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정 관련 자료_금옹 김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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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4-09-04 22:36 조회1,919회 댓글0건본문
포천 금수정 앞 영평천 바위(연화암)에 새겨진 <증금옹시>에 관한 자료입니다.
http://blog.empas.com/ktyoung/2182228_717x538.jpg
http://blog.empas.com/ktyoung/2182229_717x538.jpg
영환 대부님 말씀으로는 <금옹(琴翁)>이 어느 분이신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무척 궁금해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포천군지(522쪽)에는 <금옹(琴翁) 김윤복(金胤福)>이라 적혀 있습니다.
오늘 다른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내용이라 상세한 것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호보(號譜)>에도 <금옹>이란 분은 기록돼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포천군지를 쓴 분은 이 내용을 어디서 찾았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포천군지에서 말하는 <금옹 김윤복>은 문온공파 선조님으로
청도군수공(휘 예생) 할아버지의 셋째 아드님이십니다.
청도군수공은 일전에 윤만 대부님께서 소개한 것처럼
예안현감 시절 충렬공 할아버지 비석을 개수하신 그 할아버지이십니다.
◈문온공(휘 구용) → 2子 부사공(휘 명리) → 1子 직제학공(휘 맹헌) → 2子 참의공(휘 자양) →
1子 청도군수공(휘 예생) → 1子 윤종, 2子 윤선, 3子 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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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포천군지에 수록된 관련 내용입니다.
<자료 6> 연화암상 암각문(蓮花巖上 巖刻文) - 증금옹(贈琴翁) 시
<자료 6>의 글씨 하나의 크기는 13.5cm×19cm이다. 초서체로 쓰여 있다. 금수정의 주인인 금옹(琴翁) 김윤복(金胤福)에게 준 시작품 원본을 그대로 각자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 자료를 번역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綠綺琴伯牙心 녹기금 백아의 마음
種子是知音 종자기가 바로 지음을 하는구려
一鼓復一音 한 번 타고 다시 한 번 읊노라니
冷冷虛籟起遙岑 허뢰는 선들선들 먼 봉우리서 일어나고
江月연연江水深 강가의 달은 곱디곱고 강물은 깊고깊네 *연 : 女+員
이 자료는 예로부터 여러 문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자료이다. 그만큼 문헌자료도 풍부하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 “금수정의 돌에 새긴 시는 다음과 같다.……나는 이곳에서 노닌 지가 이미 수십여 년이 지났는데, 몽상이 오히려 괴롭다.(金水亭石刻詩云, 余昔遊此地 已閤數十餘年 而夢想猶勞)”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이처럼 옛 문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졌으나, 연화암 윗부분에 각자하였기 때문에 멀리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물에 휩쓸려 심하게 마멸되었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자료이다.
http://blog.empas.com/ktyoung/2182228_717x53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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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환 대부님 말씀으로는 <금옹(琴翁)>이 어느 분이신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무척 궁금해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포천군지(522쪽)에는 <금옹(琴翁) 김윤복(金胤福)>이라 적혀 있습니다.
오늘 다른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내용이라 상세한 것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호보(號譜)>에도 <금옹>이란 분은 기록돼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포천군지를 쓴 분은 이 내용을 어디서 찾았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포천군지에서 말하는 <금옹 김윤복>은 문온공파 선조님으로
청도군수공(휘 예생) 할아버지의 셋째 아드님이십니다.
청도군수공은 일전에 윤만 대부님께서 소개한 것처럼
예안현감 시절 충렬공 할아버지 비석을 개수하신 그 할아버지이십니다.
◈문온공(휘 구용) → 2子 부사공(휘 명리) → 1子 직제학공(휘 맹헌) → 2子 참의공(휘 자양) →
1子 청도군수공(휘 예생) → 1子 윤종, 2子 윤선, 3子 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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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포천군지에 수록된 관련 내용입니다.
<자료 6> 연화암상 암각문(蓮花巖上 巖刻文) - 증금옹(贈琴翁) 시
<자료 6>의 글씨 하나의 크기는 13.5cm×19cm이다. 초서체로 쓰여 있다. 금수정의 주인인 금옹(琴翁) 김윤복(金胤福)에게 준 시작품 원본을 그대로 각자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 자료를 번역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綠綺琴伯牙心 녹기금 백아의 마음
種子是知音 종자기가 바로 지음을 하는구려
一鼓復一音 한 번 타고 다시 한 번 읊노라니
冷冷虛籟起遙岑 허뢰는 선들선들 먼 봉우리서 일어나고
江月연연江水深 강가의 달은 곱디곱고 강물은 깊고깊네 *연 : 女+員
이 자료는 예로부터 여러 문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자료이다. 그만큼 문헌자료도 풍부하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성호사설>에 “금수정의 돌에 새긴 시는 다음과 같다.……나는 이곳에서 노닌 지가 이미 수십여 년이 지났는데, 몽상이 오히려 괴롭다.(金水亭石刻詩云, 余昔遊此地 已閤數十餘年 而夢想猶勞)”고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이처럼 옛 문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졌으나, 연화암 윗부분에 각자하였기 때문에 멀리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물에 휩쓸려 심하게 마멸되었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접할 수 없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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