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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영정> 宗議 수렴 01 ---투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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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09 22:16 조회1,4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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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중의 중시조이신 충렬공 할아버지의 영정이 잘못되어 있다면 당연히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당시의 복식으로 새로 모셔져야 할 것입니다. 새로 모시는 영정에는 우리의 역량과 정성을 다해서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영정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공개석상에서 우리 문중 여러분의 고견과 아이디어를 모아보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로
영정을 기존처럼 문무관복 2폭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1폭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모아 보겠습니다.

충렬공께서는 <난세의 영웅>이셨습니다. 1231년부터 1259년까지 29년동안 7차례나 몽골이 침략하여 고려의 전 국토와 백성이 유린당하였고, 4년간에 걸친 삼별초의 난 진압, 2차례의 일본원정에 따른 10여년 간의 시달림 속에서 고려의 사직과 백성의 안위와 영토의 보전을 위해서 국가의 기둥으로서 평생을 다 하셨습니다. 전후 100년 넘게 계속되는 몽고의 식민지배와 다름없은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난세 중의 난세였습니다.

충렬공께서는 명장이자 명재상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무반으로 시작해서 서북면 병마판관, 대장군, 상장군, 도원수 등 주로 무반직을 지내셨으며, 우창, 어사대, 형부, 추밀원 등 문관직을 지내시기도 하시고, 삼별초의 난 진압 후에는 재상인 문하시중을 오랫동안 역임하셨습니다. 당시에는 무신정권시대 문극겸을 시작으로 문무반을 넘나들면서 관직을 지내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出將入相으로 불리는 인물들이 더러 있습니다.

영정을 문무영정 두 폭으로 하는 경우는 다른 예에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충렬공  할아버지의 문무영정 2폭은 出將入相이라는 충렬공의 면모를 부각하는 특징이 되고 있습니다. 영정을 2폭으로 할 경우에 제작비도 당연히 2배가 소요되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宗義1. 충렬공 영정을 한 폭으로 해야 하는가? 기존의 영정처럼 두 폭으로 해야 하는가?

1) <장군 영정> 한 폭으로     2) <장군 영정> <문관 영정> 두 폭으로   3) <문관 영정> 한 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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