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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숨겨준 할아버지는 항일 함께한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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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8-16 11:49 조회1,7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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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숨겨준 할아버지는 항일 함께한 동지"
[조선일보 2004.08.13 18:38:41]


[조선일보 김정훈 기자]지난 7월 전직 중국 외교관인 주치위안(81)씨는 서울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아들인 김신(金信·82)씨측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광복절을 맞아 국외에 있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정중히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치위안씨는 흔쾌히 응낙했다.

치위안씨가 9살 되던 해인 1932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자싱(嘉興)에 있는 그의 집에 중국식 복장을 한 건장한 사내들이 한꺼번에 묵었다. 까까머리였던 그는 정원 한쪽에서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아버지 펑장(鳳章)씨는 사내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고 어깨를 나란히 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무도 그 사내들이 누군지 말해 주지 않았고, 그 흑백사진은 치위안씨의 앨범에 남았다.

그 사내들은 백범을 위시한 임시정부의 요인들이었다. 그해 4월 윤봉길(尹奉吉)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虹口) 공원 폭탄의거 후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자싱으로 몸을 피한 것. 자싱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준 이가 치위안씨의 할아버지인 주푸청씨였다.

백범 일지는 당시를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이로부터 일시 가흥에 몸을 붙이게 되었다. 성은 조모님을 따라 장(張)이라 하고 이름은 진구(震球) 또는 진(震)이라고 행세하였다. 가흥은 내가 위탁하여 있는 주푸청씨의 고향인데 저씨는 일찍 절강성장을 지낸 이로 덕망이 높은 신사요….”

치위안씨는 37년 중·일전쟁 발발 후에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다는 말을 소문으로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임정(臨政)이 항일(抗日)이라는 대의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뿐 자신이 봤던 건장한 사내들과 연결시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공산당에 입당, 항일운동을 하던 치위안씨에게 45년 일본 패망은 예상보다 빠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후 몇 년 사이에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병으로 잃었다. 55년부터 그는 직업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영어·불어 등 4개 외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는 그는 85년까지 노르웨이, 짐바브웨, 영국 등지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치위안씨는 90년대 초 김신씨가 사진 몇 장을 들고 그를 찾아올 때까지 한국과 얼마나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는지 몰랐다. 그 사진들은 그의 앨범에 보관된 사진과 같은 것들이었다.

김신씨는 “치위안씨 할아버지 덕택에 백범과 임정 사람들이 무사할 수 있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정부는 96년 고(故) 주푸청씨에게 독립유공 훈장을 추서했다.

그후 치위안씨는 중문판 백범 일지를 구해 읽었다. 그는 “백범 일지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며 “백범도 할아버지도 한 시대의 대인(大人)이었다”고 회상했다.

치위안씨에게 이제 한국은 특별한 형제의 나라다. 그런 그에게 최근 한·중 관계에 대해 물었다. “고대역사 왜곡 시도가 한·중 우호라는 큰 물줄기를 가로막지는 못할 겁니다.” 외교관 출신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김정훈기자 hoo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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