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103---충렬공 2남 김흔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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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21 09:21 조회1,816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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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흔(金흔)
1251(고종 38)∼1309(충선왕 1). 고려시대의 무신.
아버지는 명장이며 명재상이었던 방경(方慶)이다. 음서(蔭敍)로 산정도감판관(刪定都監判官)을 거쳐 장군이 되었다.
1272년(원종 13) 방경을 따라 탐라에서 삼별초를 토벌하고 대장군이 된 뒤, 곧 사재경(司宰卿)에 올랐다.
1274년 일본원정 때는 지병마사(知兵馬事)로 참가하였고, 진주목사를 지냈다.
1277년 북쪽 변방이 소란해지자 출정하였고, 이듬해 방경이 무고를 입어 대청도(大靑島)로 유배될 때 백령도에 유배되었으나, 충렬왕의 변호로 풀려났다.
1279년(충렬왕 5) 대방공 징(帶方公#징02)이 원나라에 갈 때 원부(元傅)의 아들 정(貞) 등 의관(衣官)자제 25인과 함께 뚤루게(禿魯花)로 다녀왔으며, 1282년에도 상장군(上將軍)으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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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일영(日英)이 한희유(韓希愈)가 모반을 꾀한다고 무고하므로 인후(印侯)와 함께 이를 제거하기 위하여 원나라에 갔으나, 마침 원나라에 갔던 충렬왕이 무고임을 밝혀 한희유가 무사히 귀국하여 중용되자 귀국하지 않았다. 한희유가 죽자 연경에서 7년 만에 돌아와, 찬성사 자의도첨의사사삼중대광(贊成事咨議都僉議司事三重大匡)이 되었다.
충선왕이 즉위하여 이르기를, “대덕(大德) 3년(1299)에 본국의 무뢰한 무리가 장차 난을 꾀하고자 하거늘, 흔(#흔05)이 만호 인후와 더불어 능히 먼저 알고 난을 진정하였으니, 그 공을 가히 상(賞)하여 특히 서용(敍用)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버지를 이어 상락공(上洛公)에 습봉(襲封)되었다. 성품이 활달하면서도 인자하였다고 한다.
■ 고려사 김방경 열전 부 김흔 열전
김흔은 문음(門蔭)으로 산정 도감(刪定都監)의 판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세 번 조동되어 장군이 되었으며 아버지를 따라 탐라적(耽羅賊-삼별초 폭동군)을 토벌하여 승리하게 되자 대장군으로 임명받았다. 얼마 후에 사재경(司宰卿)으로 고쳐 임명되고 또 일본 정벌에 종군하였다가 귀환한 후에 진주(晋州)목사가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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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김흔은 아버지의 관직을 계승하여 금호부(金虎符)를 띠게 되고 따라서 소용 대장군 관 고려군 만호(管高麗軍萬戶)로 되었으며 진국 상장군(鎭國上將軍)의 관계를 더 받았고 여러 번 조동되어 첨의 참리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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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영(日英)이 한희유가 반역을 음모한다고 무고하였을 때 김흔은 인후(印候)와 더불어 군대를 출동시켜 한희유를 붙잡아다가 좌승(左丞) 합산(合散)에게 고발하여 문초케 하였다. 그러나 한희유 등은 죄행을 시인하지 않았고 일영도 또 달아나 버렸으므로 인후, 김흔 등이 장차 원나라로 가서 황제에게 하소하려 하였는데 왕이 말리었으나 그 말을 따르지 아니 하였다. 그래서 왕도 사신을 원나라에 보내 한희유의 죄가 무고임을 판명케 하였다. 때마침 대사령이 내렸으므로 김흔 등도 죄를 면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죽었으므로 귀국하여 복상을 마치고 다시 원나라로 갔다.
당시에 한희유가 재상으로 있었으므로 김흔은 고려로 돌아오려 하지 않고 연경에서 대략 7년간이나 머물러 있었다. 한희유가 죽고 난 뒤에 김흔을 찬성사 자의(咨議) 도첨의사사로 임명되고 삼중 대광(三重大匡)의 작위를 더하여 받았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상락공(上洛公)으로 봉하였으므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만호의 관직은 사양하여 형의 아들 김승용(承用)에게 주었다.
충선왕이 즉위하자 교서를 내려 이르기를
“대덕(大德) 3년(1299년)에 우리 나라에서 무뢰한들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을 때 김흔은 만호 인후와 더불어 능히 미리 그 사실을 알고 난을 평정하게 하였으니 그 공로를 포상하여야 할 것이며 그를 특별히 높은 관직에 등용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충선왕 원년에 나이 59세로 죽었다. 김흔은 성품이 활달하고 인자하였으며 특히 친척 가운데 곤궁한 자를 잘 구제하여 주었다.
■ 동안거사집 단모부 (1295, 이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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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아들 ★영공(令公 =?첨의령 김흔)은 월편(越篇)을 계승했고,
막내아들(=김순)은 학사가 되어 문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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