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숙공 김시약 장군> 유물 발견 및 사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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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1-12-25 22:39 조회2,080회 댓글0건본문
<충숙공 김시약 장군> 유물 발견 및 사진 공개
1.일시 : 2001. 11. 22
2.장소 : 충북 괴산군 청천면 덕평리 가지산 충숙공 김시약 장군 묘소
3.발견자 : <충무공 김시민 장군 및 충숙공 김시약 장군 현양 사업회> 회장 이춘우
4.발견 경위 : 2001. 11. 22일에 상기 사업회에서는 묘역 복원사업(군청으로 부터의 지원)의 하나로 배위이신 증 정부인 문화유씨의 위패를 공 옆에 모시기 위한 작업을 위해 분묘를 파게 됨--내부 관 주변이 두꺼운 석회로 덮여 있어 더 넓게 파던 중--묘소 좌측 아래 부분에서 제기 7점을 발견--작업 중단, 즉시 괴산군청 문화관광과에 신고--괴산 군청 담당 직원의 출동과 유물 수습--현 괴산군청에서 보관.
5.사진 제공 : 괴산군청 문화관광과 김영근님이 2001. 12. 18. 본 관리자에게 송부.
아래 사진이 잘 안 보이시는 분은 본 홈 <안동김씨 소개>란의 <역사적 인물>항과, <기타소개>란의 <괴산 안동김씨 소개>항을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6.충숙공(忠肅公) 김시약(金時若) 장군 소개
字는 손오(巽吾)이며 아호는 금헌(琴軒)이며, 충무공 김시민의 서제(庶弟)이다. 西崖 柳成龍의 薦擧로 訓練院 僉正, 萬戶, 僉使 등을 역임하다가, 1592년(宣祖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진주대첩시 형인 시민을 도와 큰 전과를 올렸으며, 1596년(선조29) 괴산(槐山) 의병의 선봉장(先鋒將)으로 창의병(倡義兵)을 거느리고 각지에서 왜적을 격파하였다. 그 후 관찰사(觀察使)의 천거 를 받아 별장(別將)에 발탁되었다.정유왜란이 일어나자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창원·옥천에서 왜군 24명을 죽였다. 그 뒤 統營軍官을 거쳐 昌城府 僉節制使가 되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에 성이 함락되자 고전분투하다 그의 두 아들과 함께 적에게 포로가 되어 죽었다. 1683년 (숙종 9) 정문(旌門)이 세워지고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며 그의 손이 招魂하여 설단하였는데 충북 괴산군 청천면 덕평리 가지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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