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충무공 김시민장군 유허비 건립(호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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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4-08-21 15:46 조회1,652회 댓글0건본문
김시민장군 유허비 건립 동참 호 소 문
더욱 건강하시고 소망하는 모든 일들 꼭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충무공(忠武公) 김시민장군(金時敏將軍)은 1554년 9월 23일(양력) 현재의 충남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에서 父 金忠甲 공과 母 昌平李氏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25세 되던 1578년 무과(武科)에 급제할 때까지 이곳 천안에서 청운의 꿈과 호연지기를 키웠습니다.
김시민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晋州牧使에 제수되어 진해, 창원, 거창 등지에서 수많은 倭軍을 격퇴하였으며, 그 공로로 慶尙右道兵馬節度使에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장군은 특히 1592년 10월 5일~10일까지 6일 동안 치열하게 전개된 제1차 晋州城戰鬪에서 3,800여명의 적은 군대로 그 6~8배에 이르는 2~3만 여명의 倭 大兵을 맞이하여, 성을 버리고 대피하자는 겁먹은 軍官民들을 향해 “힘을 합쳐 싸우면 천만의 섬 오랑캐인들 무엇이 두려우랴! 나는 활을 당겨 오른쪽 다섯 손가락 모두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끝까지 싸워 이기리라.”는 필승의 신념과 의지로써 이들을 설득, 渾然一體가 되어 진주성을 死守토록 하였습니다. 장군은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死卽必生과 臨戰無退의 굳은 각오아래 실천궁행의 리더십과 뛰어난 전략전술로써 靑史에 길이 빛날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의 神話를 만드셨습니다.
그 후 조정에서는 장군의 공을 높이 사 領議政에 추증하고 武人 최고의 영예인 忠武公의 시호를 하사하는 한편, 진주, 괴산, 천안 등지에 추모사당을 지어 護國忠節의 귀감으로 삼아 오래도록 기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탄생지인 天安에 있던 사당은 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지 어언 130여년 이상이 되었으며, 장군의 생가와 유적지 등 기념이 될만한 것들은 거의 소멸되어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에 충절의 고장 천안시민으로서 이를 부끄럽게 여긴 뜻있는 분들이 모여 2000년 7월 김시민장군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장군관련 史料集 발간, 학술심포지엄 개최(2회), 학생백일장 개최(3회), 10만인 서명운동 전개, 학술조사 실시 등을 통해 금년 4월 10일에야 비로서 천안의 장군탄생 유허지(遺墟址)가 충청남도 기념물(第166號)로 공식 지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관련 文化財 지정을 기념하고, 이곳을 찾는 來訪客들에게 김시민장군의 업적과 그 일대기 등을 정확히 널리 알려 오래도록 기리게 하는 한편, 그간의 기념사업 전개내역 등을 기록, 後世로 하여금 애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사업의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충무공김시민장군유허비(忠武公金時敏將軍遺墟碑)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구체내역은 별첨 추진계획 참조)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드시겠지만 충절의 고장 天安을 사랑하고, 김시민장군의 나라사랑 높은 뜻을 기린다는 거룩한 마음에서 이번 유허비 건립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성금액수는 제한이 없으며 10만원 이상 협찬자는 그 이름을 유허비 標石에 새겨, 永久 保全토록 할 계획입니다.
또한 성금 기탁자 모두의 이름과 성금액수를 유인물로 제작, 배포하는 한편, 언론보도 및 白書에 기록하여 기념관 건립시 보존, 전시토록 할 계획입니다.
(성금 접수기간 : 8월 1일 ~ 9월 10일 까지)
※ 성금납부는 은행계좌 입금을 원칙으로 하며, 입금 후 반드시 漢字이름과 연 락처를 저희 기념사업회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은행계좌번호 ▶ 농협 485011 - 56 - 044292 허용기(김시민회)
끝으로 다소나마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면서, 가정에 平安과 幸福이 늘 충만하시길 다시 한번 祝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8월 10일
충무공김시민장군기념사업회 회 장 허 용 기 유허비건립추진소위원회 위원장 황 종 헌 拜上
더욱 건강하시고 소망하는 모든 일들 꼭 성취되시길 기원합니다.
