시키고 그의 아우인 안경공 창을 옹립하는 쿠데타를 일으키자, 원나라에서 임연의 입조를 요구하자 충렬공께 원나라 사신과 함께 원나라에 다녀 오시도록 하였습니다.
충렬공께서는 원나라에 들리셨다가 그때 최탄과 한신의 무리가 북계(현재의 평안도지방) 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북계지방을 원나라에 바치려하자, 원나라에서는 이를 기회로 몽가독(몽구트)을 장수로 하여 일단 동경(현재의 요양) 에 몽골군대를 주둔시키고 고려를 차지하려 하였습니다.
그럴 때 원나라에 가 있던 태자 심 (후일의 충렬왕)과 당시의 재상 이장용은 충렬공께 몽구트 군사와 동행하게 하여 서경(현재의 평양)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때에 충렬공께서는 동경에 계시면서 몽골 군대가 고려 경내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노력하시다가 이듬해 59세때 서경을 거쳐 개경에 돌아 오시었습니다.
● 3차로 진도와 탐라도에서 삼별초를 완전토벌하고 나서 시중으로 계실때인 62세때 1273년 7월에 원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원나라에 가셔서 세조 쿠빌라이의 환대를 받고, 일본 정벌과 관련한 명령을 받고, 이듬해인 1274년 1월에 개경으로 돌아 오시었습니다.
● 4차로 1274년의 제1차 일본정벌을 마치고 돌아와서 문하시중으로서 64세때인 1275년 1월 8일 일본정벌 후의 고려의 궁핍한 상태를 호소하기 위하여 세조 쿠빌라이를 알현하기 위해서 원나라로 떠나서 3월 신묘일에 돌아 오시었습니다.
● 5차로 중찬으로서 65세때인 1276년 7월부터 10월까지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성절사로서 원나라에 들어가셔서 원 세조 쿠빌라이로부터 고려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호두금패를 받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 오시었습니다.
● 6차로 위득유, 노진의 등에 의한 김방경 무고사건으로 홍다구에 의한 고문과 대청도 유배시인 67세때 1278년 7월초에 장순룡과 함께 상도(개평부)에 도착하여 무고사건에 대한 해명후 충렬왕 일행과 함께 연도(대도,북경,대명부)를 거쳐 동경(요양)을 거쳐 9월초에 고려에 돌아 오시었습니다.
● 7차로 원나라에 가셔서 무고사건을 해명하고 1278년 9월초에 고려에 돌아오신후 무고사건의 배후 조종자이며 고려조정을 어지럽히고 있는 이분희 일파를 충렬왕과 함께 처단하였고, 이를 조사하러 나온 원의 속노가(쓰루카)를 따라 12월말에 원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언제 고려로 돌아오셨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충렬왕이 다음해 2월에 돌아오신 기록으로 보아 충렬왕을 모시고 같이 고려로 돌아오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 8차로 69세때인 1280년 11월 신년축하차 賀正使(하정사)로 연도에 가서 신년을 하례하고 제2차 일본정벌의 명을 받고, 70세때인 이듬해 1281년 2월초에 개경에 돌아오시고, 다음달인 3월달에 제2차 일본정벌의 길에 오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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