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119---충렬공 자녀 (연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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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4-08-24 08:46 조회1,598회 댓글0건본문
▣ 고려후기 김방경의 정치활동과 그 성격 (1993.8, 류선영, 전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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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김방경의 가족 및 혼인관계에 대해 알아 보겠다. (김방경후대가계도 참조) 김방경은 첫부인으로 박익정의 딸을 맞이하였다. 기거랑지제고중서사인을 지낸 박익정은 무인집권기에 고급관인을 배출하여 세족으로 성장한 죽산박씨의 후예였고, 인천이씨 이장용과는 사돈관계였다. ---박익정의 장남 휘가 이장용의 딸과 혼인하였기 때문에, 김방경의 처남의 장인이 이장용이었다. (김광철, 고려후기 세족층과 그 동향에 관한 연구) --- 박씨는 3남3녀를 두고 김방경에 앞서 사망하였다.
김방경은 재취로 손씨를 맞아 1녀를 두었으나 손씨에 관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는다.
또 서북면에 있을 때 김방경은 관기와의 사이에 1녀를 두었다.
김방경의 큰 아들 선은 황조정대부사재경 설인검의 여와 결혼하여 전법판서 상장군에 올랐다.
둘때아들 흔은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여 판밀직사사찬성사상락공에 이르렀지만, 그의 혼인관계는 알 수 없다.
셋째아들 순(1258-1321)은 문과에 합격하고 도첨의중찬 허공의 여와 결혼하여 중대광상락군판삼사사보문각대제학상호군에 이르렀다. 순의 장인 허공은 최씨정권 말기부터 출세길에 올랐던 인물이었고, 공암허씨는 고려후기 권문에 속하였다.
김방경의 첫째사위인 조변은 참지정사 조계순의 아들인데, 횡천조씨 조계순은 관직이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렀고, 이 집안은 무인집권기에 세족으로서 기반을 갖추었다.
막내 사위인 평강 채홍철은 뒤에 충선왕의 신임을 받아 찬성사에 올랐던 인물이었다.
김방경의 큰 손자 승용(선의 큰 아들)은 문과에 합격하여 첨의찬성사 원관의 여와 결혼하였고, 밀직사 만호에 올랐다. 원관은 충렬왕대 중찬에 오른 원부의 아들로 이 원주원씨는 원부 이래 크게 두각을 나타냈던 가문이다.
둘째손자 승택은 삼중대광도첨의사 정승에 올랐다.
또 큰 손녀(흔의 첫딸)은 찬성사 조련과 혼인하였는데, 조련은 평양조씨 조인규의 아들이었다.
또 순에게서 난 세 손녀는 각기 무인집권기 무반을 배출하였고 충렬왕때 찬성사를 지낸 청주정씨 정계의 아들인 정책(판선공시사), 성리학을 수용한 남포 백이정(대광상당군), 원의 좌승상 아홀반의 아들인 야영돈(절강성참지정사)과 혼인하였다.
순의 아들 영돈은 좌정승 판정치도감사에 이르렀다.
김방경의 증손자 후(승용의 큰 아들)는 검교첨의평리 만호에 이르렀고, 묘(승택의 아들)은 찬성사 민적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상락군에 봉해졌다.
이상과 같이 김방경은 죽산박씨를 처가로 두었고, 그의 자손들은 공암허씨, 횡천조씨, 원주원씨, 평양조씨, 청주정씨, 남포백씨 등 당대의 세력가문 및 원의 고위층과 혼인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혼인관계가 김방경과 그후의 안동김씨의 정치활동과 세력형성의 기반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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