충무공(忠武公) 김시민장군(金時敏將軍)은 1554년 9월 23일(양력) 현재의 충남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에서 父 金忠甲 공과 母 昌平李氏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25세 되던 1578년 무과(武科)에 급제할 때까지 이곳 천안에서 청운의 꿈과 호연지기를 키웠습니다.
김시민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晋州牧使에 제수되어 진해, 창원, 거창 등지에서 수많은 倭軍을 격퇴하였으며, 그 공로로 慶尙右道兵馬節度使에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장군은 특히 1592년 10월 5일~10일까지 6일 동안 치열하게 전개된 제1차 晋州城戰鬪에서 3,800여명의 적은 군대로 그 6~8배에 이르는 2~3만 여명의 倭 大兵을 맞이하여, 성을 버리고 대피하자는 겁먹은 軍官民들을 향해 “힘을 합쳐 싸우면 천만의 섬 오랑캐인들 무엇이 두려우랴! 나는 활을 당겨 오른쪽 다섯 손가락 모두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끝까지 싸워 이기리라.”는 필승의 신념과 의지로써 이들을 설득, 渾然一體가 되어 진주성을 死守토록 하였습니다. 장군은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死卽必生과 臨戰無退의 굳은 각오아래 실천궁행의 리더십과 뛰어난 전략전술로써 靑史에 길이 빛날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의 神話를 만드셨습니다.
그 후 조정에서는 장군의 공을 높이 사 領議政에 추증하고 武人 최고의 영예인 忠武公의 시호를 하사하는 한편, 진주, 괴산, 천안 등지에 추모사당을 지어 護國忠節의 귀감으로 삼아 오래도록 기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탄생지인 天安에 있던 사당은 大院君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지 어언 130여년 이상이 되었으며, 장군의 생가와 유적지 등 기념이 될만한 것들은 거의 소멸되어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에 충절의 고장 천안시민으로서 이를 부끄럽게 여긴 뜻있는 분들이 모여 2000년 7월 김시민장군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장군관련 史料集 발간, 학술심포지엄 개최(2회), 학생백일장 개최(3회), 10만인 서명운동 전개, 학술조사 실시 등을 통해 금년 4월 10일에야 비로서 천안의 장군탄생 유허지(遺墟址)가 충청남도 기념물(第166號)로 공식 지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관련 文化財 지정을 기념하고, 이곳을 찾는 來訪客들에게 김시민장군의 업적과 그 일대기 등을 정확히 널리 알려 오래도록 기리게 하는 한편, 그간의 기념사업 전개내역 등을 기록, 後世로 하여금 애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사업의 귀감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충무공김시민장군유허비(忠武公金時敏將軍遺墟碑)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구체내역은 별첨 추진계획 참조)
여러 가지로 어렵고 힘드시겠지만 충절의 고장 天安을 사랑하고, 김시민장군의 나라사랑 높은 뜻을 기린다는 거룩한 마음에서 이번 유허비 건립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성금액수는 제한이 없으며 10만원 이상 협찬자는 그 이름을 유허비 標石에 새겨, 永久 保全토록 할 계획입니다.
또한 성금 기탁자 모두의 이름과 성금액수를 유인물로 제작, 배포하는 한편, 언론보도 및 白書에 기록하여 기념관 건립시 보존, 전시토록 할 계획입니다.
(성금 접수기간 : 8월 1일 ~ 9월 10일 까지)
※ 성금납부는 은행계좌 입금을 원칙으로 하며, 입금 후 반드시 漢字이름과 연 락처를 저희 기념사업회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은행계좌번호 ▶ 농협 485011 - 56 - 044292 허용기(김시민회)
끝으로 다소나마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하면서, 가정에 平安과 幸福이 늘 충만하시길 다시 한번 祝願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4년 8월 10일
충무공김시민장군기념사업회 회 장 허 용 기 유허비건립추진소위원회 위원장 황 종 헌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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